산정상 오르막 내리막 안개
비내리는 아침. 산 정상에 올랐다. 가파르지 않은 산책길로 이어진 정상이었기에 용기를 내어 가보기로.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정상의 뷰가 뿌옇게 보였다. 안개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 이 광경을 보려고 정상에 올랐나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곧 빠르게 걷히는 안개였다. 멈춰있는 뿌연 화면 같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안개낀 풍경이 지금 내 머릿속 같았다. 갑작스러운 인사 이동, 새로운 업무, 막중한 부담감과 책임감에 압도되어 있는 상태. 어지럽고 토나오는 상태.
해보지 않아서. 어떤 업무인지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갖게되는 막연한 두려움도 클 것이다. 안개낀 상태가 무서운 건 그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 아닐까.
피할수 있다면 어떻게든 계속 피하고 싶은 업무를 맡게 되었다.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바쁘고, 정신없다.. 힘들다고만 들었지. 실제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두려운 거겠지, 그래. 한 번 맛보는거야. 생각보다 별 거 아닐 수도 있어. 그리고 별거면 또 어때. 어렵고 힘들다는 거 느껴보고 못하겠다 말해도 되니까.
산 속에서 마음에 와닿는 귀절을 만났다. 성장은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이라는 말. 그렇다. 내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이겨내야만 성장하는 게 아니다. 그저 이 시간을 잘 견디며 통과하는 것도 성장하는 것일 테다.
안개처럼 뿌연 이 상황을 한 번 통과해보자. 지금의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오는 두려움일 것이니, 맛을 보고,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즐기자. 눈 앞에 한 발 한 발, 하루하루 해야하는 작은 일들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선명해지는 순간이 오겠지.
산을 내려오는 길.올라가는 길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건 체력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정상이라는 곳은 희망을 담고 있어 올라가는 길이 덜 힘들지도 모른다. 내려가는 길은 돌아가는 길이라는 의미 외의 다른 뜻이 없기에 더 고되게 느껴지는게 아닐까.
정상. 꼭대기만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내리막길도, 중간에 쉬어가는 길도 모두 나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 생각하련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사는 게 내 삶의 목표이니, 모든 길은 나에게로 가는 길이다.
특정 지점에 도착하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어쩌면 산 정상을 맛본 사람이야말로 별것 없다는 것을 알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오르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답게 사는 모습, 진짜 나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최종 목표지점으로 상상하며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리며 지내야겠다.
정상이라는 좁은 한 지점, 막연한 성공에 집착하기보다 나다워지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내딛는 한 걸음 한걸음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안개도 걷히고, 좀더 자유로워지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을것이다.
지금 닥친 과제 역시, 나에게 오르막길일지, 내리막일 지 아직은 모르지만 어떤 길이든 상관없다. 통과하는 과정에서 분명 배우는 게 있을 것이다. 극복해야만 성장하는 게 아니니, 마음을 가볍고 조금은 편안하게 먹고 부딪혀보자.
못해도, 실수해도 괜찮다.
부족함이 있는 상태에서 마음이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진실해 질 수 있다는 말을 명심하고, 더 나은 내가 되는 길이라 생각하자. 잘하고 싶어 두려워하는 것이니, 부족한 내 모습이 싫어 두려워하는 것이니까.
뿌옇게 안개낀 지금의 상황을 그저 통과하는 것이 목표다. 통과하기 전보다 좀 더 나아진 나, 처한 상황을 전보다는 편안하게 대하는 내가 되어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