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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글쓰기 7

완벽과 불안

by 매글이

프로이트 꿈의 해석을 읽다보니 마지막 결론은 꿈은 완벽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

마음 속 빈 공간, 정확히 해석할 수 없는 여지가 있음을 인정한다.

평생을 정신분석 연구에 매진한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다니, 겸손한 사람이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나를 돌아보게 된다. 뭐든 잘하고 싶고,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은 나의 욕심이 그 자체로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를 말이다. 내 마음 속에는 혹시 나만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모든 사람은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지만 나만 주목받고 싶은 욕심이 과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완벽이라는 상태가 끝이 없고, 허상에 가까운 개념인데도 매번 완벽한 모습만을 추구하는 나. 실제로는 완벽과 거리가 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다그치는 내면의 내 모습이 그저 안타깝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마음이 너그러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 너그러워지면 상대의 실수도 너그러이 보는 내가 되겠지.


결과물로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완벽주의 성향이란 어쩌면 내가 타고난 거라기보다 만들어진 성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성향이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있는 현대인이 얼마나 될까?


성과와 결과,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정욕구에 민감한 것, 완벽을 향해 노력하려는 마음 자체는 이상할 것도 없는 현대인의 일반적인 특성이라 봐도 되지 않을까.


그래. 완벽을 추구하려는 마음 자체는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완벽하지도 못하면서 그런 성향만 가지고 있다고 내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만 말자. 완벽주의 성향은 단점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것에 민감한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일을 할 때 큰 그림이 그려지고, 이해가 얼추 되는 상태를 지향한다. 하지만 모든 일을 그렇게 처리한다면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 기한을 맞춰 일을 끝내는 것에 초점을 두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씩만 짚고 넘어가보자. 실수하면 다음에 그 부분을 보완하면 된다. 그렇게 조금씩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상태를 지향하자.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한 상태를 기준점 삼아 매번 내 자신만 갉아먹지 말고 말이다.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불안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축복 중의 하나라 말하니, 불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 뭐든 확실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선호해왔고, 매번 그런 선택을 하려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편안하고 쉬운 일만 하고 싶어하는 이유중 하나도 불안한 상태가 싫기 때문이다. 어려운 과제에 부딪혔을때 드러나게 되는 나의 무지.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기도 하고. 버벅대는 상태를 스스로 못견뎌 한다.


불안을 견디는 힘을 기르고 싶다. 평생을 살아도 확실히 손 안에 쥐어지는 무언가는 없을 것이다. 늘 불안하고 잘 모르겠는 상태로 살다 가는거다. 다만, 나 자신에 대해 전보다 좀더 잘 알게되고, 좀더 나다운 방향으로 기울어져 갈 것이다. 젊은 시절 양 극단을 왔다갔다 하며 나 자신을 실험했다면 중년이 되고 나이를 들수록 극단에서의 움직임, 그 진폭이 조금은 잦아들 것이고, 좀더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뒤돌아보면 직장생활하며 많이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고, 잠시 놓아버리고 마음껏 휴식을 취했던 시간도 있었다. 양 극단의 경험이 모두 자산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장단을 비교하며 나에게 어떤 삶이 더 어울리는 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들이었으니까.


일을 하는 것은 단순히 돈만을 버는 경제활동은 아니다. 일하며 자아실현을 하는 의미도 있기에 나의 행복과도 관련이 있다. 다만, 업무의 형태가 다수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 단조로운 형태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


내게 중요한 자유와 좋아하는 것을 하는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일과 취미생활의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를 두고 좀더 고민해보려 한다. 모두에게 맞는 정답은 없다. 일반적이지 않을 지라도 나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이라면 그것을 선택할 용기를 내보고 싶다. 나의 선택에 책임지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되는거다.


그래. 모든 경험과 시간은 나다운 삶을 살기위해 시행착오의 진폭을 줄이는 시간들이다. 그래도 한 번 쉬어봤다고 전보다는 과감하게 일반적인 경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나다운 모습으로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남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결심보다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고, 나다운 게 어떤 선택인 지 아는 게 먼저다. 불안을 견디는 지금의 이 시간들이 나다운 삶의 형태를 찾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고, 가능성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상태는 없다. 나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다. 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은 나쁜 건 아니니, 나를 미워하지는 말자. 그리고, 불안한 지금의 시간을 그저 하루하루 잘 견뎌내자. 정해진 게 없는 확실하지 않은 상태는 다른말로 가능성이기도 하니까. 내 자신을 좁은 틀에 가두고 가능성을 제한한다면 오히려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싶은 나의 소망은 진정 자유로워질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자유는 불안을 견딜 줄 아는 힘에서 더 커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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