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는 담쌓고 살았던 나는 우연한 계기로, 종이에 무언가 끄적이게 되었다.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안의 것들을 쏟아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치유가 되기도 했다.
쉼의 시간을 얻은 동안 마음이 가는대로 읽고 쓰며 지내다보니,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다니는 직장이 천직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퇴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지만.. 새로운 꿈을 꾸게 되니 직장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았을 때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왠지 비슷할 것 같았다. 나를 자세히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고, 또 자유로워지는 이 느낌이 참 좋다.
하지만 갑자기 손에 쥔 것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며칠이 지나니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는 이유만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아버릴 용기도, 명분도 없는 것 같았다.
하던 일 하기 싫다고 도망치는 건 아닌가 싶어서.. 혹시나 철 없어 보일까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지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래되면 지겨워지지 않을까.. 내심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 그래.. 시간이 지나면 열정이 식는 법이지..하며 자연스럽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읽고 쓰는 삶은 점점 더 좋아진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내고 싶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취미생활이라.. 한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대안으로 있어야만, 퇴사를 할 수 있겠다 생각했으니까.
글쓰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소설을 쓸 만큼의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걸로 새로운 직업을 찾는 등 뚜렷한 목표가 없기에 누군가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설득이라기보단.. 아무 대안도 없이 퇴사를 해버리는 내 모습이 가장 못 미더웠던 건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좀 더 나에게 집중하는 선택을 하고 싶다.
내 마음속의 답은 이미 나온 지 오래지만, 최선의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경제적 이유. 돈 때문이다.
소득이 줄어 걱정이 되는 것도 있지만.. 더 우려되는 것은 돈을 벌지는 못하는 어른이 과연 어른인가?라는 생각에 그랬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자체는 좋은 거지만 돈을 벌지 않으며 한다는 건 왠지 밥값을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니까.. 아이들에게도 왠지 미안한 부모가 될 것 같고 말이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삶에서 자유롭고 여유롭게 지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만의 이유와 소명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싶다.
막상 좋아하는 것만 하며 지내다보니, 지나치게 스케일이 컸던 나의 돈 씀씀이가 오히려 줄어서 걱정을 조금 덜기도 했고. 누가 아는가? 여유를 갖고 좋아하는 것에 투자한 시간이 길어지다보면 돈이 되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꼭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읽고 느끼며 마음이 충만해지는 사람이다. 글을 통해 그 것들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에서 충분히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깨달았다. 즐거운 것을 하며 마음이 편안해지니, 나와 나의 하루가 만족스럽다.
앞으로 더 가질 수도 있는 것을 놓친다 생각하면 고민과 걱정을 멈출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면서 내게 필요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아깝다 생각해 꽉 쥐고있던 것을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조금씩 생겨난다.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은 모두 갖고있다 느끼니, 오히려 감사하다.
막연한 불안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쳇바퀴를 굴리던 삶을 살다가, 눈뜨면 하고싶은 것을 할 생각에 아침이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니, 자연스레 좋은 에너지를 소중한 가족들에게도 전할 수 있어 좋다.
나의 행복에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 역시, 나다운 하루하루에서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지만.. 최선이 아니면 또 어떠하리.
최선으로 만들어가면 될 것이고, 설사 뼈저리게 후회한다 해도 그 후회가 또 다른 선택의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나를 믿고 가보자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스스로가 마음에 드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덕분이다. 선택의 기준이 늘 타인에게로만 쏠려있던 나. 요즘은 조금씩 중심이 나에게로 기울고 있음을 느낀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