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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S Jan 31. 2023

타지에서 마주한 내 안의 젊은 꼰대

고맥락 문화 vs 저맥락 문화

이곳에 온 뒤 나는 남편의 오전 수업에 같이 들어가 번역을 하거나 글을 쓴다.

처음에는 이 학교 학생도 아닌 내가 수업에 같이 들어가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약 200명이 함께 듣는 대규모 수업에다 아무도 나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아 그렇게 하게 됐다. 물론 나도 S.O. (Significant Other, 배우자나 연인 등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말) ID 카드가 있어 학교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맞다.


수업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태도였다. 

앞자리 의자에 다리를 턱 하니 올려두고 수업 듣는 학생들은 물론 햄버거 등을 사 와서 먹는 학생도 있다. 

그중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강아지를 데리고 와 함께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만 대학원까지 마친 나에게 수업에 강아지를 데리고 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온 학생의 태도도 너무 당당해서 처음엔 시각장애인 안내견인가 생각했을 정도다.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는 내가 대신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교수님을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아무도 강아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학생 신분이니 자취를 하면서 혼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고, 강아지를 혼자 둘 수 없어 수업에 데리고 오는 것 같다. 물론 사전에 허락도 받았을 것이다.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나에게는 그런 설명이 필요했다. 


앞자리에 다리를 올려두고 수업 듣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고맥락 문화 vs 저맥락 문화


위키백과에서는 고맥락 / 저맥락 문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류학에서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는 문화에서 교환된 메시지가 얼마나 명시적 인지, 그리고 의사소통에서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연속체의 끝을 말한다.... 고맥락 문화는 작은 의사소통 제스처를 활용하고 간접적인 메시지 내의 의미를 부여하는  간접적인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보여준다. 저맥락 문화는 반대로 작용한다. 전달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언어적 의사소통이 필요하며, 명시적 언어 기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쉽게 말하면,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눈치"인 한국 문화는 고맥락 문화, 눈치는 조금 없지만 당당함을 자랑하는 미국 문화는 저맥락 문화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눈치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저맥락 문화에서는 사실(fact)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문화 간의 차이는 단순히 동양 vs 서양뿐 아니라 세대 간에서도 나타난다. 언론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90년대생(이제는 00년대생?), MZ 세대가 그럴 것이다. 과장되어 표현되긴 했지만 SNL MZ 오피스에서도 잘 나타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0115036600004



재밌는 것은 한 사람에게서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의 특징이 동시에 나타날 때다. MZ 오피스에서도 이 상황을 잘 그리고 있다. 고맥락 사회에서 자랐지만 저맥락 문화의 합리성을 부정할 수 없는, 그렇지만 여전히 고맥락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 마주하는 갈등 상황 말이다.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얘기다.



한국에서 나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맞는 것은 맞다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 내가 굉장히 MZ적이고 90년대생 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야말로 context보다 fact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새롭고 나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고 소개해야 하는 이곳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고맥락 문화의 영향력을 느끼게 된다. 저 사람은 왜 그러나, 이 문화는 왜 이런 걸까 비판하고 신경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색하게 행동하게 되고 소위 말하는 뚝딱거릴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지금의 이 시간이 쉽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눈치 보는 사회는 전혀 득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이곳 문화가 너무 좋다고 말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평생 외국에서 생활한 남편은 부모님 없이 혼자 한국 사회에 들어와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어른들의 말이나 행동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 문화가 앞으로 우리가 적응해야 할 문화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저맥락 사회에서 혼자 젊은 꼰대처럼 살아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물론 이 사회에 fit in 하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는 없지만 한국을 떠난 이상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다. 지금 나에게는 공손하되 당당하게 행동하고 나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알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90년대생, 20대, MZ세대인 나에게 타지 생활 한 달 만에 찾아온 내 안의 젊은 꼰대를 타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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