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연애, 여러 변화
연인관계라는 게 참 복잡하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일상적인 존재였다가 어느 순간에는 이성적인 매력에 끌리는 타인 같음을 순환하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방이 적절한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 아쉽고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많고, 아무튼 서로에게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거다.
연애를 여러 번 해봤지만 어떤 연애는 참 다정한 남자였지만 (착각이었을지도) 매 순간이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가 되어 1년 가까이 만났다. 또 어떤 연애는 사귀고 보니 남자가 아주 기본적인 맞춤법도 모르는 멍청이라서 정이 떨어져서 헤어졌다. ‘꽤 힘들었겠다.’라는 말을 ‘꾀 힘들었겠다.’로 말하는 묘한 불편함이 고쳐줘도 여러 번 반복되면서 폭발했다. 그리고 장거리가 되어 자연스레 맘이 멀어져서 헤어지는 일도 있었고 가볍게 만나 가볍게 헤어지는 소위 말하는 요즘 애들 만남도 해봤다. 연애를 많이 하던 20대 초반 시절에는 내 정신이 미성숙했던 탓에 내 감정 컨트롤도 못하고 매 순간이 감정적이었다. 그 당시에 하던 것들이 연애라고 할 수 있나? 연애를 하고 있을 땐 분명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헤어지고 나면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조그만 상실감만 남을 뿐. 혹을 뗀 자리에는 흉터가 남겠지만 나는 교훈만 남았다.
사람을 거르는 방법은 정말 안타깝지만, 이상한 사람을 만나봐야 거르는 기준이 정해지고 보는 눈이 생긴다. 겪은 자가 현명해지는 법이다. 단언컨대 내 모든 연애 중 가장 힘들었던 연애는 정신적으로 서로를 갉아먹는 연애였다. 그때는 지금 생각해도 진절머리가 난다. 나도 너무 어렸었는지, 그 당시에는 상대방이 화를 내면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게 점점 심해지면서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주로 싸우는(싸운다는 말도 웃긴다 일방적으로 혼났다.) 이유가 뭐였냐면 그 당시에 그 남자는 군대에 있었고 나는 외국에 있는 최악의 장거리 연애에다가 연락도 정해진 시간에만 할 수 있었는데 생활 패턴이 다른 탓에 나는 새벽 출근이고 그 남자는 밤에만 연락이 가능했었다. 그래서 어쩌다 말을 못 하고 잠이 드는 날에는 전쟁이었다. 이게 얼마나 스트레스였냐면 깜빡 잠들고 일어나서 창밖이 어두우면 헐레벌떡 메신저부터 확인했었다. 심장이 쿵쿵 뛰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메신저를 확인하면 이미 싸한 분위기로 굳어져있고 전화가 와서 너는 배려가 없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일방적인 사과를 하는 반복적인 건강하지 않은 관계였다. 나는 그 당시에 아침 7시에 일어나 출근을 했었는데 내가 뭔가 잘못 한 날이면 그 남자는 화가 풀릴 때까지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울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친구랑 같은 방에 살았었는데 친구가 깰까 봐 새벽에 뒷마당으로 나가 쪼그려 앉아 멍하니 해 뜨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이건 아니라고. 뭐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헤어지자고 한 후에도 그 남자는 내 주변 모든 애들에게 연락하고 나에게 자살협박을 했다. 어느 날은 암에 걸렸다느니, 어느 날은 자기를 죽게 내버려 두라느니. 그때는 정말로 무서웠다. 지금은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콧방귀 뀌며 무시했겠지만, 그때는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있었고 정말 나 때문에 사람이 죽을까 봐 두려워서 머릿속이 새하얘졌던 것 같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헤어졌음에도 그 남자는 공항에 찾아와 계속 연락했다. 얼굴 좀 보자고, 그때는 손이 떨렸다. 인천 공항 그 큰 곳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내 몸채만 한 캐리어를 끌고 뛰어가 구석에 숨어 있었다. 그 남자는 제 딴에는 사랑에 실연당한 애절한 남자 주인공처럼 얼굴 한 번만 보자고 찾아왔겠지만 나는 어떤 범죄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두려웠다. 그 당시에는 가스 라이팅이든 데이트 폭력이든 그런 말들이 대중적이지 않았던 때라 내가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 건지 몰랐다.
그 남자를 만나던 그 당시의 주변인들은 이해를 못 했었다. 왜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계속 만나는지 그런데 막상 당해보면 모를 것이다. 정신이 피폐해져 갈수록 제대로 된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한정 없이 상대의 감정에 휘둘린다. 나중에 정신 차려보면 나 자신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왜 그렇게 휘둘렸는지. 그 당시에 외국에 있어서 다행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정말로 스토킹 당했을지도 모른다. 아, 그 남자는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죽는다더니 안 죽었다. 정말 그저 헤어지지 않기 위한 협박이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어디라도 털어놔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주변인 몇몇에게 이런 상황을 말했었는데. 어떤 남자분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너 인기 많네?, 네 매력이 도대체 뭐길래 남자가 그렇게 매달려?’라는 식으로 말했던 거 같다. 이놈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다. 그때 제대로 욕하지 않은 게 아쉽다. 간혹 이별 후 이런 식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걔가 진짜 너 좋아하나 보다.’라는 식으로 2차 가해를 행한다. 정말 그 사람들 눈에는 이까짓게 사랑으로 보이는 걸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폭발하듯이 터지는 분노를 쉽게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없었는지 생각해보자. 그 분노를 핀을 제거한 수류탄에 비유할 수 있다. 터지기 직전의 수류탄을 건네받은 당사자는 언제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 터진다면 이리저리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 이후로도 몇몇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애인을 만나 지금은 꽤 안정적이다. 물론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다가 깊게 들어갈수록 발생하는 작은 다툼들은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연애의 다른 점은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는 거다. 가장 큰 변화는 아니다 싶은 관계는 빠르게 놓아 버리는 거다. 지금 애인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연인이라도 허용되는 선이 정확히 그어져 있다. 친구든 뭐든. 어떤 관계든 자연스레 멀어지는 관계도 있는 반면에 나는 그 자연스레 멀어지는 상황이 아쉬운 상황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연락을 꾸준히 했으면 멀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애인 관계도 예외는 없었다. 헤어지면 되는데 사귀기 전에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는데 날 만나고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라는 죄책감이 항상 동반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 맞는 관계는 그냥 놓아버리면 된다. 1년에 한 번만 연락을 해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고 매일같이 보다가도 한 달 정도 떨어졌다고 연락이 끊기기도 한다. 그저 물처럼 흘러가게 두는 거다.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도 바뀌었다. 나는 감정적인 싸움에 무척 약한 편이다. 이유 없이 서러워서 눈물이 먼저 나는 편이다. 이런 점이 나도 싫고 상대방이 또 우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서럽다. 감정적이게 되면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말이나 막 하거나 아무 말도 안 하고 대화를 끝내버린다. 그런 점들이 오해를 일으키고 더 큰 싸움으로 부추겼는데, 최근에는 감정을 정리하고 하루가 지나고 며칠이 지나든 내가 정리하고 말을 할 수 있을 때 다시 대화를 시작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과정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덕분이지만, 이런 변화가 작지만 큰 변화가 아닐까.
이런 귀찮은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다시 연애를 하고 있는 건 왜일까?
섹스 때문에?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 외로워서? 연애를 안 하고 있으면 주변에서 부추기니까? 다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 자체가 큰 발전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든. 꼭 연인관계에만 국한된 게 아닌 모든 사랑들. 나는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 상황들이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일어날 리 없는 상황들이라 그런다.
간혹 청소년 시절 딸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유독 딸기가 비싸던 철에 한 바구니에 2만 원이 넘는 큼지막한 딸기를 보고 눈을 반짝이는 나를 위해 망설임 없이 딸기를 가져가 결제하던 아빠, 클럽을 다니던 20대 초에 아침까지 술을 먹고 숙취에 절어있는 나를 위해 북엇국을 끓이던 엄마, 힘든 일이 있어 새벽까지 혼자 술을 마시는 3-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위로해주던 친구와의 전화, 크리스마스날 예쁜 케이크를 먹고 싶다며 기대한 나를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케이크를 사 오다가 넘어져서 케이크 모양이 망가져내가 실망할까 봐 다시 새로운 케이크를 찾아 사 오느라 크리스마스 케이크 두 박스를 들고 오던 남자 친구(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이런 경험들을 혼자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참 감사하다. 이 사랑으로 인해 나의 빈 곳들이 채워지고,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나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남을 사랑할 여유가 생긴다. 내가 사랑에 빠지면 또 나는 그 사람에게 이런 사랑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서로에게 부족하지 않도록 열심히 산다.
사랑이 순환되는 거다. 사랑으로 인해 더 나은 내가 되려 노력한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연애를 하면서 바뀌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면 그 연애는 괜찮은 연애라고. 지금 그런 것 같다. 이 관계에서 나의 좋지 않은 면도 발견하지만 그래도 좋은 면이 더 많아서.
내 사랑의 모양은 계속 변화하겠지만 기대가 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할까. 나는 어떤 사랑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