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리뷰 약간
전쟁영화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잔인한 장면은 잘 못 본다.
참 아이러니 하지만 그럼에도 봐두어야 된다고 생각해 전쟁영화 명작들을 꾸준히 찾아서 조금씩 보는 중이다. 밀덕(밀리터리 덕후)은 아니고 사실 원래는 전쟁영화는 쳐다도 안 봤다.
2004년도에 나온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도 사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처음 보았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영화 속 대사를 성대모사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찾아본 것이다. 하긴 한창 영화를 상영할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다. 사람들이 죽이고 죽는 광경을 보기에는 말이다. 아직 내전 중인 나라에서는 그 광경을 나이불문하고 남자든 여자든 눈앞에서 보았겠지. 전쟁을 다루는 얘기를 찾아보면 전쟁 중의 많은 군인들이 정신병을 앓는다고 하던데 그게 말이 안 된다. 어떻게 정신병이 안 생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그저 작은 화면으로 만들어진 장면들을 보는 나도 때로 정신이 힘들어지는 순간이 있다. 전쟁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한 건 그 안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다. 땅 위에선 포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며 하늘에선 시끄러운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시끄러운 전투 속에서도 사람들은 존재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자식이기도, 남편이기도 했던 사람들.
시체 썩은 내와 거대한 쥐들이 우글거리는 참호 속에서도 그들은 때로는 웃기도 했다. 절규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속에서 웃음을 찾았다. 삶에 대한 애착이 그들을 살게 했고 죽이기도 했다. 그 장면들을 상상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 정작 나는 전쟁을 경험해본 적도 없는 세대의 사람이지만. 최근 리메이크 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영화를 보며 한 줄의 글을 되새겼다. “전쟁은 배불뚝이들이 일으키고 피는 젊은이가 흘린다.”
전쟁 속에서는 한 사람의 목숨의 무게가 너무 가볍게 치부된다. 말 그대로 개죽음인 것이다. 영화 내에서도 중간중간 전선 이외의 도시에서는 전쟁 중인 나라라는 것도 못 느낄 만큼 평화로운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이질감이 참 우스웠다. 전쟁 중에 모두가 힘들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정작 전쟁을 일으킨 높은 사람들은 그 평화로움 속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와인을 마시며 그 순간에도 지금 누군가 죽고 있을지 관심도 없는 채로 자네들의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휴전을 11분 남겨두고 장군의 자존심을 채우기 위해 전선에 투입된 주인공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무의미한 전투를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주인공은 아무런 말도, 어떠한 표정변화도 없이 그저 묵묵히 끌려갔다. 죽음을 예감한 도살장 앞의 소처럼.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기에 참담했다. 영화에서와 다르게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잠깐 휴가를 나와 고통스럽게 죽은 친구의 어머니에게 친구가 고통 없이 죽었다며 신에게 맹세까지 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을 생각하면 제목을 더 이해하기 쉽다. 사실 영화만 보면 어디가 이상이 없다는 건지 죄다 이상 투성이인데 라는 생각이 드는데 제목 자체도 거짓말인 것이다. 이 영화 원작인 소설에서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허황된 애국심을 가진 선생님의 권유로 친구들과 입대를 하게 되는데 그들은 소풍 가는 마음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됐다. 19세기경의 유럽 전쟁들은 대부분 몇 주 정도면 끝나는 전투였고 각국의 청년들은 당연히 자기네들의 나라가 이길 것이라고 믿고 참전했으나 실상의 전쟁은 4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1차 대전이 끔찍했던 이유는 과학과 산업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모든 전쟁 무기들은 신식무기들로 대체되었지만 지휘관들의 전략은 기동전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던 대로 병사들을 돌진시켜 적국의 참호에 닿기도 전에 죄다 죽는 공격과 수비를 반복하는 무의미한 소모전이 지속되어 어떤 곳에서는 각국의 참호의 거리가 고작 몇 미터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서로 상대편을 점령하지 못한 채 죽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기적 같은 자발적인 크리스마스 휴전이 생기기도 했다. 각국의 초소에서 크리스마스 성가가 들려오고 서로의 전우들의 시신을 거두며 애도를 하고 축구경기를 하기도 했다. 한 병사가 쓴 편지에서는 ‘악마 같은 저들도 사람이었고 나와 같이 성가를 부르는 기독교인임을 자각하자 서로 죽이려고 싸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퍼졌다.’라는 글이 발견되었다. 독일의 도발에 끝내 미국까지 참전하게 되고 자국 병사들의 반란으로 인해 빌헬름 2세가 왕위에서 내려오고 전쟁은 종전되었지만, 독일은 현재로 따지면 300조가 넘어가는 전쟁의 빚을 갚아야 했기에 경제 대공황(지폐가 휴지조각 값으로 바뀌어 지폐를 땔감이나 벽지로 쓰기도 했다.)을 맞이해 여기에서 또다시 은행업에 주로 종사하던 유대인들에 대한 히틀러의 선동이 시작되고 세계 2차 대전의 시작을 알렸다.
전쟁영화를 보면 물론 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 계기나 그 당시 사용하던 무기들, 전략 같은 것도 궁금한 마음에 찾아볼 때가 있지만 나는 죽음 앞의 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궁금하다. 탱크를 처음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던 병사, 화염병에게 살려달라 두 손을 들고 뛰쳐나가 빌었으나 결국 시체가 뜬 물웅덩이에 불이 붙은 몸으로 뛰쳐 들어가던 병사, 그 모든 광경을 보았으나 살기 위해 자신도 상대 군을 죽일 수밖에 없는, 죽인 후에 정신을 차리고 사죄하던 그 병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생각했을까, 그래도 살고 싶다 생각했을까. 여러 영화를 보고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이 됐다. 죽으면 그냥 끝이다. 그저 품속에 품고 있던 가족의 사진, 엉망으로 꾸깃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꺼내 읽던 애인의 편지, 본인의 직업과 이름을 나타낸 어떤 증명서,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쓴 유서, 전우들과 돌려보던 포스터와 여자의 손수건. 이러한 작은 흔적들에서 그들의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결국엔 사람이다. 그렇게 쉽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다.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다행이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남겨진 사람들은 무언가든 배우게 되었다. 작은 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게 때로는 더 명예롭다는 것을 되새긴다. 우리는 이 생각을 지키기 위해 더 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