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억

사소하지만 선명히 기억나는 것.

by 박하

꿈에 대하여 생각했다. 이루고자 하는 꿈 말고, 잠에 들었을 때의 꿈.

꿈은 어린 시절이나 최근의 일상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던데, 내가 잊고 있던 아주 사소한 풍경들,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을 간혹 보여준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기억하라면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반 친구들. 승준이라는 아이였나? 그 친구가 하품하는 모습을 보는 꿈을 꿨던 적이 있다.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생각해 보니. 그 순간은 인간이 하품을 하게 되면 콧구멍이 커진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그 이후로 하품을 할 때마다 얼굴 반을 가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전에는 어디서나 입을 쩍쩍 벌리고 아무렇게나 하품했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예의라는 걸 알게 됐다. 참 이런 사소한 걸 기억하고 있다는 게 우습기도 하다. 또 종종 영화에서 본 장면이나 어렸을 때 하던 게임이 꿈에서 나올 때도 있는데 한 번은 내가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가 되어 루디브리엄 여행을 떠났던 꿈, 어떤 날은 액션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총싸움을 하며 적과 싸우는 꿈도 꿨다. 이런 꿈을 꾸게 되면 일어나서는 잊지 않으려고 계속 방금 꾼 꿈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문자로 남겨놓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오후가 돼서는 금방이고 잊어버린다. 말로 뱉어놔야 내가 그 꿈을 꾼게 사실이 되는 느낌이랄까.

외부 자극으로부터 꿈의 내용이 결정된다는 설이 있는데 나는 그 설보다는 나의 기억조각들 사이사이가 꿈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위독하셨을 무렵 집에서 혼자 자다가 외할아버지의 꿈을 꿨었다. 외할아버지는 어렸던 내가 부축해서 화장실을 같이 가드려야 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으셨는데 꿈에서의 할아버지는 뛰고 있었다. 그 깡마른 몸으로 있는 힘껏 어딘가로 뛰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에 가까운. 얼마 안 가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그런 장면의 만화를 봤다가 그 장면에 우연히 외할아버지가 입혀진.. 합성체가 아니었을까? 어렸던 당시에는 예지몽이라도 꿨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기도 했지만 지금은 꿈에서 그렇게라도 뵀으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사실 외할아버지의 얼굴은 기억에서 거의 지워졌지만 그 꿈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종종 외할아버지를 떠올린다.

그 이후로는 키우는 동물들이 꿈에 나왔다. 생전에는 나오라고 해도 안 나오더니 꼭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나서야 한 번씩 나타났다.

방충망이 닫혀있는 창문에 앉아 햇빛을 쬐고 있는 우리 집 고양이 나리. 나리는 건강할 때 그 공간을 참 좋아했다. 햇빛에 구슬처럼 빛나던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는 장면을 꿈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강아지 별이는 산책 중에 잘 걸어가다가도 종종 뒤돌아서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는데 꿈에서 그 순간이 나왔다. 혓바닥을 내밀고 웃고 있는 표정이 참 행복해 보였다. 너무 보고 싶어 하던 날에는 이런 꿈들을 꿨다. 따뜻한 꿈, 일어나서 한참을 울다가 엄마에게 이런 꿈을 꿨다 말하니 나리랑 별이가 내가 보고 싶어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 들렀다 간 거라고 했다. 사실 그냥 내가 나리랑 별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내 정신이 온통 걔네 투성이라 그런 꿈을 꾼 것뿐이지만, 그런 의미부여를 하면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그렇게 믿기로 했다.

정말 내가 보고싶어서 잠깐 들렀다면 날 봤으니 행복한 마음으로 가기를, 이라 생각하면서.

옛날 사람들이 꿈에 의미를 부여한 이유를 알겠다. 꿈보단 해몽이라고 나쁜 꿈도 좋은 꿈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그저 입맛에 맞춰 마음 편해지고자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좋은 꿈은 좋다는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쁜 꿈을 꾸면 보통은 꿈의 해석이 반대다. 그래서 나쁜 꿈을 꿔서 불안해 하기보다 복권을 사서 당첨을 기대하며 기분전환을 하는듯하다.

-꿈과 깨어있는 일상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 연구가들은 낮 동안의 일상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꿈에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프로이트 꿈의 해석)

오늘은 꿈을 꾸지 않았지만 지금 카페에서 한가롭게 노트북을 두들기는 이 순간도 어느 날 꿈에 잊고 있던 순간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곰곰이 생각하게 될 날이 올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 더 내 모습을 챙기게 된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나 간절히 꾸기를 원하는 그리운 장면, 그 어떤 것도 내가 꾸고 싶은 대로 꿈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꿈을 꼭 수면장애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신경 쓰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을 꿈에서 만나게 되는 경험이 될 수도 있기에 꿈꾸는 것을 즐기려 한다. 랜덤 뽑기 같기도 한 내 정신세계 속에서 간혹 정말 그리운 걸 얻을지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