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집 방 한편에는 평생을 키웠던 고양이 나리의 분골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내내 그 방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나리. 그 자리를 지킨 지 1년이 지나고도 우리 가족은 쉽사리 놓지를 못해 작은 상자만 덩그러니 빈방 한편을 지키고 있었다. 나리의 분골함이 있을 때는 앞에 종종 나리가 좋아하던 간식이나 딸기를 올려놓곤 했는데, 이제 나리의 분골함은 사라지고 별이의 분골함이 생겼다. 죽음도 새롭게 계속 생기는듯한 모습이었다. 분골은 1년이 지나면 곰팡이가 슨다던데. 그 시기가 되기 전에 좋아하던 산책이나 실컷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죽음도 여러 번 경험해 보면 무뎌지는 걸까.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무던하고 세 번째는 아마 더 무던해질 것 같다. 슬프지 않은 건 아닌데, 처음보다 더 자주 들여다보지는 못한다고 해야 하나. 저기 다리건너에서 서운해할까 봐 걱정이다. 사실 나는 나이를 먹고 있는데 그 아이들의 나이는 이제 멈췄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아직도 본가 현관을 열 때는 내 종아리쯤에 갈색 털뭉치가 매달릴 것 같고, 발자국 소리도 들릴 것 같다. 방구석 어딘가에는 나리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을 것 같아 아무도 없는 집안을 그저 조용히 돌아본다. 당연하게 자리하던 생명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난 후에는 그 자리가 카메라로 찍은 것 마냥 기억 속의 모습들이 계속 머무르고 있다.
-인생은 끝없이 흘러가는 순간순간의 집합체이고 사진은 정지된 하나의 순간-, 그 아이들의 인생을 멈춰놓을 순 없었기에 생각날 때마다 기억 속 순간을 들여다본다. 사실 가장 예쁘고 건강했던 시절에 시간을 멈춰놓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기에 더 사랑했다. 곤란하게도 건강하지 않고 못생겨진다 한들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젠 마지막이 될 별이 너의 산책까지도 미루는 못난 나를 너는 사랑해 줄까.
-양귀자 장편 소설 '모순'에서 인용한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