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rry Chae Feb 01. 2021

Back to the 2015, Cities 2

독일 북부 소도시 방문기

베이스캠프에서 다음 베이스캠프 도시로 이동하는 날 근교 도시 방문 일정을 많이 끼워 넣게 되는데 아무래도 숙박을 하는 도시 사이의 이동은 캐리어를 동반하는 관계로 꽤 지치는 편이라, 이왕 힘들게 이동하는 김에 그날 바쁘게 움직이고 대신 다음 날 최대한 여유 있게 보내고 싶어서이다. 그리하여 함부르크에 도착한 날에도 숙소에 짐을 거의 던져 놓다시피 하고 점찍어 둔 근교 도시로 출발했다.


함부르크 근교에는 브레멘, 킬 등 지명이 익숙한 도시들이 많지만 나는 최대한 낯선 이름의 도시를 보고 싶었다. 다들 유명한 곳, 남들 다 가는 곳 나도 한 번 가보자 할 때 나는 왜 꼭 그런 곳은 오히려 피하고 싶은 건지, 대체 이 청개구리 같은 심성은 어디서 기인한 건지, 스스로도 궁금할 때가 참 많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적어뒀는데 사실 이 도시들은 그냥 나만 모르는 유명한 곳들이었다. 뤼베크, 뤼네부르크 나만 몰랐어! 한자 동맹 나만 몰랐어!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여행을 떠난 그때의 내가 어디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면서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어 반갑고 다행이다. 이 여행기의 내용 중에는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어쨌든 그렇게 방문한, 나만 몰랐던 첫 번째 함부르크 근교 소도시는 뤼네부르크(Luneburg)


이곳은 소금광산으로 유명한데 이 소금 덕분에 뤼네부르크는 중세 시대 뤼베크(Lubeck)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에서도 부유한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소금은 북해의 청어 등 생선 보관에 필수품이었기 때문에 소금을 생산하는 도시의 중요성이 커졌던 것이다.

하지만 16세기에 한자 동맹이 와해되면서 이 도시 또한 쇠락하기 시작했으며 19세기에 들어와서는 기술의 발달로 소금의 채굴량이 증가하면서 일부 지역의 지반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결국 침강과 수익성 악화로 1980년대에 소금 채굴은 종료됐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구도심을 복원해서 관광도시로 자리잡기 전까지는 쇠퇴한 옛 도시에 불과했다. 소금 채굴에 의한 침강으로 구도심도 내려앉고 뒤틀린 곳이 많았는데 오히려 그런 부분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보수공사를 해와서 지금은 기울어진 건물이 거의 없지만 몇몇 교회 건물과 도로는 아직도 보수공사 중이었다.

마을 전체가 붉은색
여기저기 보수 중, 귀여운 간판

요한 교회(St. Johanniskirche) 사진을 찍고 보니 처음에는 카메라 렌즈 왜곡 때문에 화면에서 기울어 보이는 건 줄 알았다. 최대한 수평, 수직을 맞춰서 여러 번 다시 찍었으나 이리 비뚤 저리 기우뚱 사진이 이상하다. 맨 눈으로 다시 보니 정말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었다.

요한 교회 첨탑이 기우뚱
아담하고 단정한 시청 건물

뤼네부르크는 도시보다는 ‘마을’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정도로 규모가 작아서 마을 전체를 샅샅이 둘러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을 어딘가를 헤매다 라푼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탑을 발견했다. 정체도 모른 채 호기심에 이끌려 가까이 가 보니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물탱크였다. 빈 물탱크 위에 올라가 전망대처럼 마을을 둘러볼 수 있게 해 두었다. 역시나 높은 곳은 올라가야 제 맛.

라푼젤 탑처럼 생긴 물탱크와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

유럽은 큰 도시, 작은 도시 구분 없이 오래된 도시는 대부분 운하를 끼고 있고 독일의 도시는 어디나 그 지역만의 맥주 양조장이(!) 있다. 이 곳에도 당연히 레스토랑을 겸하는 양조장(Krone Bier-und Kaffeehaus) 브루어리 뮤지엄(Brauerei Museum)이 함께 있었고 이른 시간이라 종류별로 맥주를 마셔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가볍게 맛만 보는 걸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양조장과 박물관
아기자기한 운하 주변과 어디든 꼭 있다는 자물쇠




호수 위의 성 완결판, 슈베린 성(Schwerin Castle)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위의 성, 이라는 SNS 사진 게시물에 태그된 적이 있었다. (언니 고마워!) 그 사진에 홀려 무모하게 찾아간 곳이 첫 번째 Schloss Nordkirchen, 두 번째 Burg Virschering, 그리고 세 번째가 이번에 소개할 함부르크 근교의 슈베린 성이다.

독일에서 모처럼 화려한 양식의 성을 보았다

슈베린도 뤼네부르크와 비슷하게 작고 아담한 마을이었고 그에 비하면 큰 호수와 성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담하지만 견고하고 화려한 성의 모습에 넋을 잃고 밖으로 한 바퀴, 안에서 또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돌아가는 기차를 놓칠 뻔했다.

밖에서
안에서

서둘러 기차역으로 돌아가면서 호수에서, 거리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그곳 사람들을 봤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나 와서까지 이렇게 바쁘게 다니고 있는 걸까? 이건 어쩔 수 없는 나의 성향일까? 맥락 없이 이어지는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가다 보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겠지.

넓은 호수와 시청 앞 광장

슈베린 성을 보는 게 목표였고 그걸 달성하기는 했지만 이 도시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피해서 옛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속해있는 주(메클렌부르크포르포메른주, Mecklenburg-Vorpommern)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갔더라면 시간을 더 많이 들여 도시의 다른 곳들도 눈에 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많이 남는 도시다.




함부르크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세 번째 근교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때의 나를 위한 변명을 해보자면, 여행 전 나는 늘 시험에 쫓기고 있었기에 여행할 곳에 대한 공부를 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 학기 중에는 여행 동선을 짜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3주의 짧은 방학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마자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탔으니 비행기에서 여행 책자를 훑어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습이었다.


그래, 고백한다. 나는 뤼베크가 어떤 도시인지 여행을 가기 전에도, 여행 중에도, 다녀와서도 찾아보지 않았다. 이 도시가 '한자동맹의 여왕'이라 불렸다는데 나는 한자 동맹이 뭔지 몰랐다. '루프트한자(Lufthansa)'의 그 '한자'가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의 '한자'와 같을 거라는 정도만 '추측'했을 뿐. 몇 글자 인터넷에 검색하는 게 얼마나 힘들다고 그걸 안 했니. 그때의 나를 원망해도 이미 너무 한참 늦었지.


'미리 알고 보면 재미없어, 중요하다고 해서 너무 숙제처럼 이건 꼭 봐야 해! 이런 강박이 생기는 건 싫어'라면서 나의 게으름을 애써 포장해왔는데 사실 내가 여행하는 곳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 모르고 무작정 가서 느끼겠다는 것. 그건 여행자로서 지극히 게으르고 예의가 없는 자세가 아닌가. 이번 여행을 통해, 아니 부끄럽게도 여행을 다녀온 지 6년이나 지나 이 여행기를 쓰면서 이제야 깨달았다.


사실 비단 이번 여행의, 이 도시들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어떤 (음악, 미술, 건축, 도시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에서의) 작품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알든 모르든 직접 마주했을 때 개인적인 감상은 당연히 다를 수 있다. 좋을 수도, 별로일 수도, 아름답게 기억될 수도, 한 번 보고 기억에 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작품의 중요성이나 의미를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그건 내가 스스로 감상할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미련한 짓이 아닌가. 알지만 굳이 보지 않는 것과 몰라서 못 본 것은 전혀 다르니까. 물론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작품을 예상치 못하게 발견했을 때의 기쁨도 상당히 크지만 그런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니 그런 요행만을 바라며 여행에 임하는 건 위험하다.
여행 전에 최선을 다해 알아보고 공부해야 여행에서 내가 감상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최대한 넓어진다는 걸 여행기를 쓰는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개념 없는 여행자를 허락해준 아름다운 도시들에 감사하며, 제대로 보고 느낄 기회를 갖지 못한 그때의 나를 위로하며, 남은 여행기를 적어보려 한다.




낯선 이를 여유와 미소로 반겨주는 곳, 뤼베크(Lubeck)


뤼베크는 독일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이 곳에 성을 세우고 마을이 건설된 역사는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시대에는 한자동맹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장 강력한 무역의 중심지였으나 이후 많은 전쟁과 정치적 사건 속에서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은 첫 번째 도시가 되었다.

어서 와, 뤼벡은 처음이지?

제 무게를 못 이겨 점점 기울고 있다는 홀스텐 문(Museum Holstentor)이 맨 처음 맞이해주었다. 성문을 만들 때 얼마나 많은 과시욕이 함께 들어간 걸까. 성문이 기우는 게 그 무게 때문은 아닐까. 육중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볼 때마다 인간 기술의 위대함과 교만함을 동시에 떠올린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여기도 기우뚱
귀여운 간판이 대롱대롱
도시와 어울리는 간판들

이 많은 중세 느낌의 건물과 도시들은 거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복원된 모습이다. 전후 수십 년 간 전쟁으로 파괴된 구도심을 복원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일찍이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을 곳곳 거리가 예쁜 곳

기대하고 있던 맥주 양조장(Warsteiner brauerei)은 아쉽게도 1년 동안 영업을 쉰다는 안내만 덩그러니 붙어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내년까지는 안 한대요

시청이 있는 광장과 아름다운 작품을 소장한 대성당, 작은 박물관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생가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 보고 싶은 도시. 다시 가게 된다면 꼭 이틀 정도 머물면서 마을 곳곳을 다 둘러보고 강변에서 느긋하게 맥주 한 잔을 즐기고 싶은 정겨운 마을.

한가롭게 강물을 보며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곳



이렇게 뤼베크를 마지막으로 함부르크의 근교 도시 나들이는 끝이 났다.

독일은 전국적으로 철도망이 촘촘해서 대도시 중앙역에서 근교 작은 도시의 중앙역까지 가는 것은 참 쉽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쉽다. 작은 역에 내려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도시로 향하는 출구를 찾을 수 있고 그나마 출구로 나가서도 100m에 한 번씩은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누군가를 붙잡고 확인해야 한다. 역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당연히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 또한 매번 깨닫고 있다.


하지만 작은 도시들은 그래서 소중하다.


자주 멈추어 서면 그만큼 구석구석까지 눈에 담을 수 있고 엉뚱한 곳으로 헤매다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이에게도 기꺼이 친절한 이들을 100m에 한 번씩 만나고 있으니까.


그리하여 여행의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Back to the 2015, Hambur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