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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Chae Feb 02. 2021

Back to the 2015, Berlin 1

베를린, 이게 꿈은 아니겠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고 그 도시에 있는 나를 가장 많이 상상해 온 곳이 바로 베를린이었다. 독일의 수도이며 유럽에서 런던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 중세 시대 이후로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제국의 수도였으며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할된 베를린 또한 동독의 수도(동베를린)로 오랜 역사를 이어 온 도시이다.


나에게는 유럽의 오래된 대도시들이 주는 어떤 비슷한 인상이 있다. 오랜 역사와 사건들이 도시 아래 켜켜이 쌓여 두텁게 현재의 도시를 받쳐주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안정감.


대한민국의 서울은 또 다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대도시라는 건 같지만 서울은 왠지 매번 지나온 역사를 걷어 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 강하다. 지난 역사가 부끄럽다는 듯, 티끌 만한 얼룩 한 점이라도 남길 수 없다는 듯 그 얼룩을 지우기 위해 다른 아름다운 순간들까지 한꺼번에 지우고 새로 칠하기를 반복해 온 도시 같다. 덕분에 늘 젊고 새로운 도시라는 인상은 강하지만 오랜 역사의 산물들은 골동품처럼 먼지를 덮고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길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는 문득 쓸쓸할 때가 있다.


독일의 베를린은 다른 유럽의 대도시와도, 서울과도 또 다른 느낌이다. 도시 밑에 깔려 있는 두터운 역사를 그저 발아래 두는 것이 아니라 자꾸 들춰서 꺼내 보고 행여 먼지라도 쌓일까 끊임없이 들여 보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은 느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옛 것과 새것이 이질감 없이 공존하는 도시, 나에게 베를린은 그런 도시이다.


역사적인 곳에 선다는 것, 그곳에 서서 실제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사진이나 자료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그 순간의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역사의 일부를 함께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만 장소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무게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고 또 가봐야만 하는 도시였다.



베를린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일부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 동쪽에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그린 100여 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이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야외 공개 갤러리로 알려져 있다. 야외에 공개되어 있는 관계로 많은 그림이 낙서나 침식으로 심하게 훼손되어 왔고 2009년에 한 비영리 단체가 훼손된 작품을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하여 작품의 완전한 복원과 보존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낙서도 이미 작품의 일부인 듯
이렇게 남아있는 장벽이 신기할 뿐

1.3km가량 쭉 이어져 있는 장벽 이쪽저쪽을 계속 걸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만 봤던 그 시대, 이곳의 모습을 떠올리며, 양쪽을 나누던 장벽은 무너지고 예술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 순간들을 그리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오베르바움 브리지(Oberbaum Bridge)를 건너 히피스럽고 약간은 무서운(?) 분위기의 골리쳐 공원(Gorlitzer)을 지나면 한적하고 여유로운 동네가 나온다. 이곳까지 가게 된 건 순전히 Five elephant라는 카페를 가기 위해서였다.

다리를 지나가는 지하철과 건너편에서 멀리 보이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너무 자유로워서 좀 무섭기까지 했던 공원

여행을 오기 전 우연히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해서 커피 잔을 만드는 독일의 스타트업(Kaffeeform)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때는 인터넷에도 정보가 별로 없었다. 재활용 과정이나 공정이 궁금했던 나는 회사 측에 직접 메일로 방문 요청을 했고 별 기대감 없이 보냈던 메일에 답장이 왔다. 공장 방문은 어렵지만 베를린에 자신들의 컵을 사용하는 카페가 있다며 가면 제품을 볼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이 카페 Five elephant이다. 결과적으로는 어째서인지 카페에서 그 컵을 볼 수도 살 수도 없었지만 이 동네의 아기자기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그 실망감을 위로해주었다.

온 김에 커피 한 잔 하고 가자



서울에는 한강, 런던에는 템즈강이 있고 여기 베를린에는 슈프레 강(Spree Fluss)이 있다. 강변을 마치 해변처럼 조성해 놓은 곳도 있고 밤이면 클럽이 열려 화려하게 바뀐다는 강 주변을 여유롭게 거닐었다.

Hi, there!


날도 덥고 목은 마르고 역에서 자몽 음료수를 한 병 샀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병을 땄는데 (병따개는 여행의 필수품) 냄새가 뭔가 이상하면서도 익숙하다. 아, 도수가 있네? 알코올이 들어있네? 어쩐지 맥주가 아니라 그냥 음료수가 마시고 싶다 했지. 이렇게 어김없이 오늘도 (정말 무슨 알코올 중독자처럼 지하철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독일에선 음료수처럼 보여도 꼭 도수를 확인하자.

알코올 2.5%, 엄연히 술입니다



다음은 어떤 설명이나 수식어도 떠오르지 않았던, 보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던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이다. 전쟁의 상처와 참혹함을 기억하기 위해 보수하지 않았고 대신 바로 옆에 새로운 교회 건물을 지었다. 실내는 푸른빛이 서늘하면서 신비롭다.

전쟁의 상흔을 계속 봐야 하는 건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엄청난 상처일 텐데, 이제는 지나간 일로 역사 속에 묻어 버리자 할 법도 한데, 이렇게 상처를 드러내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한다. 여기 우리의 아픔이 있다고, 지난날의 잘못과 그로 인한 참담함이 여기에 아직 있다고, 그러니 긴장을 늦추지 말고 경계하자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햇빛은 강했지만 기분 나쁘게 끈적한 날씨는 아니어서 신나게 걸어 다녔다. 나도 모르게 베를린 공대 캠퍼스를 누비고 베를린 전승기념탑(Victory Column)을 지나 티어가르텐(Tiergarten)을 통과해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까지 걸었다.

캠퍼스를 걷고 있었는데 어느덧 공원이다
공원을 걷다 승전기념탑을 만났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1700년대 후반에 건축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의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일부가 파괴되지 않고 남았다. 전쟁 이후 약 1년 동안 재건축이 이루어졌으며 독일 분단 시절에는 허가받은 일부 사람들이 이 문을 통해서 동·서 베를린을 왕래할 수 있도록 통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내리쬐는 태양을 배경으로 서 있는 문이 위풍당당하게 멋지다.

베를린을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


꾸밈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옛 수송관들 너머로 베를린의 또 다른 상징인 텔레비전 탑(Berliner Fernsehturm)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내일의 베를린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이런 베를린이 좋았다


베를린, Berlin. 도시 이름 앞부분 ’베르(Ber)' 발음이 곰을 뜻하는 독일어 ‘베르(Bär)’ 같이 들리기 때문에, 도시의 상징 문양에 곰이 그려져 있고 도시 곳곳에서 곰을 만날 수 있는, 어쩐지 한편으로 귀여운 도시.

쿠앙! 여기가 베를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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