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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Chae Feb 04. 2021

Back to the 2015, Dresden

이건 마치 다른 세계

베를린에서 남동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드레스덴(Dresden)은 체코와 인접해 있어서 프라하와 묶어서 들르기도 하는 도시이다. 베를린에 있다가 가서인지, 내 눈에는 그저 아담한 옛 도시로만 보였는데(신시가지는 안 보고 구시가지만 봤으니) 알고 보니 독일 동남부 작센주(Sachsen)의 주도였다.


고전 건축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 도시의 구도심은 사실 대부분이 통일 이후 복원된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도시는 거의 궤멸되었고 종전 후 동독령으로 들어가면서 일부 복구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공산 정권 하에서의 복구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심지어 드레스덴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던 성소피아 성당(Sophienkirche)이 그 시기에 철거되기도 했다. 이후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지 구도심은 거의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그나마 몇 군데는 사회주의 양식으로 재건되어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렇게 방치되고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정권 아래 난개발(?)이 된 도시를 통일 이후 독일의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또한 연방 정부의 지원 아래 작센주 정부는 구시가지 내 사회주의 시절의 건물들을 전부 철거하고 궁극적으로는 구시가지를 폭격 이전의 상태로 복구시키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워 현재까지 작업을 착수하고 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깔끔하고 현대적인 건물이 먼저 맞이해준다. 드레스덴의 본모습을 감추려는 걸까? 5분도 채 걷지 않아 동독 시절 사회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로 둘러싸인 알트마르크트(Altmarkt) 너머 내가 보고 싶던 도시의 모습이 살짝 드러나기 시작한다.

실용성과 단순함을 강조한 알트마르크트-갤러리 건물

고고학 발굴지가 먼저 보이네? 발굴 중인지, 복구 중인지 어쨌든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아직도 복원, 복구는 진행 중



광장 너머 빼꼼히 돔을 보여줬던 성모교회(Frauenkirche Dresden). 오랜만에 만나는 바로크 양식 교회다. 개신교 교회답게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동상도 멋있게 서있다. 교회와 이 동상까지 있어야 노이마르크트(Neumarkt)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라도 하는 듯 잘 어울린다. 제2차 세계대전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교회는 2005년 복원이 완료되었다. 광장 한편에 건물의 잔해로 보이는 돌덩어리가 놓여있었다. 꽤 오랜 시간 이 자리에는 이런 시커먼 돌무더기가 무덤처럼 쌓여 있었겠지. 종교의 무덤이자, 평화의 무덤. 평화는 어쩌면 종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광기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끔찍할 수 있는지, 이 그을린 돌 너머 교회를 보며 상기하기를.

대칭, 균형, 조화의 극치인 교회 건물



교회를 지나 엘베 강(Elbe River) 근처로 향했다. 함부르크를 지나 북해로 흘러 들어가는 그 엘베 강이 이곳을 먼저 지나고 있었다. 야경이 더 근사할 것 같은 아우구스투스 다리(Augustusbrucke)가 저 멀리 보이고 그 앞으로 가톨릭 궁전 성당(Katholische Hofkirche)드레스덴 성(Dresden Castle)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그저 감탄!
괴테가 유럽의 테라스라고 극찬한 브륄의 테라스(Bruhlsche Terrasse)에서

구도심의 아름다운 건물은 대부분 검게 그을린 건물 위에 흰색으로 보수되어 얼룩덜룩해 보인다.

첨탑 사이로 하얗게 비치는 달
화려한 제단 장식 사이 모던한 제대가 돋보인다



하늘은 파랗게 맑고 아무 데나 찍어도 엽서다. 거대한 성당 너머로 츠빙거 궁전(Zwinger Palace)이 보인다. 아우구스트 2세 통치기 가장 화려했던 드레스덴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건축물이다. 들어가자마자 귀여운(?) 왕관이 눈에 띈다. 실제로 ‘왕관의 문(Kronentor)’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문이다. 한쪽 성벽 누각(Wallpavillon)은 보수 공사 중이다. 궁전은 현재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나 방대한 전시물을 볼 시간은 없을 듯하여 궁전의 건축물과 정원을 충분히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내 마음을 빼앗아 버린 왕관의 문

전에는 한쪽을 다 가리고 보수 공사를 하는 건축물이나 유적지를 보면 모처럼 멀리서 많은 시간과 비싼 돈을 들여 여행을 왔는데 꼭 내가 오는 이때 공사가 겹치는 게 심통이 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는 만들었고 누군가는 살면서 점유했던 곳을 나는 그저 잠시 눈에 담고 지나갈 뿐이니, 훗날 그곳에 머무를지도 모를 이들을 위해, 혹은 나처럼 눈과 마음에 담기 위해 방문할 모두를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디 아름답게 복원되기를 바란다.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오페라극장인 젬퍼오퍼(Semperoper Dresden)를 바라보며 여유 있게 잠시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로 했다. 두 차례에 걸쳐 건물의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의 이름을 따서 극장 이름을 붙였다고.

언젠가 공연을 보러 다시 오리라

오페라극장 맞은편에 있는 카페 싱켈바허(Shinkel wache)에서 이 지역 전통 케이크(아이어셰케, Eierschecke)와 맥주를 시켰다. 아이어셰케는 맛과 향은 치즈 케이크 같은데 식감은 조금 더 폭신하다. 치즈가 되기 전 상태의 우유와 달걀을 사용해서 만든다고 한다. 무엇보다 역시 맥주와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음식은 없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조합이었다.

카페에서 사람들이 마시는 게 뭔지 살펴보니, 맥주 > 커피 >>> 물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마어마한 벽화가 등장했다. 군주의 행렬(Furstenzug)은 드레스덴 성의 외양간(stallhof) 외벽에 새겨진 벽화로 오랜 세월 이 지역을 통치한 베틴가(Wettins)의 8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되었다고 한다. 원래 그림이었으나 시간에 따른 손상에 의해 도자기 타일로 복원을 한 결과이며 20x20cm 크기의 마이센 도자기 타일 23,000여 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역대 군주 35명과 공작을 비롯해 과학자, 장인, 농부, 아이들과 같이 모든 연령대의 평범한 59명의 사람을 연대로 나누어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와 규모만큼 놀라운 것은 도시를 초토화시킨 드레스덴 폭격 이후에도 이 벽화는 크게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었다고 한다.

외양관 벽이 이렇게 화려할 일?

이 벽화를 드레스덴과는 작별을 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른 도시가 아니라, 낯선 다른 나라에 다녀온 것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오래 여유롭게 머물고 싶다.

비 오는 날이나 해가 일찍 지는 계절의 어느 날 다시 와서

도시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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