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rry Chae Feb 05. 2021

Back to the 2015, Nurnberg

같은 듯 다른 두 도시, Bamberg/Nurnberg

독일의 동쪽 지역을 벗어나서 남쪽으로 내려갈 시간이다. 오늘도 역시 숙소에 짐만 맡겨 두고 근교 도시 밤베르크(Bamberg) 먼저 다녀오자.


밤베르크에 가는 목적은 두 가지였다. 강을 바라보며 사진 찍기와 밤베르크 지역 맥주 마시기.

작은 마을이고 볼 게 많지 않으니 여유로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역에서 얼마 가지 않아 곧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 풍경이 바뀐다. 그리고 바로 나타난 레그니츠 강(Linker Regnitzarm). 내가 상상하던 딱 그 풍경이다! 좁은 폭을 물이 빠르게 지나가며 부딪히는 소리, 속도감이 시원하다. 다리 중간에 놓인 건물인지 관문인지 헷갈리는 건축물은 과거 시청사로 쓰였다고 한다. 강변에 있는 시청 건물은 몇몇 도시에서 본 적이 있지만 강 위에 있는 시청이라니, 신기하다.

화려한 벽화의 옛 시청 건물


몇 걸음 옮기지 않아 경사 높은 언덕 중간에 미끄러져 내려올 듯 서 있는 대성당(Bamberger Dom)이 보인다. 늘 그래 왔듯이 교회나 성당 건물은 잠깐이라도 들어가게 된다. 한눈에 봐도 몇 백 년은 되어 보이는 성당, 역시나 1200년대에 완공된 건물이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중간 어디쯤 걸쳐있는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건축 양식


성당 바로 뒤편, 적당히 넓은 광장에 주변을 둘러싼 단정한 건물. 뭔지 안 찾아봐도 용도를 알 것 같다. 관공서가 분명할 거라고 확신이 드는 이 건물들은 현재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옛 궁전(Alte Hofhaltung)과 주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 신 궁전(Neue Residenz)이다. 옆으로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골목을 거닐어 본다.

옛 궁전의 모습
신 궁전과 골목길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여기가 어디쯤인지 모르겠다. 이제 그만 내려갈까 하고 주변을 보니 언덕 너머 보이는 저 멋진 건물은 뭐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교회 건물인데 잠깐만 가까이서 보고 갈까? 어느새 두 번째 목적은 잠시 뒷전으로 미뤄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간 이곳은 성 미카엘 수도원(Kloster Michaelsberg)으로 지은 지 1000년 정도 되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맥주 양조장과 맥주 박물관이 있고 수도원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전경이 유명한 곳이었다. 현재는 공립 양로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래로 밤베르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뿐만 아니라 가슴도 탁 트이는 느낌. 올라오길 잘했다.

반듯하게 깔끔한 모습
맥주, 와인, 식초 등 특산품도 판매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


이러다 맥주 냄새도 못 맡고 돌아가야 될까봐 갑자기 초조해졌다. 서둘러 목을 축이러 가자. 사실 밤베르크에 온 진짜 이유는 라우흐비어(Rauchbier)라는 이 지역 특산(?) 맥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닌가. 맥주의 향과 맛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다른 음식 없이 맥주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맛을 음미했다. 한국에는 훈제 맥주로 알려져 있다. 맥주 전문가도 아니고 아는 것도 많지 않지만 독일에서 마시는 생맥주는 정말 다르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깊고 진한 맥주를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훈제향이 인상적인 맥주
돌아오는 길 자꾸 멈추어 사진을 찍게 하는 풍경




다시 돌아온 뉘른베르크(Nurnberg). 하루 묵어갈 베이스캠프이다. 쾰른 이후 오랜만에 호텔에 묵게 되었다. 방도 좁은 싸구려 호텔이지만 1인실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뉘른베르크는 유대인의 권리를 박탈한 법률로 악명 높은 ‘뉘른베르크 법’이 발표된 곳이기도 하고 전쟁 후 연합군이 나치 독일의 전쟁지도자에 대한 국제군사재판이 열린 도시이기도 하다. 어쩐지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여행 당시에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르고 방문했던 터라 나치의 광기를 실체로 느낄 수 있는 공사가 중단된 전당대회장이나 그 광기에 대한 처벌이 판결된 재판소는 아쉽게도 직접 보지 못했다. 다음에는 꼭 내 두 눈으로 보고 싶다.


그렇다면 도시의 이런 중요한 역사적 배경도 모른 채 이곳을 온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바로 맥주와 소시지! 이 지역의 특산물로 일반적인 소시지와 다르게 약간 얇고 크기가 작은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꼭 먹어보라는 강력 추천에 따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중간쯤에 있는 이 도시에 머물기로 한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도시를 둘러보지 않고 먹고 마실 수만은 없지. 호텔을 나와 천천히 산책을 시작했다. 어딘가를 찾아갈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서 길이 나 있는 대로 흘러가듯 돌아다녔다.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몇 걸음 가지 않아 화려한 고딕 양식의 교회 건물이 보인다. 성 로렌츠 교회(St. Lorenzkirche)는 전형적이고 워낙 거대한 성당을 많이 봐온 터라 첫인상은 다소 수수해(?) 보였는데 확실히 가까이 갈수록 높은 첨탑과 화려한 조각 장식이 돋보인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늘 놀라운 규모


성 로렌츠 교회 앞을 지나 성모교회(Frauenkirche)가 있는 중앙 광장(Hauptmarkt)으로 갔다. 성모교회가 유명한 것은 성당 정면에 있는 시계이다. 1509년에 제작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특수장치 시계로 정오마다 인형들이 나왔다 들어간다. 이 광장에는 쇠너 부르넨(Schoner Brunnen)이라는 아름답고 거대한 분수가 있다는데 그때는 그런 분수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뿐더러 광장 한쪽을 완전히 모래사장으로 꾸며 놓고 여름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에게 신경이 팔려 광장은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옆골목으로 밀려 나왔다.

성모교회와 펨보하우스

언덕 위에 있는 성을 향해 가는 길에 지붕 장식이 특이한 건물이 있어 일단 무작정 사진을 찍었다. 이번 여행은 유난히 선 사진, 후 검색을 많이 하게 된다. 이 건물은 펨보하우스(Stadtmuseum Fembohaus)로 뉘른베르크의 가장 큰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라고 한다. 현재는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말 관광 명소 간의 거리가 멀지 않다. 언덕을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성문이 나타난다. 카이저 성(Kaiserburg) 1100년대에 지어졌다는데 900년 전 짓기 시작한 건축물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 우리 눈에야 황제의 성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작고 투박하지만 그 당시 이 높이에 이런 건물을 짓는다는 것만으로도 상징적으로 큰 의미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징이든 의미이든 이 높이에서 내려보는 도시의 모습이 아름답다.

이게 성인가 싶을 정도로 아담하지만 도시 광경만큼은 아담하지 않다


도시의 모습을 충분히 눈에 담고 난 후, 다시 마을로 내려오다가 만난 성 제발트 교회(Sankt Sebaldus Kirche)는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이 오르간 연주를 했던 교회로 더 유명하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재해 있어 어쩐지 인상이 밤베르크 대성당과 비슷하다 했더니 설계 시 그곳에서 모티브를 많이 가져왔다고 한다.

밤베르크 대성당이 생각나는 앞면


운하를 끼고 있는 도시들이 다들 그렇듯이 여기저기 다리가 많이 보인다. 다리 한쪽에 탑처럼 보이는 건축물이 함께 세워져 있는 모습이 독특해서 이 다리, 저 다리 다 건너면서 사진을 찍었다.

Kettensteg / Maxbrucke / Henkersteg


강변을 따라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먹으러 가는 길에 페그니츠 강(Pegnitz River) 위로 툭 튀어나와 있는 건물을 사진에 담았다. 일부는 양로원(성령 양로원, Heilig-Geist-Spital)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은 카페로 운영되는 건물인데 앞을 오갈 때마다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냥 저 강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강 위에 떠 있는 건물과 도시 곳곳에 있는 벽화


뉘른베르크의 마지막을 장식할 오늘의 본론, 소시지와 맥주를 먹으러 간 Restaurant Bratwurst Roslein. 사실 이 소시지를 먹기 위해 이곳을 와야 할 정도로 특별하진 않았지만 이왕 이 도시에 왔으면 먹어볼 만한 음식이다. 독일에서 소시지를 먹을 때마다 맥주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별해 보이진 않지만 맥주와 찰떡같이 어울리는 맛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 볼 것들을 많이 놓친 것만 같아 아쉬운 뉘른베르크도 다시 방문할 도시 목록에 이름을 올려 두는 것으로 오늘 하루도 마무리가 되었다.


그때는 나름대로 열심히 보고 먹고 다녔지만 돌이켜보면 조금 더 많이 돌아다니고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조금 더 잘 먹었더라면, 무엇보다도 더 많이 공부하고 알고 갔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독일에서 현지 지역 맥주를 마시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니 도시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기록을 남기고 있자니 역시 모르는 것보다는 알고 가는 게 훨씬 낫다. 다음 여행은 열심히 공부하고 가는 걸로!

매거진의 이전글 Back to the 2015, Dresde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