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로 연재했던 로맨스 소설의 관작수(관심작품 등록수)는 400명 남짓이었다. 그것도 제일 좋았을 때의 기록이었고, 내 기억 속에는 100-200 사이로 남아있다. 아마도 그 숫자를 가슴에 새기고 작품을 오래 쓴 탓인 듯하다. 100편이 넘는 작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뇌리에 새길 정도로 염두에 두었던 100-200이라는 숫자는 훨씬 더 절박하게 느껴진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가 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던 작가로서는 이미 붕괴되고도 남았을 몸과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고 갔던 것이다.
그 소설은 결국 연재 중단이라는 불명예로 끝이 났고, 웹소설 작가로서의 사망 선고를 오늘날까지도 내게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도 그 소설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그때 만났던 독자들 역시 내 뇌리 속에 함께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더럽게 인기가 없는 소설이었던 것치고는 댓글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달리는 작품이었는데, 댓글부대라고 해도 좋을 소수의 독자들이 한 회도 빠짐없이 댓글을 달아주러 왔기 때문이다.
열 명 남짓되는 독자들이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를 나보다 더 예뻐하고 응원했다. 나만큼 고민하고, 오만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리며 인물들의 입장을, 마음을 헤아리려고 했다. 그들은 캐릭터만큼 작가인 나를 염려하고 응원해주기도 했는데, 그 마음들이 늘 벽돌만 한 메시지였던지라, 힘을 안 낼 수가 없었다. 힘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2000원짜리 떡볶이만 먹고 글을 쓰는 날들이어도, 행복을 아주 단념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들의 댓글 덕분이었다. 1000명의 관작수와도 바꾸지 못할 1000개의 댓글을 나는 가져보았다. 덕분에 나는 완전히 망하지도 못했다. 얼마나 고마운지를 제대로 말하고 싶어서 여전히 쓰고 있다.
2024. 0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