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의 노동 대부분을 쓰는 일로 보내면서도 일기엔 소홀했다. 도서 리뷰에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당시의 기분을 몇 줄 첨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는’이라는 주어가 거북했고, 일기는 찢어버리려고 썼다. 자신의 기록을 꼬리처럼 자르고 내빼는 이 몹쓸 버릇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떠오르는 이름이 있지만 아는 척해선 안 된다. 일기 속에 숱하게 태워졌던 그 이름이 지금 회자되는 건 그와 나 모두에게 끔찍한 일이니까. 그저 자신의 결벽증 때문이라고 하자.
며칠째 <미스터 션샤인>을 앓고 있다. 마지막 화를 본 지 거의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도 극 중 인물들이 죽던 장면들이 무시로 떠오른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었다. 밥 먹는 동안 잠깐씩 보려고 틀어놨다가 점심마다 눈물밥을 먹었다. 내가 이걸 왜 틀어놨을까, 뒤늦게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꾸역꾸역, 고집스럽게 마지막까지 달렸다. 김은숙 작가는 로맨스를 정말 잘 쓴다. 이쪽, 그쪽이 그렇게 로맨틱하고 충만한 말이 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만두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오늘은 하지 맙시다”, 뭘 그만하고 싶어질 때마다 애신의 목소리가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함안댁 목소리는 거의 귀에 박인 것 같은데, 다른 말도 아니고, “어데예” 그 말 한마디다. “어데예.” , “어데예.” 뭘 어쩌자고 이러는 걸까, 내 몸은. 또 머리는.
요즘 윤동주의 시를 필사하고 있다. 책상에 앉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하루 한 면을 채울 수 있는 글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꺼내왔다. 이 시집이 끝나면 기형도의 시를 필사할 것이다. 그 후엔 이성복, 최승자, 아니면 랭보나 김소연. 아 샴토마토도 좋겠다. 좋아하지만 늘 발췌독만 해왔던 이들. 좀 더 깊이 닿아보는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지? 정말 좋아한다고.
오늘 필사한 시는 「병원」이었다. “나는 아파서 왔는데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는 문장이 종일 잊히지 않았다. 부득불 마음이 어그러질 때마다 곱씹었다.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어제처럼 반복되는 오늘일 뿐이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이런 일기를 쓰고 나면 무슨 일이 있냐는 질문을 꼭 한 번은 듣게 되는데, 20년이 되도록 나의 대답은 같다. 아무 일도 없다고, 아주 무탈하고 평소랑 꼭 같다고. 다만 내 일기가 이렇게 생겨 먹은 것뿐이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꼬리를 자를 궁리를 하지.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폐기할 수 있을지, 오만 가지의 방법으로 궁리하며.
2019년 7월 8일
생애 첫 도서전에 참석했고, 성우지망생 모임 친구들과 우정 스냅을 찍었으며, 아르테 책수집가와 예스 파워 문화 블로그 활동으로 정신없이 보내던 여름에 쓴 일기이다. 이 일기를 쓴 7월 후로 약 3개월 동안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던 것을 보니, 바쁜 몸과 달리 정신은 지칠 때로 지쳤던 것 같다.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시 필사를 마음먹은 듯한데, 시인들의 이름을 길게 나열한 것이 민망할 만큼 그 일은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갱지를 두 뭉텅이나 사버려서 어떻게든 종이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저질러버린 일일 수도 있다. 저 때의 글씨는 친구들이 “나나11시체”로 부르는 스타일인데 지금의 글씨체와 판이하게 하게 다르다. 저 시절의 글씨체는 내 비뚤어진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라도 한 듯 비뚜름하다. 그렇게 따져 보면 지금의 반듯한 내 글씨체는 다소 기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저기서 여기까지 마음 생김새까지 극적으로 변한 건 아니어서. (202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