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일 년 오월 십칠일.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각. 일을 마치고 씻고 들어와 침대에 눕기 전에 이 글을 쓴다. 오늘은 점심을 먹은 후로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일이 많기도 했거니와, 어서 끝내고 다른 일, 이를테면 글을 읽거나 책을 읽는 등 순전히 나를 위한 일에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싶었다. 이막이 원고를 이번 달 말까지 제출해야 했다. 의무인 건 아니지만 거의 의무처럼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이고 확실하게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지 않은 이상 결국은 써야 한다. 이번주도 일하느라 다 보낼 것 같아서 솔직히 얼마나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잖아도 자신 없는 글이 더욱 자신 없어지는 이유이기도 한데, 희한하지. 그런데도 왜 계속 쓰려고 할까. 막연하게나마 나는 계속 쓰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고, 이 사실이 몹시 안심이 되면서도 징글징글하다. 다들 이렇게 스스로를 징글징글하게 여기며 무언가가 되어가는 걸까. 징글징글하다는 건 그만큼 지겹게 반복해 온 일이라는 뜻일 텐데,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고 느꼈던 나도 사실은 꽤나 무엇인가를 해온 게 아닌가 싶어 턱을 조금 치켜들게 된다. 이만한 자기 긍정은 괜찮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눈이 자꾸 감겨서 더 오래 쓰지 못하겠다. 사실 지금까지 무슨 말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쓰는 글. 휘발될 것을 알면서도 쓰는 글자들. 휘발되길 바라며 쓰는 글. 그로써 역할을 다하는 글. 그냥 글자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일을 너무 오래 많이 해서 손목도 손가락도 손톱도 얼얼하고 아픈데, 그런 통증을 글자를 쓰면서나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만큼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서 글밥을 먹고살 수 있을까. 이토록 불확실한 질문 몇 개가 무한으로 반복되며 늘어가는 하루하루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다만 내게 약간의 여유가 있다는 게, 정신적으론 빈곤하고 허름하며 내리막길이어도 쫓기지 않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감사할 뿐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런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선한 부모의 덕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 없다.
2021. 05. 17
아버지 일을 한창 거들어서 할 때는 온종일 일에 치여 살아야 했다. 눈 뜨자마자 현장에 나가서 새벽이나 되어야 겨우 방에 돌아오는 생활을 몇 달이고 반복했다. 일이 미친 듯이 몰려들 때이기도 했지만,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업무 특성상 물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미친 듯이 손을 사용하다 보면 손가락은 물론 전신이 다 얼얼해진다. 앉아서 하는 일이어서 허리에도 무리가 가고, 잘 붓지도 않던 몸이 퉁퉁 붓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손목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아파서, 자다가 할아버지를 찾으며 자주 깼다. 할아버지 너무 아파요. 잘할게요. 도와주세요. 엉엉. 울면서 빌었다가 눈뜨면 또 멀쩡하게 출근을 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긴 했는데, 책을 들춰보거나 소설을 쓸 생각은 할 수도 없었기에 역시 싫었다. 일기라도 쓴 게 놀라울 정도다. 손목이 아플 때마다 왜 내 손목이 글쓰기 때문에 아프지 않는 건지를 자주 물었고, 그만큼 불행해했다. (2024. 0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