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써두길 잘했다, 파쇄하는 중이지만
하루종일 예전에 썼던 소설을 읽었다. 2017년 연재했던 작품인데, 그때는 출력본으로 퇴고를 해서 거의 모든 회차의 글이 보관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마지막 퇴고본이었다. 최종의 최종의 최종본으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출력한 후 한 번 더 읽었던 원고. 그런데도 깨끗한 원고가 없었고, 수정하라는 메모만 잔뜩이었다. 아마도 메모한 대로 수정해서 새 회차를 등록했겠지만, 그 역시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나는 글을 정말 잘 쓰고 싶었고, 내가 쓴 글이 생각만큼 따라와 주지 못한다고 느껴서 답답했다. 물론 그건 사실이었는데,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불만만 키워갔으니 지금 돌이켜봐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절이다. 그래서 원고 뒤에 휘갈겨 쓴 일기를 발견했을 때는 꽤나 놀랐다. 나조차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날려 쓴 글씨로 이런 기록이 남아있었다.
오후에 도서관을 나왔고, 조금 썼다. 지난 원고를 퇴고해 보니 고칠 게 별로 없어서 내심 흐뭇했다. 이대로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 차기작 고민은 언제나 즐겁다. 사실 차기작으로 쓰겠다고 정리한 것만 다섯 개가 더 있는데 이걸 언제 다 쓸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인 건 다행인데 쓰는 패턴을 생각하면 역시 조금 답답해진다. 빠르게 쓰고 싶다. 다음 작품은 또 어두컴컴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심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이상하게 진도가 잘 나가고, 반응도 곧잘 왔던 분위기의 작품이다. 연재가 될지 투고가 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여하튼 빨리 써야 한다. 도서관 생활이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추석이 지난 후엔 이사를 갈 예정이고, 자연스럽게 도서관도 옮겨가게 되어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상황이다. 요즘은 세상에 좋아져서 어디로 가든 근처에 도서관이 하나씩은 있지만, 지금 다니는 곳만큼 열람실이 잘 되어있는지는 미지수고, 심지어는 열람실이 없는 곳도 있는 것 같다. 휴관일도 신경이 쓰이고. 지금 다니는 곳이 제일 좋긴 한데 새집에서 이곳까지 다니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될 것 같고.
3년 안에 지금 사는 동네로 복귀할 거라는 계획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3년이 현재로서는 퍽 멀어 보인다. 익숙한 것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나에게 새로운 환경은 영 꺼림칙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보고 자란 풍경이 사라지는 건데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 이런 내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부모님은 전망을 특히 고려하며 집을 보러 다니시고, 그걸 알기에 나는 계속 아쉬워하기에도 뭐 하다. 잘 되겠지. 어딜 가든 마음 붙이면 그곳이 고향이 되는 법이니 그곳에서도 우리는, 나는 잘 살 거다. 방이 커지는 건 진짜 좋다. 책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겠다. 부모님이 서재를 만들어 줄까 묻기도 했지만, 나는 끼고 잘 거라 괜찮다고 했다. 그 편이 편하다. 덕분에 동생은 옷방을 가지게 될 테고.
의도치 않은 정리의 시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학창 시절 쓰던 일기장은 전부 다 없애기로 결심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아 온 편지들도 다시 읽어볼 때가 되었다. 그때 남은 여러 개의 애틋한 마음들이 허무하게 찢겨 버려질 것이다. 후련하다. 내 것 아닌 마음을 비울 때는 언제나 그랬다. 후련하고 조금 안타깝고. 그사이 묻어버린 이름이 껄끄럽긴 하겠지만 그 또한 잠깐이겠지.
가을 무렵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막연한 궁금증이 떠오른다. 지금 이 시각, 나는 무엇을 보고 있으려나. 감기나 안 앓았음 좋겠다. 낯선 환경에 빌빌대기엔 나는 꽤 오래 낯설어왔다. 나잇값을 해야 하는데 도통 미달인 나는 이럴 때 괜한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지는 게 문제다. 어제는 아빠 귀에 대고 '아빵'하고 속삭였는데 아빠가 다정하게 돌아보며, '왜, 아파?'하고 물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고 도리질했지만, 아빠는 약 먹어야지, 아프지 말아야지 걱정스레 말해주었다. 그런 건 역시 기분이 좋다. 헤실 웃으며, 사랑받고 있구나 느끼게 된다. 그래놓고 아빠는 나에게 수박을 사 오라고 시켰는데, 사랑하니까 그런 것도 시키고 그러는 거겠지? 그치?
(2017년 어느 날 도서관에서 작업하다가)
원고는 앞뒤로 꼼꼼히 읽고 새로 써서 노션에 정리해 두었다. 버리는 회차가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100회를 넘게 쓴 글이라 분량이 어마어마하기는 했다. 오늘 안에 끝낼 수는 있을지.
정리가 다 된 원고는 핸디슈레더로 완전히 파쇄했다. 한 시절 내가 온 힘으로 써 내려갔던 글들이 얇게 잘려서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 광경을 보면 특별한 감정 같은 걸 느끼기라도 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별 감흥이 없었다. 진짜 쓰레기라는 걸 지금의 나는 확실하게 아니까. 오래된 글들을 버리는 게 아쉬운 적은 없었다. 그중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걸 두려워했을 뿐.
그래도 손목이 안 부러진 게 용할 정도로 타이핑하고 빼곡한 글씨로 덧붙인 흔적들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지긴 했다. 너덜너덜한 내 원고들이 기특해 보인다. 아마도 이게 내 자존감이 되는 것 같다. 요 며칠 나는 자신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글을 읽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발목이 잡혀 우울했었는데, 갑갑했던 발목이 조금 느슨해지는 것도 같다. 다시 걸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희망적인 기분이다. 개운하고. 열심히 써두길 잘했다. 비록 파쇄 중이지만.
2022년 3월 5일
소설을 연재할 때 내 소설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내 소설을 나보다 더 자주 찾아보던 친구가 “네가 그러면 네 글을 읽는 독자는 뭐가 되느냐”는 말을 해주어서 마음을 고쳐먹긴 했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텐데도 자신의 실력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건 내 진짜 글이 아니야, 난 더 잘 쓸 수 있어,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거야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매일매일이 불만스러웠다. 불만의 상태에서 꾸역꾸역 글을 썼다.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원고들을 5년이나 껴안고 살았다. 그 사이 이사도 했고, 대청소도 몇 번이나 했는데. 버릴 기회가 늘 있었는데도 책상 위에 책장 안에 머리맡에 자리를 옮겨둘 뿐 좀처럼 버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진짜 처리하자! 는 생각이 든 건 5년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 사이 나의 글쓰기는 많이 변했고, 전작을 개정한다고 해도 그 원고를 다시 볼 것 같진 않았다. 그보다 50배는 잘 쓸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당차게 정리를 시작했는데, 진짜 엄청 못 써서 너무 깜짝 놀랐다. 이런 글을 읽고도 늘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었던 독자들에게 백 번도 더 절을 하고 싶었다. 내가 아직까지도 소설을 쓰고 싶다고 깝죽거리를 수 있는 건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나가게 해 준 그분들 덕이다. 아름답고 귀한 사람들. 댓글 하나로 작가를 살리는 영웅들.
그나저나 이사 이야기는 좀 충격적인 부분이 많았다. 3년 뒤에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7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이사 온 곳에서 계속 살고 있다. 그리고 서재를… 내가 왜 그랬을까아? 동생의 옷방이 내 책장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서 더는 쓰지 못하겠다. (2024. 07.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