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계속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불안증이 또 시작되려는 것 같다. 호르몬의 문제일까. 날이 우중충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어제부터 비가 조금씩 계속 내리고 있다.
울증에 빠지면 힘들다. 이유 모를 조증 상태도 그렇지만. 가라앉는 게 일상이었던 인간은 바닥을 만들면서까지 한없이 밑으로 끌려가게 되니까. 나는 그게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인 걸 알아서 속절없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완전히 그 상태로 접어들기 전에. 버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나는 그게 루틴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주기적으로 들이닥치는 이 울증의 대부분은 그로 인해 시작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뭐라도 되어있었어야 했다는 자책감에.
현재의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일은 괴롭다. 자신을 무너지게 할 상상들을 나는 수억 개도 더 만들어낼 수 있고, 그래서 다칠 수도 있다. 마음에 상처를 내어 머리도 몸도 못 쓰게 만드는 일을 나는 잘할 수 있다. 내가 조금도 바랐던 일이 아닌데도 그러하다. 나는 그런 방면으로 유능하다.
나쁜 상상이 머릿속에 끼어들었고, 나는 방금 지옥에 발을 들였다가 꺼냈다. 찰나지만 확실한 불행. 나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상상은 왜 내 쪽으로만 잔혹한 그림자를 드리울까.
억지로라도 현실에 눈을 두어야 한다. 지금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하자.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계속 드니 글을 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상상을 상상으로 밀어내기. 책 읽기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남의 상상으로 절망을 밀어내기. 릴스와 유튜브 영상 올리기가 오늘의 제1 과제이니 그쪽으로 집중하는 것도 좋겠지. 상상 밀어내며 업무도 해치우고, 1석 2조. 새가 불쌍하다.
하루가 버겁게 느껴질 때 도망칠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오늘 아침. 세수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몹쓸 불안 증세가 다시 시작되려 한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받아들였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이것을 일기에 쓰자!”였다. 블로그에 쓰자! 소설에 쓰자! 할 때처럼.
모닝페이지를 쓰기 전이어서 세 쪽에 달하는 여백만큼 속풀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은 나를 일차적으로 안심시켰다. 넘치도록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러기 위해 존재하여 펼쳐지기만을 기다리는 일기장이 내게 있다. 일기를 쓰는 일이 나를 어떤 식으로 구하는지를 그 순간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위급할 때마다 달려가는 비상수단 같았다. 언제나 집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 같을지도 모르겠다. 잠깐 마음을 비비고 살아본 것만으로도 벅차서, 두려워서 있는 힘껏 달려가 종알종알 떠들고 싶은. 그의 품에 파고들어서 다정하게 안기고, 내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받게 되는. 늘 바라왔으나 가져본 적은 없는 어릴 적 나의 환상을 기어이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건지도. 꿈꾸는 인간은 결국 그 꿈이 되는 법이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금 진정시켜 주는 것도 같다. 내가 해온 일들을 떠올리자. 얼마 없지만 스스로를 다독이기에 많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까지 살아있는 것은 그것들을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함이었다. 내가 이 모양이라는 걸, 언제나 그러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미래의 나를 살리기 위해 그럴듯한 하루를 만들어주기. 나로 태어나 아주 성가신 벌을 받고 있다.
나에게 돌아올 불안증만큼 확실하게 보이는 미래가 없다. 언제나 그래왔고, 나는 이 시기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과 별개로 고통받는다. 사람이 언제나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게 닥친 이 상황이 위기처럼 느껴지는 건 내가 약해서인가 울증이 악해서인가. 나는 이 벽을 뚫고 나아갈 수 있을까, 내일의 태양을 볼 것을 알면서도 확신을 잃는다. 나에게 상처 내지 않고 지나가고 싶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 일을 해야만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요행을 바랄 수도 없다. 그저 순순히 이 몫까지 나의 몫이었다고 생각하고 지금을 버티고 살아내는 것이 최선이다. 두려움은 줄지 않아도 용키를 키워본다. 버틸 수 있다고 계속 말하니까 정말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업무에서 달아나려고 드는 생각이겠지만, 글쓰기라면 말릴 이유가 없다. 쓸 수 있다면 그저 좋은 것이다. 그것만이 지치지도 싫증나지도 아프지도 않던 길이었으므로. 질리지도 않고 원하기만 하는. 가끔 징그럽기는 한. 일방적. 사랑.
2023. 06. 21 (30분)
모닝페이지를 세 권째 쓰게 되자 30분 동안 손으로 쓸 수 있는 글자수가 2500자 정도 되었다. 단편적인 생각들을 조금씩 여러 번 끄적거리던 초창기 때와 달리 하나의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며 쓸 수도 있었다. 덕분에 나는 ‘온전한 글’로 발전시키고 싶은 초고를 여러 개 얻게 되었는데, 이 글도 그중 하나이다. 우울한 기분에 관한 글은 내 일기장의 단골소재이다. 그런데 내가 그 감정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이며,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고 싶어하는지는 글마다 달랐다. 그 점이 나 스스로 읽기에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물론 공통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 몫까지 원래의(나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문장은 무슨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주 나왔다. 나는 그것을 나의 정체성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하고, 발견할 때마다 따로 적어두기 시작했다. 일기를 다시 읽지 않았다면, 읽으면서 표시를 해두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수도 있었을 나란 인간의 조각. 주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