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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Jul 11. 2024

체념은 밥 먹기보다 쉽고 버릇은 방부제 없이도 보존된다

어떻게든 버티던 날들



이틀 내내 누워있었다. 비 오는 날은 으레 그런 식이다. 무정하게 잘 돌아가는 듯 보였던 세상마저 축축 처지면 나는 바닥에 눌어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일어설 의욕이 나지 않는다. 비는 비대로 세상의 윤활유 역할을 하겠지만 나를 순환시키지는 못한다. 어제가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나는 젖지 않는다. 말끔해지지도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세상과 얼마나 동떨어진 인간인지를 실감한다. 세상의 기후가 나를 비껴가고 있다. '예외'란 바랄수록 멀어지는 희망이다. 체념이 밥 먹는 것보다 쉽고 버릇은 방부제 없이도 보존된다. 남아있던 두통약을 죄 먹어 치웠다. 건성으로 끼니를 때우고 10시마다 야식을 먹었다. 그런 내가 싫었고, 나는 내가 또 망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망했으니 있는 힘껏 더 망해볼까. 건방을 떨다가 잠이 들었다. 내일이 막막했지만 그런 건 잠들고 나면 그만이었다. 잠이 약보다 좋은 건 그 때문이다.


RPG 같은 꿈을 연달아 꾸었다. 치고받고,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싸웠는데 레벨업을 코앞에 두고 눈을 떴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속이 뜨거워질 만큼 열이 받아서 단박에 침대에서 내려왔다. 씩씩거리며 방을 나서다가 문 옆 전신 거울에 비친 실루엣을 보고 멈칫했다. 라면발처럼 퉁퉁 부은 내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어이가 없었다. 산발된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내리다가 포기했다. 도저히 수습될 몰골이 아니었다. 용사처럼 욕실로 들어가서 전투적으로 샤워를 마쳤다.


토너를 솜에 적셔 팩처럼 붙이고 피부를 때려가며 바디로션을 발랐다. 찹찹, 경쾌한 소리가 남은 잠을 쫓아냈다. 얼굴 위의 솜을 떼고 화장품을 바른 뒤 다시 욕실로 들어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머리숱이 많아서 한 오백 년쯤 걸렸다. 욕실에서 나오니 믹서기 소리에 집이 진동하고 있었다. 소리에 뒷목이 잡히기라도 한 듯 종종걸음으로 거실로 나가서 나가서 엄마가 만들어준 토마토 주스를 마셨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나갈 시간.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 들었다. 배웅하러 나서는 엄마에게 뒤질세라 서둘러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었다. 수고해. 응. 있다 봐. 살가운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을 누르고 내렸다. 단지를 나가서 터덜터덜 걷다가 멀찍이 보이는 파란불에 무턱대고 뛰었다. 마침 도착한 버스에 얼른 올라탔다. 빈 구석 자리에 앉아 휴대폰에 두 눈을 박았다. 버릇은 방부제 없이도 보존됐다.


아차하고 내리니 도서관 부근이었다. 달리 갈 곳이 없어서 또 도서관이었다. 어찌 되었든 도서관에 왔으니 기왕이면 좋은 자리에 않으면 좋겠고, 자리에 앉았다면 뭐라도 써야 귀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늘의 계획을 정하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체념이 쉬워서 그랬다. 그런가 보다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한 게 됐다. 덕분에 늘 그래왔던 하루가 늘 그렇듯이 또 시작되었고, 이틀의 공백은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오늘이 흘러갔다. 오늘의 흐름 속에서 나는 구태여 어제를 곱씹지 않았다. 그 또한 나의 오랜 버릇이었다. 어제의 비 소식 같은 거 오늘의 내가 알 바 아니지. 오늘은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분다. 그게 중요하다.


절로 외투를 여미게 되는 한기였다. 외투 안에 공처럼 웅크려서 오늘치의 노동을 되새겼다. 나는 오늘 빨리 귀가할 것이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써야 한다. 가는 길엔 두통약을 사야 했다. 잊지 않게 손바닥에 적어두는 게 좋겠다. 요즘은 자주 까먹었다. 1000자만 쓰고 분식집에 내려가서 2000원어치 떡볶이를 사 먹어야지. 편의점에서 1500원짜리 커피를 사 들고 올라가서 또 1000자를 쓸 것이다. 그 정도의 목표만을 가지고 시간을 밀며 나아간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지도 대견해하지도 않으며.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은 채. 덤덤한 하루. 버릇 같은 하루.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완전히 망하는 데 실패한다.


작은 것만 보느라 잃어버린 큰 것들을 아쉬워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예감은 자주 들고, 이미 여러 번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되새기며 살 수는 없다. 그러다간 미치거나 일찍 죽을 것이다. 어제의 나를 잊는 방법만이 오늘의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길이다. 쓰고 나니 좀 슬픈데,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다. 나는 편하고 싶고, 이미 여러 모로 망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망하고 싶지는 않다. 이걸 나쁘다고 말하면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나는 오늘 하기로 정한 나의 일을 할 뿐이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고, 나만 미워했다.




2018년 4월 6일




이 글의 원 제목은 <망각에 기대어 버티는 날들>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많은 기록물을 만들면서도 성의가 없었다. 두서없이, 날짜도 없이 휘갈겨 쓰듯 메모했고,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은 알아볼 수 없는 글로 써두어서 나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금의 이 삶은 진짜 내 것이 아니라고, 나는 원래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뜬눈으로 다른 세상을 덧그리며 살던 어리석은 때였다. 스스로도 그러는 자신이 한심해서 망각, 상실 같은 단어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사를 가면서 도보로 10분이면 갈 수 있던 도서관이 버스를 타도 40분이나 걸리게 됐다.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는데도 한참을 더 다녔다. 그때는 도서관이 문을 열기도 전에 가서 기다리고 있기 일쑤였다. 집이 멀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네가 지금 잠이나 자고 있을 때냐며, 4시면 눈이 번쩍 떠졌다. 그때부터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늦장을 부리다가 6시면 버스를 타러 나갔다. 엄마가 아침마다 토마토 주스를 갈아주었던 것은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애쓰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터다. 토마토주스는 집을 나서기 전에 한 컵 먹고, 병에 담아가서 도서관에서도 먹었다. 점심은 주로 떡볶이나 컵라면, 삼각김밥, 빵 같은 것이어서 주스가 꽤나 유용했다. 마음도 주머니도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쓴 소설이 잘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2024. 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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