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날들이 이어졌다. 일을 마치고 새벽 세 시가 넘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너를 반긴 건 유난히 크고 밝은 보름달이었다. 창 너머로 밝게 빛나는 노란 구체를 바라보며 너는 조명 스위치에 올렸던 손을 내렸다. 잠시 이대로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고 세세한 작업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너는 온종일 눈을 부릅뜨고 집중했다. 가깝고 선명한 것들이 징글징글했다. 멀고 아득한 것들이 필요했다.
오늘은 창문을 가리지 말고 잠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워서 달구경이나 하다 잠든다면 그도 퍽 괜찮은 피로 해소법이 될 거라고. 하지만 네가 욕실에서 씻고 돌아왔을 때 달은 구름에 가려져 귀퉁이도 보이지 않았고, 네 방은 컴컴함 그 자체였다. 너는 덤덤하게 버티컬을 내렸다. 완벽한 어둠이 찾아들자 순순히 침대에 누웠다. 천장이 끝도 없이 높아져 있었다. 네 기분이 어디까지 떨어져 있는지를 그것으로 가늠해 봤다.
일이 바빠지면 다른 일들에는 무심해졌다. 숙제처럼 느껴지는 관계들이나, 끝내 완성하지 못할 것 같은 글 때문에 괴로웠던 마음 같은 건 시들시들해지며 이쪽으로 툭 치면 이쪽으로, 저쪽으로 툭 치면 저쪽으로 무력하게 나자빠졌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마음 깊이 새겨지는 감정들이 있어, 나자빠진 마음들의 기분조차 오롯이 너의 것이 되고 말았다. 모른 척할 수도 없이. 마음은 선명하게 말한다. 애정이 덜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차별하는 짓을 하면 안 된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불러내면 안 된다. 안 되는 일들. 하기 싫은 일들. 되고 싶지 않은 사람. 계속계속 말한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받아적느라 손목에선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너는 얼음주머니를 만들어서 손목과 손가락 관절 사이사이를 꼼꼼하게 찜질했다. 별일 아니다. 이제 너는 손목의 통증을 가라앉히는 데 익숙해졌고, 덤덤하게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분리수거 날이라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엘리베이터를 세 번이나 타고 다녀와야 했다. 가족들은 모두 집에 있었지만 아무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2021년 7월 21일
노동이 한계치를 넘어가면 감정을 감각하는 부분이 마모되기 시작한다. 너덜너덜해진 자신을 보호하려는 반사 작용이다. 처음에는 타인의 부정적인 말과 감정을 차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가 뭐라고 군소리를 퍼붓든 그래 떠들어라 하고 만다. 그러다가 자신의 내면에 뿌리내리려는 안 좋은 감정을 냉정하게 도려내는 반응으로 이어진다. 당장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틈도 내어주지 않는다. 철로 된 보호막 같은 것이 자신도 모르는 새 생긴다. 차단하고 도려내기에 계속해서 익숙해지면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른다. 좋은 감정을 만나도 차단하기와 도려내기로 반응하려고 한다. 노동에게 잡혀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덤덤한 상태는 내가 추구하는 인생의 태도 중 하나이지만 나는 그것이 무심함이나 무감함이 될까 두려워한다. 두려워하면 피할 수 있다. 경계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2024. 0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