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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Aug 17. 2024

시를 필사하는 동안


어제 저녁부터 기분이 계속 좋지 않았는데 정호승 시인의 「나의 눈사람」을 읽고 좀 나아졌다.


나의 눈사람
                      -정호승


어스름이 찾아온 골목
내가 세워둔 눈사람에게
누가 지나가다가 오줌을 눈다
오줌을 누면서 침을 뱉는다
눈사람의 가슴이 오줌에 녹아내리며
깊은 상처가 어둠과 함께 깊어간다

밤이 지나고 해가 뜬다
눈부신 햇살이 눈사람을 녹인다
눈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다
자신의 육체가 다 녹을 때까지
가슴 깊이 상처를 안고
물이 되어 고인다

어디선가 날아온 박새 한마리
눈사람의 물을 쪼아 먹는다
고양이도 찾아와 물을 먹는다
나도 목이 말라 엎으려 물을 먹는다
내가 만든 눈사람의 짧은 인생은
바닥의 물이 되었다


열심히 한 일들을 무로 돌릴 뻔한 무력감에서 비로소 놓이는 것 같다. 이 상처마저 내가 먹을 것이다. 물처럼 달게 먹고 남에게 먹일 물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잘 우려 나갈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택배로 왔다』는 울림을 많이 주는 시집이었다. 어떤 부분은 내가 너무 민망하다고 느끼는 문체여서 쉽게 적응되지 않기도 했지만, 50년이나 시를 써온 시인의 언어는 일상적인 듯하면서도 환상적으로, 하지만 또 실용적으로 와닿는 메시지를 준다. 이를테면 떨어지는 일 같은 것.


시집을 읽는 동안 저무는 일에 대하여 다양한 이미지를 곁들이며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떨어지는 것은 곧 책임을 지는 것, 책임을 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니 떨어지는 것이 곧 사랑하는 것이라던 시인의 언어를 곱씹어 보았다. 임박해오는 죽음의 기척을 느끼며, 먼저 죽음으로 건너간 부모와 친구들을 그리며, 아직은 이곳에 남아있는 나의 태도를 점검해 보는 시간.


“나는 사라질 때까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일몰」)”는 말은 사라질 때까지 사랑할 자신이 있다는 말이지 않을까. 죽을 때까지 사랑의 자세를, 책임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 너도 해보라는 말. 떨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결국은 그런 말.


애써 나아질, 맑아질 필요도 없이. 흙탕물에 흐려지면 흐려진 대로, 상처 나면 상처 난 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슬픔의 얼굴을 보지 못하거나 원수를 원수로 갚으려는 인간의 과오에서 벗어나 가벼워지려는 노력. 그런 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르면서도 어느 날에 들춰본 일기에는 그런 노력의 흔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열었다.





시가 주는 위로가 있다. 시를 술술 읽어가는 사람은 못 되지만, 시에 흠뻑 빠진다는 게 무엇인지는 알 것 같은 날. 한 편의 시는 음률마다 커다란 울림을 주고, 가슴 속에서 번져가는 파문을 조금이라도 더 크게 느껴보고 싶어 저절로 노트와 펜을 찾게 된다. 한 글자 한 글자씩 눌러 새기듯 손으로 쓰다 보면 고민도 기분도 다 잊고 그저 '좋다'는 말만 연발하고…. 치료란 이런 것이 아닌지, 노트를 덮는 순간 홀가분해지던 마음. 오늘은 안희연 시인의 「긍휼의 뜻」을 베껴 썼다. 나 홀로 정성 들여 색칠한 지붕을 알아차리고 이정표 삼아 찾아올 ‘단 한 사람’이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나는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려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에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 제목이 있어서 몇 배는 더 좋은 마음이 들던 시간. (2024.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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