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한기 때문인지 몸이 앉은 채로 굳는 것 같았다. 겨울이 벌써 온 줄 알았다. 이렇게 갑자기 추워질 수도 있는 걸까. 날이 추워진 건지 나만 추운 건지 좀처럼 분간하지 못하는 몽롱한 정신으로 겨우겨우 모닝페이지를 쓰고 책을 읽었다. 단편소설을 읽었는데, 적은 페이지 수에 안심했던 것이 무색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꽤 흥미롭게 시작하는 듯하더니 주인공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나는 곤혹스럽다. 책 속 상황에, 인물에 한도 끝도 없이 빠져들어서 읽어가는 나 같은 타입은 몰입이 깨지기 시작하면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절반 정도 겨우 읽은 것 같다. 결국 덮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침대로 돌아갔다. 오늘 쓴 모닝페이지에는 하나의 메시지만 반복되고 있었다. 자고 싶다. 빨리 침대로 돌아가고 싶다. 창에서 전달되는 한기가 냉랭했고, 겨울 이불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긴 옷을 꺼내 입고 양말까지 챙겨 신은 다음에 열 보존율에 아주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무케 인형을 안고 잤다. 다행히도 잠이 달았다.
일어나니 9시 반이었다. 침대에서 한참 뒹굴거리다가 왜 이렇게 기운이 회복되지 않는 거냐며 우중충한 밖을 내다봤다. 날씨는 나를 놀리려고 작정이라도 한듯했다. 해가 뜨다가도 투두두둑 돌멩이 같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뭘 어쩌자는 건지. 멍한 채로 동영상 편집을 좀 하다가 도로 침대로 들어갔다. 오늘 같은 휴무일은 좀 쉬어줘도 괜찮다는 생각이 나를 안심시켰다. 이렇게 컨디션이 별로일 땐 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나의 게으름을 편들어주었다.
뒹굴거리는 것도 싫증 날 때쯤 다시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아무래도 싫증을 잘 내는 건 나의 단점으로만 볼 수는 없는 일인 것 같다. 안 하던 일을 하면 기분전환이 될까 싶어서 애니메이션을 찾아봤다. 넷플릭스에서 《코타로는 1인 가구》를 봤다. 이름이 코타로인데 애기이면 나는 피할 수 없다. 《학원 베이비시터즈》 이후로 생긴 나만의 미신이다. 4살짜리 꼬마가 원룸에서 혼자 살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어른들의 허를 찌르며 코타로는 씩씩하게 나아갔다. 250엔짜리 장난감 검을 무적의 힘처럼 치켜들고.
코타로는 너무 영특하고 주변의 어른들은 어딘가 하나씩 모자라다. 그런데도 그 어른들이 그리 밉거나 한심하지 않은 것은 혼자서 편의점을 가는 4세 아이를 가만두지 못해서, 나를 당신의 아들로 삼지 말라는 말에 고개를 떨구고 반성할 줄 알아서, 울어서 부은 눈을 찜질하라며 작은 손으로 건네는 냉녹차에 고마워할 줄 알아서. 그리고 그 모든 마음을 코타로의 웃음 한 점으로 피우고, 앞으로도 피울 예정인 게 훤히 보여서. 코타로가 웃을 때 나는 진짜 가슴이 너무 찡했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갈급하게 찾아보게 됐다. 애정을 쏟아붓지 못하면 당장 어떻게라도 될 것 같은 이상한 마음으로.
메모장을 켜서 코타로 좋아!로 요약되는 이런저런 문장을 두서없이 써 내려갔다. 할 말이 가슴에서 넘쳐났다. 그랬더니 이번엔 리뷰 한 편이 뚝딱 써졌다. 꼬질꼬질한 채로 있으면 또 게을러질 것 같아서 무턱대고 옷을 벗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다짜고짜 샤워기 물을 틀고, 그 아래에 정수리를 들이밀고, 어쩔 수 없이 샤워를 하고, 정신을 아주 말끔하게 차려서 나오니 챌린저스에서 하루 한 페이지와 매일 필사하기 인증 시간이 3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알림을 보내왔다. 구의 증명을 펴고 필사를 하려다가 습관처럼 잉크창을 확인했다. 잉크가 거의 비어 있었다. 노트 한 권을 다 쓸 때만큼의 뿌듯함을 아니더라도 어떠한 성취감이, 익숙한 쾌감이 나를 찾아왔다. 잉크를 채우려고 잉크병을 꺼내다가 별안간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도 잉크가 떨어졌던 게 아니냐고. 구석구석 참 열심히 머리를 들이밀고 행동을 쏟아냈던 게 아니냐고. 나에게 그 말을 읽게 하려고 여기까지 썼다.
2022년 10월 10일
휴일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재능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말이 오면 몸의 긴장을 늦추고 슬슬 쉴 준비를 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평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자신을 발견할 때면 특히 그러하다. 남들이 쉴 때는 무조건 쉬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회사를 그만둔 지 오래인 지금까지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쉬는 날까지 일을 한다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까. 열 번을 물어도 열 번 다 아니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더 잘 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주말이라고 늘어져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일단 벗어나야 한다. 이걸 보면 내게 도움이 될 거다 같은 생각 없이, 무언가를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싶다. 그러면서 몇 시간이고 방에서 굴러다니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기필코 성공해야겠다. 하루이틀 정도는 내일을 무시하고 당장의 즐거움만을 누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2024. 0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