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를 걷으려는데 꽃이 톡 떨어졌다. 당황해서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래서 다급히 사진을 찍어두었다. 올봄 처음으로 찍은 꽃 사진이었다.
요즘 들어 형은 자신의 SNS에 벚꽃 사진을 시도 때도 없이 찍어 올렸다. 그러고는 태그로 #떨어져라 를 연신 달았다. 왜 갑자기 그게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쭉 웃음이 나서, 손목에 꽃 한 송이가 톡 내려앉는 낭만적인 순간에도 장난칠 궁리를 했다. 아무리 불러도 답해주지 않는 사람처럼 꽁꽁 숨어 지내던 내가 갑자기 꽃 사진을 보내며 형아 형아 부르면 당황하겠지. 이건 뭐 하자는 놈인가 싶겠지.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져서, 꽃잎을 받겠다고 두 손을 모으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몇 번이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오늘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들은 용사처럼 내달려 나를 스쳐가고 나는 모처럼 사뿐사뿐 날아갈 듯 걸었다. 등 뒤로 남는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명반에 수록된 타이틀 곡처럼 감미롭게 들렸다. 그래서 흠칫 놀랐다. 스스로 켜두지 않은 소리는 모두 소음으로 여기는 나였기에. "들떴나?" 나는 생각했다. 나답지 않은 일을 나도 모르게 할 만큼 들떠버린 건가. 그럴 수 있었다. 바야흐로 봄이었고, 눈 닿는 곳마다 꽃길이었으므로. 무채색 인간도 연분홍빛 실소를 자아낼 수 있는 계절이었다.
시시한 장난이 그해의 봄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걸 잠자리에 누워서 생각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신경절직으로 횡포를 부리는 듯한 소리를 듣다 보니 연약한 것들은 저절로 단념하게 되었다. 꽃들이 나뭇가지를 붙들고 버텨도 바람보다 강할까. 바닥에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쓸려 다니는 꽃잎들이 눈 안으로 보였다. 오늘 낮에 보았던 풍경은 이미 없어졌을 거라는 서글픈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오늘 낮에 큭큭거리며 충동적으로 찍었던 몇 장의 사진은 정말로 내가 보낸 올봄의 전부가 될 수도 있었다. 운이 좋았다. 누군가에게는 농담거리도 안 될 일에 그리 열심히여서 다행이었다.
2018년 4월 11일
내가 살던 동네 공원에는 비둘기가 떼로 모여 다녔다. 돌담에 지붕에 잔디밭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둘기들이 모여있는 걸 보면 사진을 찍어서 새라면 질색을 하는 친구에게 보냈다. 도통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는 나로서는 매우 드물고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역시나 질색하는 친구의 반응을 보며 네가 새를 질색하는 걸 내가 여전히 안다, 같은 느끼한 메시지를 첨부하는 것 또한 그런 순간이기에 가능한 주접이었다. 비둘기 떼는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였다. 굳이 사진을 찍고 메시지로 보내는 귀찮음마저 무시하고 나를 즉각적으로 행동하게 했다. 나 지금 네 생각했다, 정도의 의미였는데 친구는 정말 새를 무서워하니까 저절로 그만두게 되었다. 후일 독서모임 친구들이 내 이름이 들어간 간판을 찍어서 보내주는 걸 경험하고서야 그만두지 않아도 되는 장난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간판을 유심히 보고 다닌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발견하면 얼른 찍어서 보내려고 휴대폰 배터리도 늘 점검해 가면서. 나는 장난과는 먼 사람인데 이 정도의 시시한 장난은 귀엽고 괜찮지 않나 싶다. 시시한 장난을 발견하게 위해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다. 보고 싶다는 말을 다양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4. 0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