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서 쓰는 몽상가의 편지

by 나나

모비딕 읽기 챌린지 3회차

기간 : 8월 28일 - 8월 31일

분량 : 37장까지 (문학동네 일러스트 판 278쪽)

소감 : 이슈미얼의 고래학 분류에 따르면 남예준은 고래가 아니다. 왜냐면 그는 아가미가 있...



*** 오늘은 매우 지치고 힘이 없으므로 내 무적의 자아 중 하나인 클라라를 소환해보려고 한다. 클라라는 글쓰는 나의 또 다른 자아인데, 빅토리아 시대에 살고 있다. 유령과 저택을 좋아하고 붉은 색의 수첩을 분신처럼 끼고 다닌다. 활기차고 상냥해보이지만 보이는 것처럼 성격이 좋지는 않음.





안녕? 클라라예요! 정신을 차려 보니 바다 위에 떠 있네요. 여러분은 모두 안녕한가요? 어디까지 오고 있는지 궁금해요. 설마 아직도 “물보라 여인숙”에 도착하지 못한 건 아니겠죠? 날씨가 폭력적이고, 밖은 위험해요. 더 늦기 전에 안전한 숙소에라도 들어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다들 얼른 피쿼드호에 탑승했으면 좋겠어요. 망망대해에서 온갖 종류의 고래 설명을 듣고 있는 건 매우 괴로운 일이거든요. 부디 이 괴로움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내게 알려줘요. 이 세계 어디든 당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등대가 아니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빛이 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빛을 낼 수 있는 존재이기에 아름답고 위대한 생명이니까. 부디 빛나주기를.


바다 한가운데서 이상한 미국인과 이교도 신자, 야만인들과 함께 있으려니 별별 생각이 다 들어요. 항해를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이슈미얼이라는 작자는 왜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겠다고 난리인가?” 하는 물음을 떨쳐낼 수 없었거든요. 근데 이젠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아요. “파도에 떠밀리는 신세”가 된 이상 “꼼짝도 못하(271쪽)”게 되었으니까요. 어쩌자고 여기까지 굴러왔는지를 고민하는 것보단 오늘 내가 바다 위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편이 현명할 거예요. 그렇다 해도 피쿼드호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요.


피쿼드호에는 에이해브 선장을 비롯하여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이 타고 있어요. 스타벅, 스터브, 플래스크 항해사 3인방과 그들에게 종자로 선택받은 퀴퀘그, 타시테고, 다구 작살잡이 3인방이 그들이죠. 물론 우리의 주인공인 이슈미얼도 포함하고요. 이들 중에서 가장 별나게 보이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지금 내 머릿속에는 무반주로 격렬하게 춤추는 플래스크가 있거든요. 불쌍한 플래스크. 기껏 승진을 했더니 뼈다귀나 받는 플래스크. 그마저도 서둘러 입에 쑤셔넣고 제일 먼저 선실 밖으로 나가야 하다니. 오! “영광은 덧없고, 인생은 미쳐 날뛰는구나!(249쪽)” 불쌍한 플래스크에게 내가 아는 가장 강렬한 구원의 노래를 불러줄게요. “혁명은 시작됐어! 일어나 영광은 우리의 것!”*


그래도 정말 별난 건 에이해브겠죠. 자기 배가 출항을 하는데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더니 바다 멀리 나갈 때까지 선실에만 머물러 있던.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실 밖으로 나타난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더 이상한 사람 같아요. 이런 “늙고 가련한 고래잡이(245쪽)”에게 바다 위 나의 운명을 맡겨고 되는 건지, 심히 걱정이 돼요. 이슈미얼은 용케도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지만요.


에이해브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그는 자기확신이 넘치다 못해 좀 오만한 사람인 듯 보여요. 여러분이 어디까지 에이해브를 알고 있는지 몰라서 자세히 얘기하기는 어렵지만(아직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도 있겠죠? 전 상상과 다른 모습이어서 실망했는데, 다들 어땠을지!) 바다 위에서의 숱한 경험으로 인해 삐뚤어져버린 사람 같다고 할까요?


삶의 경험이 쌓이면 초연해지다 못해 대범해지는 구석이 생기는데, 바로 그 지점이 한 인간의 인성이나 품격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에이해브는 존경하며 따를 만한 위인은 아닌 듯 하고요. 아, 물론 제 생각이에요. 누군가는 그를 위대한 선장으로 추앙하고 자신의 목숨을 충성처럼 바치기도 하겠죠. 실제로도 피쿼드호의 선원들은 그에게 복종하니까요. 그가 평생을 지금의 인성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르는 일이고…뭐, 고래에게 다리를 잃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일이죠.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기도 해요.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봐선, 그가 직접 밝힌 대로 “마귀 들린 자요, 미쳐버린 광기(277쪽)”에 지나지 않으니. 가까이 하기에는 어쩐지 좀, 음, 뭐, 네, 음. 그래요.


에이해브만큼 나의 심기를 툭툭 건드리는 건 다름 아닌 이 책의 저자 맬빌이에요. 그가 주장하는 바에 나는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거든요. 이를테면 “남에게 실질적이고 유효한 지배권을 행사하려면 하찮고 비열할 수 밖에 없는 형식적 기교와 무장이 필요하다” 같은 말 말이에요. 언뜻 들으면 하찮고 비열할 수 밖에 없는 태도가 마땅히 필요하다는 말처럼 들리잖아요. 그렇다고 하찮고 비열한 게 달라지진 않을 텐데요.


그가 그리는 소설 속 사회의 속물성도 묘하게 신경을 자극해요. “무거운 짐에 허리가 휠 지경이 되어 떠돌아 다니는 심각한 표정의 행상인들로 넘쳐나는 이 세상(204쪽)”이라는 말이나, “양심은 일종의 안면신경통 같은 거야. 치통보다 더 끔찍한 거지(219쪽)” 같은 대사를 보며, 그들의 세계는 내가 있는 세계와 얼마나 다른 모양으로 비뚤어져버렸나를 더듬어보게 되는 거죠.


포경업계가 “낭만적이고 우울하고 얼빠진 젊은이들의 피난처”가 된 그곳의 현실조차 먼 이야기 같지 않아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피난처를 찾고 갈구하고 떠날 작정을 하고 심지어 떠나버리니까요. 이슈미얼도 그런 젊은이 중에 하나는 아니었을지.


이슈미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달갑지는 않지만, 그와 나는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거든요. 바로 우리 둘 다 “얼빠진 젊은 철학자(262쪽)” 라는 거죠. 몽상가이자, 아편 같은 나른함에 취하기 쉬운. 영혼이 살이 찌고 빠지는 정도를 감각할 수 있는. “마음속으로 우주의 문제” 같은 거나 고민하는 형편없는 일꾼. 아, 물론 나도 밥값은 제대로 해요.** 연비가 썩 좋지 않아서 그렇지.


아무튼 이런 나이기에 갑자기 정신을 차렸을 때 망망대해에 떠 있어도 기분이 마냥 나쁘지는 않는 거랍니다. 돛대 꼭대기에서 편지를 쓰는 일도 퍽 재미있는 것 같아요. 문득 현실이 끼쳐오면(제길, 나는 수영을 못한다구요!) 에이해브를 비롯하여 피쿼드호의 모든 인간들이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가는 불운의 사자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뭐 땅 위라고 다른가요. 땅 위에선 소다팝이나 추고, 배 위에선 고래밥 타령이나 하는 거지.


뼛속까지 육지 사람이라서 그런가 아직 이들에게 마음이 활짝 열리지는 않네요. 저마다의 외딴섬을 바라보듯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볼뿐. 어쩌면 자기들끼리도 그러고 있을지 몰라요. 한 배에 탔다고 모두 다 가까워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우린 좀 다를 거라고 믿는 게 최선일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물리적 거리가 아주 많이 멀지는 않기를 바라며



가시지 않는 더위와 벌레 울음 속에서


클라라 씀.



* (플레이브 <DASH> 中)

**클라라는 고딕소설 작가이다





이번 주 진도 체크 ✅

은윤슬 출석 (책방이 휴가라니!)

앞으로쏠린짜장면 ~17장

지술랭 ~33장


이번 주도 모두 훌륭하셨습니다! 저 혼자 진도를 쑥쑥 나가나 했더니 여러분들 속도가 만만치 않군요. 더 속력을 내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모비 딕"이라는 이름이 등장했어요! 뭔가 본격적으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 두근! 이번 주도 열심히 읽고 돌아올게요.


마감 시간을 당기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진 않네요. 계속, 분발하겠습니다. 함께해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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