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페이지 벽돌책 읽기의 부담감을 떨쳐내며
기간 : 8월 20일 - 8월 24일
분량 : 13장(문학동네 일러스트 판 124쪽)
소감 : 쫄지 마! 읽을수록 재미있다!
한 남자가 등장하더니 자신을 "이슈미얼"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자신도 스스로를 이슈미얼이라고 부른다. 혼잣말도 자주 한다. 혼자 걸어가면서 "이슈미얼이여, 그래도 계속 가"라며 중얼거리는 식이다. 흥미로운 인간이다.
그는 경험이 많은 평선원인데, 승객도 아니고 제독이나 선장, 주방장으로 바닥에 나가지 않는 자신의 직책에 꽤나 만족하는 듯 보인다. 본인의 말로는 영예와 우대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고, 명예롭고 존경받을 만한 노고와 수고 등도 질색이라고 하는데, 글쎄, 썩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돈도 없고, 자신의 몸 하나 돌보기도 벅차다던 처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언동에선 입신출세의 욕구가 은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앞간판에서 바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던 선상 선원이 갑자기 포경 항해를 나서려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물론 그는 자신을 미행하는 경찰관(운명의 여신이 보냈다던 이 자는 과연 실존하는 인간이 맞을까?)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 역시 썩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만난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인가.
그럼에도 이슈미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점점 더 흥미로워지기까지 한다. 포경업의 발상지인 낸터킷으로 가려던 이슈미얼은 정기선을 놓쳐 뉴베드퍼드에서 주말을 보내게 된다. 그는 "물기둥 여인숙"에서 머물기로 하는데, 주인이 방이 다 찼다며 웬 작살잡이와 함께 방을 쓰라고 한다. 그런데 이 작살잡이의 정체가 꽤나 묘하다. 퀘퀘그라는 이름의 이 작살잡이는 검은 피부의 문신이 가득한 이교도인이다. 심지어 이 인간은 방금까지 "방부 처리한 뉴질랜드 원주민의 머리"를 팔다가 돌아왔다. 이슈미얼은 그를 "식인종"이라고 부르며, 밸런스 게임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점지해 본다.
술 취한 기독교인이랑 자기 VS 정신 멀쩡한 식인종이랑 자기.
이슈미얼은 식인종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이제 두려운 것은 식인종인가, 이슈미얼인가? 더욱 기묘해지는 것은 두 사람의 오붓한 동침이다. 잠자리 친구란 원래 그렇게 다정하고 감미로운 것인지? 잘 모르는 상대와 함부로 담배를 나눠 피워서는 안 된다는 교훈만이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새겨져 있다. 그것은 자칫하면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기혼자로 만들 수 있기에. 담배를 얻어 피우는 줄 알았는데 결혼식을 치르는 중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매우 큰 충격.
이슈미얼이라는 남자에 대한 첫인상은 모비딕 책을 보며 느낀 첫인상과도 비슷하다. 내가 읽고 있는 문학동네 일러스트 판은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발췌문이라고 해서 고래에 대한 언급이 마구잡이로 나왔는데, 하나하나 읽다가 탈주할 뻔했다. 본문을 읽기 시작하고서도 쉽지 않았다. 1장에서 2장을 읽는 동안 나는 울상을 지으며 내가 벌인 일을 심각하게 돌아봤다. 모비딕 챌린지라니? 무슨 생각이었지? 돌이킬 수 있을 때 되돌려놔야 하는 건 아닌지? 900쪽이 넘는 벽돌책을 공개적으로 읽는 일은 그처럼 부담스러웠다. 식인종이 잠자리 친구로 등장하고 곧 절친이 되는 기막힌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을지, 자신할 수 없을 만큼.
그러나 이 책은 1, 2장을 읽으며 잔뜩 겁을 집어먹었던 내가 우스워질 만큼 참신하게 웃겼고, 그 사이사이에 웃음으로 때워 넘길 수 없는 묵직한 질문들을 틈틈이 던졌다. 이를테면 다음과 물음들.
"숭배란 무엇일까?"
"이 세상 모든 특성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대조를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맞는가?"
"우리의 본질을 이루는 진정한 요소는 어둠이다. 두 눈을 감아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옳은가?"
"시끄럽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기꺼이 벌을 받는 것만이 진정하고도 헌신적인 회개라고 할 수 있다. 동의하는가?"
이슈미얼은 말했다.
"나는 내 육신이 더 나은 내 존재의 흔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읽어가도 좋겠다.
안녕하세요, 나나입니다.
<최애의 모비딕>을 신청해 주신 여러분들 모두 <모비딕> 시작하셨나요? 글에도 썼듯이, 저는 처음에 고전하다가 이제야 재미를 붙이고 있어요. 이슈미얼이라는 남자는 너무 희한하고, 퀴퀘그라는 남자는 더 희한한데, 둘의 관계가 그보다 더 희한해서 푹 빠져서 읽고 있답니다. 이제 드디어 낸티켓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또 어떤 희한하고 이상한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돼요. 모쪼록 여러분들도 초장에 너무 겁먹지 마시고, 저처럼 어떻게든 버티셔서(저는 정말 도망가고 싶었거든요. 이 글 대신 사과문이 먼저 올라올 뻔했어요) 이 이상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즐겁게 읽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책은 그림이 있어서 그런지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는 기분이에요. 다른 분들의 책은 어떤 상황일지 궁금하네요. 오늘은 첫 글이라 마음 다지기에 초점을 두었는데, 다음 화부터는 책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함께 챌린지에 도전하실 분들을 소개합니다!
러키피키
은윤슬
또종이
예인
애프리
앞으로 쏠린 짜장면
1화 댓글로 챌린지 신청해 주신 여섯 분이에요! 연재글에 독서 현황 알려주시면 다음 글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공지하겠습니다. 서로의 진도 상황 보고 좋은 자극도 받고 읽는 속도도 조절해 보아요. 서로의 존재함을 의지하며 완독까지 무사히 이 챌린지의 항해를 마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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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멤버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편하게 신청 댓글 달아주세요.
무턱대고 인증 댓글도 환영, 자유롭게 감상 달기도 OK!
그럼 저는 책 또 재미있게 읽고, 3화 글 들고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무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