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거역할 수 없는 항해

by 나나

모비딕 읽기 챌린지 4회차

기간 : 9월 1일 ~ 9월 3일

분량 : 48장까지 (문학동네 일러스트판 366쪽)

소감 : 두 번 탈주할 뻔했다


IMG_3178.jpeg




한 배를 탄 사람들

같은 배를 탔다고 해서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다. 서로의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속내도 다르다. 항해의 임무인 “목적을 우선”할 뿐. 힘을 합쳐 노를 젓는 상황에서도 저마다 다른 미래를 그리고,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 마음을 품는다.


피쿼드호의 세 항해사는 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낸터킷과 코드곶, 티스베리에서 태어난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지명만큼이나 성격도 다르다. 일등 항해사인 스타벅은 내면이 강인하고 양심적인 인물이다. 이등 항해사인 스터브는 명랑하고 태평하다. 삼등 항해사 플래스크는 고래를 재미로 쫓을 만큼 호전적인 인물이다.


이들의 성격은 항해를 시작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각자가 지휘하는 보트가 세 방향으로 나뉘어 물살을 가를 때 나는 세 개로 나뉘는 하나의 섬을 보았다. 하나일 때도 완전히 하나이지 않았던 섬.


저마다가 하나의 섬인 우리는 무엇을 매개로 같은 방향을 향해 작살을 쳐들 수 있을까? 인종 차별과 종교적 혐오가 기세등등한 배 위에서 차별과 혐오보다 공동의 목표를 우선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인간이란 비열한 상태

에이해브에게 물으면 ‘돈’이라고 답할 듯하다. 그는 선원들에 대한 자신의 지휘권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원들은 변덕스러우며, 선장은 언제든 자신의 배를 강탈당할 수 있다. 그럴 만한 일을 이미 자초하기도 했다.


이번 항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원들의 단합이 필요하다. 웬만큼 단합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이라고 불러 마땅한 협동과 복종이 필요하다. 때문에 에이해브는 선원들에게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빼앗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궁극적이고 낭만적인 목표에 매어두는 것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기에. 숭고한 기사들에게도 “평범한 날마다의 식욕을 채워줄 음식이 필요하(346쪽)”므로.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에이해브는 인간은 영원히 “비열함”에 처해 있는 상태라고 믿었는데, 이것은 옳은 주장인가?





복수심이 삼킨 인간의 생

그처럼 비열한 속성의 인간들과 어떻게 한 배를 탈 수 있었는지, 나는 다시 궁금하다. 에이해브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지금 대답해 줄 여유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속성 따위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흰 고래 말고는 제대로 보이는 것도 없겠지. 복수에 눈이 먼 자가 으레 그러하듯이.


에이해브는 선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결정을 내렸다. 그가 자신의 지휘권을 염려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공동의 목표를 사적으로 축소시켰다. 고래를 잡아서 돈을 벌려고 항해를 시작한 선원들에게 “모비 딕”을 잡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술을 돌리며 선원들로 하여금 맹세를 받아내기까지 했다.


모비 딕은 에이해브의 원수였다. 선장은 무슨 수를 써서든 모비 딕을 잡을 작정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선언들을 깜짝 놀라게 하면서까지.


출항 전부터 그는 준비해 온 것이 있었다. 자신의 남은 여생을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바칠 사람처럼. 어떤 복수심은 인간의 생을 모조리 삼킨다. 어떤 대상을 해치겠다는 목적 자체가 생을 통째로 가져가서 인간 대신 살려는 것 같다. 이런 복수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나 있나?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는 기이한 위력을 가졌다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하니 초인적이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들리기도 하다. 이슈미얼을 비롯한 선원들은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끌려 에이해브의 증오심에 동화되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초자연적인 현상은 아닌지.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동정심? 연민? 공감? 술에 취해서? 단순히 주변 분위기에 휩쓸린 걸지도?


“그들에게 흰 고래란 대체 무엇이었으며, 그 고래가 생명의 바다를 미끄러지듯 헤엄쳐 가는 거대한 악마라는 생각은 어떤 알 수 없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게 됐던 걸까.” 41장, 309쪽


소설은 모비 딕, 즉 흰 고래에 대한 공포심을 극한으로 표현하고 그 근거를 쉼 없이 제시한다. 그에 지지 않을 농도로 에이해브의 증오심을 기술하고, 그에 동조하는 선원들을 보여준다. 마침내 고래 떼를 발견하고 모선에서 보트가 내려질 때, 나는 어떤 사명감과 기대감,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피쿼드 호에 탑승한 선원들 중 한 명이기라도 한 것처럼.


전투가 끝났을 때는 흡사 꿈에서 깬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광기와 증오심의 파편들이 피부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는 듯한. 꿈이라면 매우 찝찝한 꿈이었다. 항해라면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을 듯한.



dc6fc5ecf8477a7ea88783fd51c0a50f022b44df.jpeg


아니 저기 생각 좀 해보세요. 저런 사람들하고 어떻게 한 배를 타요……






저도 나름 무채색 인간이거든요? 색 없는 옷들, 아이템들 참 좋아해요. 그런데 오늘만큼 흰색이 지긋지긋한 적이 없었다. 흰색 나올 때마다 뿌슈뿌슈하고 있었다.


백과사전 같은 부분은 역시 어렵네요. 뭔가 설명하고 진술하고 사례들고 증명하고 뭐 이런 거 안 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또 나오겠죠...? 누구 탓을 할까요. 제가 읽기로 정한 건데. 이 괴로움을 나만 알고 남떤남자는 모른다는 게 쵸큼 슬플 뿐.


그래도 벌써 40%나 읽었어요! 왼쪽 책장이 높아질 때마다 신기한 기분입니다. 내가 모비딕을 읽다니? 이만큼이나 읽다니? 남떤 남자와 챌린지 같이 달려주시는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


IMG_3175.jpeg



이번 주 진도 체크✅


은윤슬 9장

앞으로쏠린짜장면 36장


+) 북요새님 합류!


모두 훌륭하셨습니다! 읽기를 그만두고 싶은 부분이 나올 때마다 함께 읽는 여러분들을 생각해요. 그러면 나만 머리를 쥐어뜯고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한 줄이라도 더 읽어볼 힘이 납니다. 존재함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빛으로 와닿는 등대 같은 분들. 늘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또 싸우고 올게요. 책이랑, 고래랑. 나 자신이랑도.



+) 댓글을 [인증][모비딕][예준아생일축하해] 중 하나를 골라서 작성해 주세요.

+) 새 멤버는 언제든 환영! 편하게 신청 댓글 달아주세요.

+) 무턱대고 인증 댓글도 환영. 자유롭게 감상 달기도 환영. 예준이 생일 축하는 그냥 막 그냥 아주 그냥 하트를 드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