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4일~ 9월 6일
분량 : 64장까지 (문학동네 일러스트판 466쪽)
소감 : 백과사전 톤 나올 때마다 토끼고 싶음
고래. 이제 고래라는 단어만 봐도 기운이 빠진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피쿼드 호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에 나와 있나. 내가 저지른 일이 나를 조롱하며 묻는다. 후회를 자신의 얼굴에 주먹을 꽂는 행위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빈약한 상상력이 원망스럽다. 자신의 얼굴에 주먹을 꽂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데다 꼴사납다. 맡은 일을 멋지게 해내지 못할 거라면 그럴싸하게라도 보이고 싶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인간은 아니어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느 정도의 체면치레는 하고 싶은 것이다. 책에서 고래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때마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내적 자아를 감쪽 같이 숨기는 데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제 겨우 절반을 달려왔는데, 나머지 반의 시간은 어찌 보낼지. 힘이 들 땐 하늘을 보고, 하늘을 보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었다. “하늘이 파래서 다행이야. 너의 눈엔 내가 예준이처럼 보일 테니까.”* 라는 구절을 외우고 있어서 또 다행이었다. 좋아하면 다 이긴다. 최애가 있으면 이렇게나 강해진다.
첫 번째 고래 추격에 실패한 이슈미얼은 모선의 선원들에게 구조되어 피쿼드 호로 돌아온 뒤 유언장을 쓴다. 죽음을 목전에서 보고 나면 우주 전체가,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하고 짓궂은 농담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이슈미얼은 그제야 자신이 하려는 포경업이라는 일을 실감했다고 하는데, 나는 밧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위험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고래 그림 설명 속에서 그 대목은 모처럼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장면이기도 했다. 작살 밧줄을 포함하여, 고래를 잡기 위해 온갖 밧줄들이 이 보트, 저 보트에서 정신없이 내던져지는데, 고래보다 사람이 먼저 잡힐 위험이 다분했다. 밧줄에 엉켜서 저 세상으로 곧장 끌려들어 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슈미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인간은 포경밧줄에 에워싸인 채 살고 있고, 모든 인간은 목에 교수형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들이 이 고요하고 미묘하며 늘 곁에 있는 삶의 위험을 깨닫게 되는 것은 갑자기 방향을 튼 죽음과 마주하게 됐을 뿐이다. 446쪽”
그러한가. 우리 목에는 태어날 때부터 교수형의 밧줄이 둘러져있고, 사위엔 온통 포경밧줄들 뿐인가. 언제 엉켜서, 잡아당겨져서, 끌려들어 가서,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 이것이 삶인가. 내가 오늘까지 살아남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고 종종 생각하곤 했는데,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늘을 무사히 보낸 나에게 헤아릴 수 없는 기적이 들렀다 갔음을 새삼 실감한다.
그렇다면 이슈미얼은 왜 바다로 나왔을까? 고래를 잡겠다고 나선 것은 그러잖아도 가까이 붙어있는 죽음에게 자진하여 삶을 가져다 바치는 격이 아닌가? 에이해브도 마찬가지다. 사적인 복수에 눈이 멀어버린 그는 모비 딕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일찍이 마쳤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그런 결심이 선원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선장으로서 옳은가? 나는 아무리 봐도 그의 행위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선원들에게 미리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이 일종의 속임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른 선주들이 반대할까 봐 복수의 욕망 같은 건 없는 척하고, 배에 몰래 유령 선원들을 태우는 등의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꽤 치밀하게 이번 항해를 준비했다. 고래잡이라는 업이, 아니 바다로 나가는 일 자체가 별 수 없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각오하는 것과, 각오하게 될 줄 몰랐던 일을 마지못해 각오하게 되는 것은 천지 차이가 아닌가.
그러나 산다는 것은 곧 죽는 것. 삶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죽음에 꿰뚫릴 각오로 배우러 나서는 일일 테다. 그리 생각하면 육지를 떠나 고래잡이 배에 올라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배를 타고 세계를 한 바퀴 돌고 와봤자 “기껏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일에 지나지 않고, 어디를 여행해 봤자 자신이 사는 나라의 확장형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미로에 빠지거나 물속으로 가라앉을 위험을 감수하며 배를 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삶은 배우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니기에. 죽음에 맞선다는 것은 삶을 쟁취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므로.
나처럼 나약한 인간이 감당할 만한 일은 아닌 듯하지만.
나는 그저 “오싹한 바다가 파릇파릇한 육지를 감싸고 있듯” “반쯤 가려진 삶의 온갖 공포로 둘러싸”인 내 “영혼 속 타히티 섬”을 인지할 뿐이다. 내 안에도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땅이 있음을. 인생의 어떤 좌절을 겪어도 이곳만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각오일지도 모르겠다.
매 회차 위기가 한 번씩 오기는 했지만, 이번이 가장 세게 왔던 것 같아요. 고래 그림 따위 알려주지 않아도 도 ㅐ... 라고 열두 번도 더 말하며 읽었지 뭐예요. 이슈미얼이 여관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매우 길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이슈미얼이 인간 백과사전이 되려고 할 때마다 책을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또 막상 던지려고 하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현재 상황을 알려주었기에... 이샛기가 나를 지켜보는 건가 하면서 읽었답니다. 6회차는 좀 수월했으면 좋겠는데 걱정이에요.
이번 주 진도 체크✅
은윤슬 27장
앞으로쏠린짜장면 64장
북요새 10장
모두 모두 훌륭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읽기 그만두고 싶은 부분이 계속 생기고 있겠죠...? 서로 손 잡아준다는 생각으로 꼭 버텨보기로 해요.
개인적인 목표로는 앞으로쏠린짜장면 님보다 앞서고 싶었는데...! 실패해버렸습니다. 많이 뒤처지지 않게 제가 속도를 내볼게요. (나나벨은 ㅈ ㅣ지않아).
여러분 혹시 괜찮으시다면 서로서로 댓글을 다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야 물론 모든 댓글을 확인하고 반드시(좀 늦더라도) 답글을 달 테지만, 여러분들끼리도 소통을 하시면 어떨까 조심스레 제안해 보아요. 물론 엄청나게 부끄러우실 테지만, 책 이야기 많이 하고 싶으시다면 그 또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 고통받고 있는 것은(아니길 빕니다) 똑같으니까... 서로서로 위로가 되어주기로 해요.
그럼 다음 연재에서 뵐게요!
+) [인증][모비딕][예준아생일축하해]중 하나를 골라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책을 읽지 않아도 좋아요. 편하게 댓글 달아주세요! 인증도 환영, 자유로운 감상도 환영, 예준이 생일 축하는 그냥 막 그냥 아주 그냥 대환영.
+) 아니 그래가지구 저 예준이 생일 키트 왔다. 저 생일 키트 처음 사봐요. 두근두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