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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May 11. 2024

카프카를 읽는 슬픔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었다는 남자, 그레고리 잠자를 생각한다. 그는 난데없이 벌레가 된 후에도 출근할 방법을 궁리한다. 당연하게도 여러 난관에 봉착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변함없이 골몰한다. 인간의 몸은 잃어도 의무는 변하지 않는다는 듯이. 변하지 않는 그것이 그의 정체성이라도 된다는 듯이. 느닷없이 체포된 요제프k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자신이 왜 체포되었는지조차 모른다. 소송에 걸렸다고는 하는데 무슨 소송에 걸렸는지를 알 수 없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피고인의 신분이 되어 그에 따른 책임을 요구받고, 이행한다. 요제프k는 부패한 법원 조직에 대항하여 싸우겠다는 스스로의 신념에 충실한 채로 직장인 은행에 출근하고, 법정에 출두한다. 그는 자유롭다. 연달아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나는 일전에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레고리 잠자와 요제프k는 언뜻 내가 추구하는 어른의 태도를 갖춘 듯도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울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가. 몸은 없고 의무가 남아서인가. 자유의지를 가져도 타인이 정한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인가. 단순히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별스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평소와 같은 일상을 꾸려간다는 것은 이상하다. 능숙히 해낼수록 기이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불확실해진다. 카프카를 읽으면 슬퍼지고, 그 슬픔은 많은 답을 보류하게 만든다. 성을 보았으나 입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듯이 언젠가 제출했던 인생의 답안지를 붙들고 하염없이 검토한다. 뭘 고쳐야 할지를 모르면서, 고쳐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서.



2024. 0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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