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해일은 해저에서 지진, 화산 폭발, 단층운동 등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대한 파도를 말하며, 다른 용어로 ‘쓰나미(津波, tsunami, つなみ)’라고도 한다. 지진해일은 해저 지진에 의해 바다 밑바닥이 솟아오르거나 가라앉으면 바로 위의 바닷물이 갑자기 상승 및 하강하게 된다. 이 영향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지진 해일파가 퍼져나가게 되고 해안가에 엄청난 위험과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1900년대 이전 국내 동해안에 영향을 미친 지진해일은 3차례이며, 1900년대 이후 동해안에서 지진해일이 관측된 적은 4차례 정도로서 각각 1940년 8월 2일, 1964년 6월 16일, 1983년 5월 26일, 1993년 7월 12일로, 일본 서쪽 바다에서 규모 7.5~7.8 지진이 발생하며 동해안에 지진해일이 내습하였다. 그리고 2024년 1월 1일 오후 4시 10분 일본 니가타 이시카와현 노토(能登)반도 쪽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으로 동해안에서 31년 만에 지진해일이 발생하였다.
동해안 시‧군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지진해일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643년 6월 9일 울산 지진
1643년(인조 21년) 6월 9일 울산 앞바다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지진 규모는 M6.5~7.4인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그리고 《울산군관읍지》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양에 지진이 있었다. 경상도의 대구·안동·김해·영덕 등 지역의 고을에도 지진이 있어 연대(烟臺)와 성첩(城堞)이 많이 무너졌다. 울산부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다. 전라도에도 지진이 있었다. 화순현에서는 부자(父子)가 벼락을 맞아 죽었고, 영광군에서는 형제가 말을 타고 들에 나갔다가 말과 함께 일시에 벼락 맞아 죽었다.”
“辛未/京師地震。 慶尙道 大丘、安東、金海、盈德等邑地震, 烟臺城堞頹圮居多。 蔚山府地坼水湧。 全羅道地震, 和順縣人父子爲暴雷震死, 靈光郡人兄弟騎馬出野, 幷其馬一時震死云”。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44권, 인조 21년 6월 9일 辛未 1번째 기사
“경상감사 장계의 내용이다. 좌도가 안동에서부터 동해 · 영덕 이하를 경유해 돌아서 김천 각 읍에 이르기까지, 이번 달 초 9일(辛未) 신시(오후 3시~5시), 초 10일 진시(오전 7시~9시)에 두 번 지진이 있었다. 성벽이 무너짐이 많았다. 울산 역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마찬가지로 지진이 있었다. 울산부의 동쪽 13리 밀물과 썰물이 출입하는 곳에서 물이 끓어올랐는데, 마치 바다 가운데 큰 파도가 육지로 1, 2보 나왔다가 되돌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건답 6곳이 무너졌고, 물이 샘처럼 솟았으며, 물이 넘자 구멍이 다시 합쳐졌다. 물이 솟아난 곳에 각각 흰 모래 1, 2두가 나와 쌓였다.”
“慶尙監司狀啓, 左道自安東, 由東海·盈德以下, 回至金山各邑, 今月初九日申時·初十日辰時, 再度地震, 城堞頹圮居多。蔚山亦同日同時, 一體地震, 府東十三里潮汐水出入處, 其水沸湯謄涌[騰涌], 有若洋中大波, 至出陸地一二步而還入, 乾畓六處裂坼, 水涌如泉, 其穴逾時還合, 水涌處各出白沙一二斗積在云云事”。
《승정원일기》 85책(탈초본 5책) 인조 21년 6월 21일 계미
“신시(申時)에 땅이 흔들리더니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의 관아가 무너졌다. 땅이 흔들리며 도호부 남쪽 황룡연의 물이 갑작스레 줄었다. 병영에서는 초기에는 흔들거림이 있다가 갑작스레 우물이 넘쳐나고 개울이 요동치니 천지가 흔들리는 듯하였다고 하였다. 이후 흔들림이 멈추었다가 갑자기 더욱 땅이 요동치며 황룡연의 용이 승천하는 듯 마른하늘에 천둥이 쳤다. 이후 병영의 외성과 문루가 무너져 내리고 병영 내외의 가옥들이 돌에 깔리거나 주저앉았으며 멀리 병영의 남문과 관아가 쓰러지며 커다란 구름이 생겼다. 병영에서는 백성들의 가옥 140여 호가 무너져 내렸다. 읍내에는 먼지가 자욱하여 백성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염포 포구에는 물이 들어찼다.”
《울산군관읍지》
2. 1681년 5월 11일 양양 지진
한국기상청 및 미국 NGDC(National Geophysical Data Center)에서는 양양 지진의 진도를 VIII~IX, 규모를 최대 M 7.5로 추정한다. 한반도 거의 전역에서 지진동이 감지되었고 이 지진으로 두타산의 동석(動石)이 붕괴되고 동해시 능파대(凌波臺) 수중(水中)의 10여 장(丈) 되는 돌의 가운데가 부러졌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강원도(江原道)에서 지진(地震)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襄陽)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雪岳山)의 신흥사(神興寺) 및 계조굴(繼祖窟)의 거암(巨巖)이 모두 붕괴(崩壞)되었다. 삼척부(三陟府) 서쪽 두타산(頭陀山) 층암(層巖)은 옛부터 돌이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모두 붕괴되었다. 그리고 부(府)의 동쪽 능파대(凌波臺) 수중(水中)의 10여 장(丈)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潮水)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백여 보(步) 혹은 5, 60보 노출(露出)되었다. 평창(平昌)·정선(旌善)에도 또한 산악(山岳)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巖石)이 추락하는 변괴(變怪)가 있었다. 이후 강릉(江陵)·양양(襄陽)·삼척(三陟)·울진(蔚珍)·평해(平海)·정선(旌善)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地動)하였는데, 이때 8도(八道)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癸亥/江原道地震, 聲如雷, 墻壁頹圮, 屋瓦飄落。 襄陽海水震蕩, 聲如沸。 雪岳山 神興寺及繼祖窟巨巖, 俱崩頹。 三陟府西頭陀山層巖, 自古稱以動石者盡崩。 府東凌波臺水中十餘丈石中折, 海水若潮退之狀。 平日水滿處, 露出百餘步或五六十步。 平昌、旌善亦有山岳掀動, 巖石墜落之變。 是後, 江陵、襄陽、三陟、蔚珍、平海、旌善等邑地動, 殆十餘次。 是時, 八道皆地震”。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11권, 숙종 7년 5월 11일 계해 1번째 기사
3. 1741년 7월 19일 간포 쓰나미
간포 쓰나미(寛保津波)는 1741년 7월 19일 홋카이도 오시마반도 서쪽 약 50km 지점에 있는 오시마섬이 분화하여 산체 붕괴가 일어나 발생한 쓰나미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발생한 쓰나미는 홋카이도 남부 지방 동해 연안 지역부터 시마네현 연안까지 일본 지역 외에도 당시 조선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해안에서도 쓰나미가 덮쳤다는 기록이 있었다. 마쓰마에번에서만 2,083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어 큰 피해를 입었으며, 동해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쓰나미로 지진 규모는 M8.4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에서도 조선왕조실록에 강원도 평해(현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등 9개 고을에서 물이 7~8차례나 들어오며 인가가 물에 수몰되고 선박들이 파손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江原道 平海等九郡, 海水縮爲平陸, 頃之水溢, 一日輒七八溢, 海壖人家多漂沒, 舟楫破碎) 당시 조선에서 기록된 쓰나미는 대략 3~4m 높이로, 울진, 삼척, 평해, 동해, 강릉, 속초 등지에서 3m 이상의 쓰나미가 닥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4. 1940년 8월 2일 샤코탄반도 해역 지진
1940년 8월 2일 홋카이도 외해 샤코탄반도 해역에서 발생한 샤코탄반도 해역 지진의 지진 규모는 M7.5이고, 동해안의 최대파고는 약 2m였으며, 인명 피해는 없었고, 재산 피해는 가옥 56채, 선박 6척 등 이었다.
5. 1964년 6월 16일 니가타 지진
1964년 6월 16일 13시 1분 니가타현 아와시마 남부 앞바다 40km에서 발생한 니가타 지진의 규모는 M7.5이고, 파도 높이는 니가타현 앞바다에서 4m 이상에 달하였다. 일본에서 이 지진으로 26명이 사망하고, 44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960채의 가옥이 전소, 6,640채가 부분 파괴, 15,298채가 침수되는 등 선박과 도로에 피해가 많이 발생하였다.
동해안에서 지진해일의 최대파고는 울산이 39cm였으며,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는 없었다.
6. 1983년 5월 26일 묵호 지진해일
1983년 5월 26일 11시 59분 일본 혼슈 아키다현 서쪽 근해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강진으로 묵호 200cm 이상, 울릉도 126cm, 속초 156cm, 포항 62cm의 최대파고를 기록하였다.
피해 사항으로 인명은 사망 1명, 실종 2명, 부상 2명, 가옥은 파괴 1채, 파손 22채, 침수 19채, 선박은 파괴 47척, 파손 34척이었으며, 총피해액(당시 금액)은 약 3억 7천여만 원이었다.
7. 1993년 7월 12일 묵호 지진해일
1993년 7월 12일 22시 17분 일본 홋카이도 오쿠시리섬 북서쪽 근해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묵호 276cm, 울릉도 119cm, 속초 203cm, 포항 92cm의 최대파고를 기록하였다.
피해 사항으로 인명은 피해가 없었으며, 선박은 전파 17척, 반파 15척, 어망 어구는 3,228통이었으며, 총피해액(당시 금액)은 약 4억 원이었다.
8. 2024년 1월 1일 묵호 지진해일
2024년 1월 1일 오후 4시 10분 일본 니가타 이시카와현 노토(能登)반도 쪽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으로 국내 동해안에서도 지진해일이 발생하였다. 강원 영동지역의 지진해일 높이는 1일 오후 8시 35분 동해 묵호가 85cm(국립해양조사원: 101cm, 조석 반영)로 가장 높았고 속초가 45cm를 기록하였으며, 동해안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한 것은 31년 만이다.
이 지진해일로 인해 우리나라 동해안 지역에서 지진해일이 관측되었으나 인명과 재산 피해는 없었다.
9. 왜 일본 지진해일은 묵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까?
기상청에 따르면, 지진해일이 우리나라로 전파해올 때, 동해 중간 지점의 얕은 수심을 거치면서 이때 지진해일의 에너지가 조금 해소되지만 이후 묵호 주변으로 향하는 물길의 수심이 다시 깊어지고 이때 에너지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동해 수심: 약 2㎞ 정도, 지진해일 전파 속도: 시속 500㎞ 정도) 또 묵호엔 항구가 있어 갇혀 있는 지역에 물이 들어와 계속 출렁거려 물결이 더 높아지는 부진동(副振動) 현상도 더해지므로 늘 주의가 당부되는 곳이라고 한다.
〈참고〉 부진동(副振動, secondary undulation, seiche)
부진동 현상은 한쪽이 개방된 만에서 해수면이 기상 외력(대기압, 바람) 또는 장주기파 등과 공명해 출렁이는 현상을 말한다.
세이시(seiche)는 스위스 프랑스어의 방언으로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뜻이며, 1890년 호소학의 창시자인 스위스의 프랑수아 알퐁스 포렐(François-Alphonse Forel)이 제네바 호수에서 이 현상을 관찰한 이후 붙인 이름이다.
<참고문헌 및 자료>
기상청 날씨누리
『승정원일기』
위키백과, 일본의 지진 목록
위키백과, 한국의 지진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