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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Sep 12. 2023

질주하려는 욕심 걷어내기

늦깎이 인생원칙 3

TV로만 보았던 만년 과장, 우리 아빠였다. 30여 년간 학벌인맥 없이 버텨온 성실을, 기성세대가 그렇게 강조했던 그 성실을, 세상에서 그다지 높이 평가해주지 않았다. 차라리 세상살이 적당 요령 먼저라는걸 누군가 알려줬더라면 여유로운 아침 식사로 든든하게 배라도 채우셨을 텐데. 새벽이면 빈속으로 현관문을 나섰던 아빠에게 승진 넘을 수 없는 벽, 철옹성이었다. 30년   뱃속에 채워질 수 없는 헛헛함까지, 결국 아빠는 출근을 가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존심 구겨가며 열과 성을 바쳤던 직장 나는 시기에 대한 결정권 주지 않을 만 냉정했. 졸지에 거리로 내몰려 붕어빵 장사라도 하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 내가  3 때의 일이다. 아빠의 빈자리를 매일 출근으로 착각했으니 참 무심한 딸이었다. 엄마와의 공모 하에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흑역사우리 삼 남매 모두 성인이 돼서야 봉인 해제되었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급박했던 아빠에게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던 것은. 절실한 만큼 따져 묻지 않고 덥석 손을 았다. 땅바닥에 나 앉을 나락에 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사회적 지위가 수직 상승했다. 이렇게 아빠는 늦깎이 사장이 되었다. 저물어 가는 인생 후반부를 앞두고 짜릿한 반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늦깎이 사장이라니. 영문도 모르고 뒤늦게 사장딸로 사는 어색한 시절 한 조각이 내 인생에 끼워졌다. 아빠는 때깔 났고 엄마는 행복했다. 난, 직장을 다니면서도 용돈을 받는 풍족함을 누렸다. 평생 쪼들리며 살아온 엄마를 위해 돈 버는 게 인생 최대 목표였는데. 완전히 숨통이 트였다. 이제 장녀로서 가정 경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빠가 알아서 다 해주셨다.



 

인생은 굴곡진 언덕이다. 어느 지점, 어느 구간이든 오르고 내는 곡성(谷性)이 있다. 변동 없이 밋밋한 구간을 통과하다가도 굽이진 덜컹거림에 정신 못 차릴 때도 있다. 역전의 가파름이 너무 심했던 걸까. 늦깎이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사장의 생을 20년도 채우기 전에 아빠의 이성이 멈춰 섰다. 그가 절박하게 낚아채어 잡 은 썩은 동아줄이었다. "이. ㅌ. ㅎ." 기름기 흥건했던 그의 얼굴에서 가식적으로 흘렀던 웃음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그는 떳떳하지 못한 삶을 수치스러워하기는 커녕 보란 듯이 시절 따라 이름을 바꿔 고 등장했다. 수십 번 개명을 하고 허술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아빠 회사에 빨대를 꽂고 배를 채웠던 사기꾼.


미국에 대저택을 짓고 슬하에 두 아들과 사모님이라 칭하는 아내는 가장이 남의 등을 처먹으며 거두어들인 검은돈을 휘감고 호화로움에 빠져 살다. 그의 사기에 걸려든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갈취한 피눈물 뭍은 돈에 도취되어 호위호식하는 삶의 진실을 그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법은 그런 추악한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어 다시는 활보하지 못하게 막지 못하는가? 가슴이 턱 막혔다. 자기 정체를 수십 번 세탁하며 착취한 돈을 치치렁 걸치고 있는 그의 부정함이 아빠의 생에 세차게 튀었다. 


자신의 명의를 자유롭게 사용불가했던 그에꼭두각시 사장이 필요했다. 그러기에 아빠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악을 쓰고 벗어나려 했던 아빠, 삭발까지 감행하며 회사를 지켰던 사건은 오히려 아빠를 수렁으로 빠뜨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아빠는 전력질주했다. 회사를 살려내려고. 늦게 얻은 사장직을 지켜내려고. 자식들에게 당신이 누리지 못했던 삶을 넘겨주려고. 이를 악물. 늦깎이 사장은 늦은 나이에도 젊을 때와 똑같은, 아니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달렸다.


때론 멈춰야 할  그냥 힘을 빼야 하는 게 인생이다. 아빠는 그걸 하지 않았다. 아니, 평생 해본 적이 없었다. 힘조절도, 양조절도 할 줄 몰랐다. 결국, 모든 것을 해결했던 척척박사는 단번에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그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사장으로 버거웠던 순간들이 아빠를 집어삼켰다. 치매라는 고행길이 시작되었다. 모두에게 슈퍼맨이었던 아빠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치매 노인 한 명이 가족의 삶을 휘젓고 다녔다. 멋있었던 젊은 시절이 묻혀버릴 정도로 우리는 힘들었다. 엄마는 옆에서 수발하 '내가 먼저 가면 이 사람 어쩌나...'를 걱정했다. 어느 날, 극도로 지친 심신을 하소연하듯 아빠를 붙들고 차근차근 말했다.


"혜정 아빠, 나도 이제 낼모레 칠십이야. 언제까지 청춘이 아니라고. 내가 힘닿는 데 까지는 요양원 안 보낼 거야. 그런데 내가 언제까지 당신 옆에 있어 줄지 장담할 수가 없어. 나 요즘 몸도 아프고 많이 힘들어. 그러니 내 말 좀 잘 들어주면 안 될까. 응?"  

 

엄마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빠는 이해를 했는지 아니면 무의미한 반응이었는지 모를 끄덕임으로 화답했다. 엄마의 당부가 있은지 채 두 달이 되지 않 어느 평온한 일요일 저녁, 남동생 연락을 받았다. 핸드폰에 부재중이 여러 통 찍히고 다음으로 남편의 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던 걸까. 침통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넘겨주는 남편에게서 난 비보를 감지했다.


"누나, 아빠 돌아가셨어."




갑작스레 집에서 돌아가신 아빠. 119에, 경찰차에, 사망 감식단까지, 아파트 앞이 북적였다. 엄마의 이름을 넣어 "OO 천사"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시더니 성격 급한 아빠가 엄마 힘들게 했던 사실에 뒤늦은 가슴앓이를 했던 것일까. 천사의 걱정을 덜어 주 둘러 하늘길을 하셨것일.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처럼 잘 드시고 건강했는데, 저녁도 맛있고 잡수시고 멀쩡는데..." 

엄마는 했던 말을 떠올리괜한 짓을 했다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1년이 지나도 꿈에 한번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하면서도 하늘에서 잘 살고 있는 징표라 서운함을 달래신다.  




삼 남 중 빠를 제일 많이 닮은 나 생태적으로 전력질주의 유전자가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모양이다. 늦깎이의 인생까지 닮아 있는 것을 보면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 아빠는 그런 나를 걱정해서인지 생을 바쳐 온몸으로 인생 교훈을 남겨주고 떠나셨다.


절대 늦었다고 급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나처럼 욕심부리며 전력질주하지 말아라. 

15년 사장직 때문에 전후의 60년 인생을 날려버리지 말아라.

내가 이미 충분히 힘들게 했으니 가족들과 행복한 세월을 살아라.

부질없는 세상 부귀영화에 목매지 말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고 이생에서 허락하는 소소한 것들을 천천히 누려라.


아빠가 사장이 아니라 그냥 붕어빵 장사를 했으면 어땠을까. 어차피 길게 누리지 못할 부귀영화, 잠시 잠깐의 부유함 따위 어도 괜찮았을 텐데. 더 길고 건강하게 아빠와 동행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에게 아픈 할아버지가 아닌, 멀쩡한 할아버지로 남았으면 마음이 덜 아플 텐데.

내가 일상에서 매일 만나는 풍경 속 어르신들이 우리 엄마이고 우리 아빠였으면 어땠을까 꿈을 꾸어 본다. 어쩌면 평범하지만 누구나가 다 가질 수 없는 일상이다. 나도 우리 아빠와 가질 수 없었던 시간이었으니까. 이제, 내 아들의 삶엔 그런 장면을 선사해 주어야겠다는 야무진 꿈으로 갈아타려 한다. 늦깎이지만 늦게라도 닿는 나의 생에 큰 욕심부리지 않으련다. 전력질주로 잃어버릴 수 있는 과거와 미래보다 천천히 현재를 완주할 것이다. 아빠가 몸부림치며 남겨주신 삶의 메시지를 잊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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