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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Jul 21. 2024

수박 연수 실전 편

이열치열

 '경희대 평화의 전당'하면 알록달록 부채춤이 연상된다. 대학 시절, 어느 성탄절에 한복을 입고 쪽을  채 대학 연합 기독 동아리의 부채춤 공연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 그때 그 시절, 비놀리아관이라고 불렸고 외관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거니와 어마어마한 규모에 눈이 번쩍했던 기억이 있다. 청년의 때에 담아 두었던 낭만의 추억은 이제 중년의 치열함으로 치환다. 중앙 무대에서 진행되는 것은 예술 공연이 아닌, 진학 교사 연수라는 연례행사다. 넓디넓은 그 공간에 한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전국의 고3 선생님들은 참여 신청부터 맹렬한 기세를 통과해야 한다. 연수 신청 접수 사이트가 폭주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접속을 뚫더라도 신청이 안될 경우도 있다. 미신청이 전산상의 오류면 더 억울하다.


 방학을 하자마자 출장을 달고 3학년 부 선생님들이 총동원됐다. 함께 신청했지만 실패한 분들. 그 억울한 전산 오류다. 의자가 아닌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을 수밖에 없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연수를 듣기 위한 열기 바닥자리조차 꽉 매워진다. 빠진 이처럼 듬성듬성 자리가 빌 때쯤 다리 펴고 의자에 앉기도 한다.

 개인 출발로 일찍 도착한 3명의 선생님들과 두꺼운 책 13권을 받아 옮기고 서서 기다리다가 3권씩 포개어 의자를 만들었다. 아직 꽉 막힌 도로에서 달려오는 일행들을 기다리며 시장에서 야채를 팔듯 쭈그리고 앉았다. 서로를 위해 주섬주섬 싸 온 간식도 나눈다.

 이번엔 운이 좋게 목 꺾이는 상층이 아닌, 하층 앞자리 배정을  받았다. 무대 바로 앞에서 가까워지니 낭만의 때가 새새록 떠오른다. 양옆으로는 무작위로 배치된 전국 어느 학교의 어느 담임 선생님이 앉아계신다. 3층까지 가득 매운 현장의 그 어딘가에 앉아 있을 동료들을 대신하여 낯선 이들에 둘러싸다. 그래도 반 아이들 대학 보내려는 공동 미션을 안고 있는 담임들의 간절한 마음은 모두 같으리라. 뭐 하나 빠뜨릴 새라 귀를 쫑긋 세우고 필기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은근한 동지애를 느낀다. 양 옆에 앉은 분들, 3월에도 이 공간에 함께였을 텐데. 의자에 앉기 위해 나와 같은, 아니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과 같은 치열함을 통과하셨을 텐데. 낯섦이 금세 가신다. 다 같은 대한민국의 교사다. 괜스레 짠하기도 하다.


 1시부터 6시까지 5시간 동안 점심도 못 먹고 내리 앉아 있었다. 더 늦게까지 연수가 진행되었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과 아들이 있어 중간에 빠져나왔다. 가는 길가족과 함께라서 좋다. 낯섦이 아닌 친숙함이 주는 포근함이다. 더운 여름, 뿜어져 나온 연수 열기에  가족의 온기까지 더해져 오늘의 살아낸 한 마디는 '이열치열'이다. 평균 이상 열기를 견뎌냈지만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삶의 온도값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여름 일기>의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땀을 흘리며 땀방울이 노래가 된 뜨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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