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전문가가 아닌 늦깎이 제너럴리스트

지각생과의 한 끗 차이, 출발이냐 도달이냐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말은 틀렸다.
늦게 시작해도 어쩌면 늦었기 때문에 성공확률은 더 올라간다.

-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中, 데이비 앱스타인 -

진정한 성공은 '조기 전문가'가 아닌 '늦깎이 제너럴리스트'라고 한다. 늦음의 의미를 뒤집는 책이다. 무엇이든 빨라야 성공한다는 조기교육의 신화 속에 결국은 걷게 될 걸음을 왜 빠른 걸음마 재촉으로 밀어붙이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늦는다는 것은 단단해진다는 뜻이며 경험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뜻이다. 실패하는 비능률을 선택하고 빠른 성취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은 개인의 적성과 관심을 탐색하는 샘플링(sampling)의 기간을 강조한다. 더 젊은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자신을 오늘의 나와 비교하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닌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것이다. 누군가를 보고 내가 뒤처져 있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두 살에 골프를 치기 시작해서 최고에 오른 타이거 우즈와 같은 조기 천재들은 극소수일 뿐이다. 신중한 탐색을 통해 뒤늦게 정착하는 늦깎이들에게 반갑고 희망적인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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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은 도착이 늦어져서 남는 기록이다. 출발이 언제이건 결과로 달리는 꼬리표다. 학교에서 겪은 '지각'이란 일회성이 아닌 반복성을 띤다. 한번 지각생은 만년 지각생인 경우가 다반사다. 사유는 왜 이리도 다양한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외부에서 기인한 변명의 집합이다.

"왜 늦었어?"

"버스가 늦게 왔어요."

"갑자기 배가 아프고 똥이 마려워서요."

"엄마가 늦게 깨워줘서요."

"너무 피곤해서 알람을 못 들었어요."

"제 탓입니다."라고 깔끔하게 시인하는 경우가 드물다. 누가 지각생이 되고 싶겠냐만은 결론은 본인 탓인데 들어보면 남 탓이다. 학교에서 멀리 사는 아이들은 늦지 않는다. 오히려 바로 코앞에 사는 녀석들이 늑장을 부리다가 갖가지 이유에 발목이 잡힌다. 모든 변수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제때 도착하지 않고서 땜빵식 변명을 늘어놓으며 눈 가리고 아웅 하려 한다. 

무게 중심이 자의(自意)에 있지 않다. 지각생은 외적 요인의 침탈을 용인하는, 어찌 보면 자기 생의 경계를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호성을 동반한다. 살짝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자의성(自意性)의 부재.

반면, 늦깎이는 본인의 의지다. 출발이 조금 늦어진 자기 결정력의 산물이다. 다른 길을 선택한 후 빙빙 돌다가 스스로 의지적으로 방향 전환을 감행한 것이다. 도달 속도나 효율을 따지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 출발선에서 발을 땐 시간이 다른데 훨씬 먼저 나선 사람과 현재의 거리를 견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론, 늦게 출발해도 빨리 도착하는 이들이 있긴 하다. 늦깎이라기보다는 추월자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늦깎이들은 흘려버린 시간들에 변명하지 않는다. 자진해서 다른 길을 채우느라 출발이 지체된 데다가 최종 도착 시기를 어느 정도는 가늠하고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크게 뒤처지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많이 늦어져도 괴념치 않는다. 조기에 전문화의 길에 들어서지 못했으나 다양한 경험치와 소신을 가졌기에 가벼워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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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반부는 상대적으로 빠른 인생을 살았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보다 앞서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 속에서 잘못된 성공 신화에 물들었다. 앞서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찾아온 늦깎이 인생, 전반부가 모조리 깎여나가고 뒤늦게 철썩 붙어버린 그 단어가 처음에는 마냥 아팠다.

"교대 합격하고 안 가더니 왜 이제야 사대를 가?"

"남자를 뭘 그렇게 까다롭게 고르다 여태 혼자야? 독신의 은사를 가진 건가?"

"늦게 결혼했으니 애가 자꾸 유산되나 봐. 입양해도 돼."

"이제 와서 대학원을 왜가? 승진 욕심 있어?"

남일이라 쉽게도 툭툭 뱉어내는 말에 내면의 살갗이 파였다 덮였다를 반복했다. 사람들의 입방아가 스테레오로 크게 울리더니 지나가는 소음 정도로 하찮게 들리는 때가 왔다. 뭐, 이골이 난 것이다. 늦깎이로 아등바등하던 시절이 조금 지나가니 여유라는 완충 장치가 충격을 받아낸다. 늦어 버린 나에게도 큰 관심 가져 주니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도 싹튼다. 가장 좋은 건, 나처럼 늦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나만의 이야기다.

십 년을 늦어도 멀쩡한데 한 두 해 좀 늦는다고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

내 옆의 동년배를 보지 말고, 미래에 웃고 있을 나를 보아라.

늦어도 괜찮다. 하고 싶은 것 해라.

늦어서 다행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니.

인생은 경험한 만큼 늘어나고, 직접 소화한 것만큼 더 넓게 볼 수 있다는 옛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 늦었지만, 늦었기 때문에, 늦더라도 얻는 것이 더 많다. 모든 늦깎이 인생은 출발시점이 아쉬웠을 뿐 도달시점은 상관없다. 누구도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늦깎이 인생, 그 위를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탠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