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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Sep 09. 2023

늦은 시간 속에 제때 찾아와 준 인연들

내 생의 배경이 아닌 소중한 주인공들

지나간 어느 시점, 내 삶의 절단면을 같은 시공의 기억으로 포개어 맞출 수 있는 사람들이 소중해진다. 남들이 절대 알 수 없는, 우리만의 추억이 한 상 차려질 때, 뜨끈한 포만감에 겨워할 수 있다...(중략)... 단단하게 추억의 개수들을 채워갈 때 묘한 동지애가 솟구친다.

-<아침 10분 영어 필사의 힘> 中 , 위혜정-

내 생의 시간과 포개어지는 면이 좁든 넓든, 나에게 도착한 인연들은 모두 소중하다. 인맥에 힘입은 성공을 꿈꿔서가 아니다. 삶의 반경 안에 잠시라도 온 그들 인생의 단면 구멍으로 비어있지 않도록 깨알같이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를 전담하는 택배 기사님을 다른 구역에서 만 때, 학교에서 한 번쯤 본듯한 어머니가 땡볕에서 교통지도를 하는 모습을 볼 때, 가게가 아닌 횡단보도에서 급히 길을 건너고 있는 마트 사장님을 마주할 때, 그저 반가워서 먼저 인사를 건넨다. 통성명 한번 하지 않았어도 생의 동선 어딘가에서 한 번의 마주침이면 충분하다. 그 끈의 연결력으로 그들 역시 미소로 화.




스치는 인연도 그리 귀한데 밀도 있게 삶의 접합면을 공유한 이들은 더 소중다. 그리 많지 않아도, 있어서 감사한 내 사람들이다.


"중학교 2학년때다. 그러고 보니 벌써 30년 지기다. 15살 애송이 시절에 만난 널 지금까지 볼게 될 줄 그땐 미처 몰랐다. 같은 반에서 2년을 마주쳤지만 스칠 인연으로 생각하무심히 지나. 하지만 넌 내 인생에 늘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배경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으로 3년 연속으로 동일한 시공 놓, 바늘구멍 같은 확률도 통과했다. 서로의 옆을 지켰던 단짝들이 져나간 새로운 세계 드디어 서로에게 필요한 때를 만났다. 나란히 옆에 있는 네가 보였다.


넌 기억이 나지 않을지 몰라도 난 너 때문에 종종 울었다. 단짝이라 자청했던 나 말고 다른 친구와 있을 때면 괜스레 서운해서 눈물이 났다. 왜 우냐고 달래주는 너에게 차마 속 좁은 내 마음을 드러내진 못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넌 이과로 난 문과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래도 사는 동네가 가까워서 고등학교 3년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나 함께 등하교했다. 때론 번갈아가며 아빠들의 차를 얻어 타고 험난한 고3 시절도 같이 헤쳐나갔다. 그러고 보니 넌 나의 학창 시절, 배경이 아닌 주인공이었다."


늦게 애를 낳아 허덕이는 나의 시간 속에서 친구는 다시 배경으로 물러나 주었다. 추억 속에서 나를 울렸 그녀가 이번에 다시 나를 울렸다. 어느 날 난데없이 톡이 .  


"너네 집 근처에 제일 자주 가는 커피숍이 어디야?"

"메가커피. 요즘 커피숍 전쟁이야. 이러다 다 망할 거 같아."


영문도 모르고 따닥따닥 붙어서 문을 여는 커피숍  영업 걱정을 해댔다. 날 만나러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약속도 잡지 않은 채 대화가 종료되었다. 커피숍은 왜 궁금했던 걸까. 요즘 풀타임 의사로 전업해서 바쁠 거야. 노는 내가 이해해야지.


다음날 저녁, 띠링~

메가커피 상품권이 빵빵하게 채워져서 메시지와 함께 배달된다.


"팬으로서 작은 응원이자 감사의 선물 보낸다. 추석 지나고 서율이랑 나와. 맛난 거 사줄게."


생일이나 특별한 날도 아닌데 뜬금없 뭘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웬 선물이냐 파헤치는 티키타카 대화 속에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돈벌이가 없어 커피 한잔 값도 사치라고 생각하며 지갑 열기를 망설인다는 구석진 나의 글에서 멈춰 선 친구,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야, 나 네가 쓴 글 매일 읽어. 하나도 안 빠지고 다 읽었어. 너 휴직인 거 깜빡했다."


글이 마음에 가닿았다. 그녀의 동한 마음이 나의 으로 다시 돌아왔다. 얇게 설 얼었던 이성의 얼음장 밑으로 뜨거운 감정이 차오른다. 냉철한 머리가 녹아 가슴으로 흘렀다. 이런, 배경인줄 알았던 친구가 여주(여자 주인공)를 울리다니. 울고 웃었던 여고생 시절을 지나, 굴곡진 20대와 30대를 거쳐온 시간에 기대어 꺼내본 기억 속 친구는 그저 그림처럼 걸려있는 배경이 아니었다. 여전히 내 생의 무대를 왔다 갔다 하며 움직이는 실체였다. 서울 사는 녀석의 직장이 우리 집에서 지척이다. 너 설마 주인공 하고 싶어 자꾸 나 따라다니는 거야?


아픈 몸을 추슬러 일상이 살아나는 순간, 가볍게 걷는 등산로에서 다시 친구의 따뜻한 마씀씀이를 떠올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청승맞게 등산을 하며 산속에서 펑펑 울었다. 공짜 피 상품권만으로는  수 없는 눈물 꼭지다. 마음을 받 찡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파서 공짜로 누렸던 일상 올 스톱되었던 2주간정서 범벅 되었. 잠시 멈추었던 매일이 다시 제자리로 회복된 기쁨, 짜로 닿은 수십 년 간의 인연을 지금도 누릴 수 있다는 감격까지. 모든 것이 잡탕으로 눈물과 함께 섞였다.


비록 내 인생은 늦었지만, 멈칫하지 않고 제때 찾아와 준 인연들이 새삼 고맙. 인생길목마다 마음을 포개어 준 그들의 애정에 겨워한.  단단하게 채워진 추억의 개수만큼이나 의미가 남다르다. 나의 인생 무대에 배경이든 주인공이든, 내 앞에 도착한 든 사람들은 귀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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