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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Sep 03. 2023

늦깎이 교사의 애끓는 마음

존중의 덕이 상식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방문객> 中, 정현종 -



교사는 촘촘한 관계의 망 속에 살아간다. 그 안에서 실로 어머 어마어마한 일을 온몸으로 마주한다. 바로 과거, 현재, 미래가 전부 딸려오는 한 사람의 인생을, 하나도 아닌 다수로 매년 새롭게 맞이하는 일이다. 어쩌면, 아니 당연히도, 막중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짊어지는 것이 교사의 운명일지 모른다. 교직에 발을 딛기 전까지 그 무게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머, 선생님 회사 다니셨어요? 너무 좋네요! 아이들에게 사회 경험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너무도 떨렸던 첫해 담임의 학부모 맞이 총회에서 한 어머님의 말씀이 그렇게 따뜻할 줄 몰랐다. 내밀 것 없어 한없이 쪼그라들어있던 초짜에게 뭔가 허름한 뽕이라도 넣어 주시려는 듯 교직에서 전혀 인정되지도 않는 회사 경력을 끌어다 치하해 주셨다. 그 넉넉했던 어머님의 오지랖(?) 한마디가 그리운 지금이다.


직장 경험의 연차만큼이나 교직 입문 시기가 늦었다. 신규였지만 풋풋함이 못내 아쉬웠던 2000년 후반, 같은 학교에 발령받은 23명의 새내기 교사 중 나는 사회 경력을 걸친 노땅 중의 노땅 신규였다. 다행히 풋풋한 그들의 젊음에 어째 저째 묻혀 갈 수 있었던, 적당한 청춘 한 뭉치 정도는 지니고 있었다.


경력에서 뿜어 나는 카리스마의 내공이 없었던 설익은 신규들은 새내기라는 타이틀에 깃든 어설픔을 숨기기 위해 가시적인 상징물에 의지했다. 지금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 대나무 회초리를 호기롭게 공구(공동구매)했다. 그때만 해도, 아니 그 학교만 해도 학생들에게 매를 대는 것에 '학대' 내지는 '인권 침해'라는 꼬리표가 달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체벌을 남발하는 사례는, 적어도 내 주변엔 없었다. 그저 학생들에게 강하게 어필되길 바라는 상징적 의미가 바로 '사랑의 매'였다.


각양각색의 회초리교사의 선택을 기다리며 인터넷 쇼핑몰에 판매되고 통용되었다. 0교시가 있었던 7시 무렵부터 야간 자기주도 학습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하루 12시간 이상을 고스란히 학교에서 버텨내야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신규 담임들에게 회초리 하나쯤은 얄팍한 현장 경력을 조금이라도 지탱해 줄 수 있는 버팀목이기도 했다.


이따금 야간 자기 주도학습 무단 도주  특정 교칙을 어기는 질풍노도시기 출렁임을 잠재우기 위 회초리 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학생들도 학부모도 그러려니... 하고 자연스레 용납해 주는 관용 덕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손바닥 대신 발바닥을 택했다. 기왕이면 건강까지 챙겨주고 싶었다. 자극제처럼 발바닥 중간을 찰싹 때려주면 한 대 더 때려달라고 애정을 갈구하는 녀석도 있었다. 선생님의 매로 장난을 치는가 하면, 친근감을 표시로 막대기를  예쁘게 꾸며주기까지 했다. 그저 표면적으로 보이는 체벌이 아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신뢰의 끈이 따뜻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그저 아련했던 그 시절이 소환되는 이유는 애끓는 안타까움 때문이리라. 저경력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잇달아 교사의 자살 비보 소식이 끊이지 않고 날아든다. 같은 교직에 있어서라기보다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더 애잔하고 서글프다.


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그들의 인생을 끌어안은 교사들의 인생이 멈춰 섰다. 실로 어마어마한 일을 했던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가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오는 인생들을 막지 못한 채 자신의 인생이 허망하게 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 샛길을 찾지 못해 숨통이 막혀버린 인생의 마지막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그들에게 고뇌의 마음을 토해낼 곳은 있었을까? 뱉어 놓은 토사물을 치워줄 이 하나 없어 질식한 것은 아닐까? 다 키워 장성한 자식이 단 한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아 이 땅에서 버티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어미의 마음은 얼마나 미어질까? 이 시대는 왜 실로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자발적으로 짊어지고 가는 교사를 가벼이 여기며 비난으로 짓누르려고만 하는가?


매년 새로운 인생들이 한 다발 가득 실려 오는 교실, 그곳을 빼곡하게 감싸는 긴장감에 떠는 교사의 마음을, 나도 교직 밖에서는 몰랐다. 교사 역시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고, 부모이고, 가족이다. 전화 상담을 하는 분들을 만나기 위해 듣는 ARS 녹음의 당부, 존중은 교사에게도 해당된다. 아니 이 사회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당위 아닐까.

 

"사람이 간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가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가신 길 위로 존중의 덕이 상식이 되는 세상이 세워지길 꿈꿔본다. 좀 늦었어도 바로 잡히길 바란. 그곳에서는 평안하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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