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려요. 밥 먹을 때는 지저분한 데다 말도 아직 못 해요. 그래도 엄마는 생각했죠. 우리 아이는 그저 조금 늦게 피는 꽃이라고. 엄마의 믿음대로 레오는 어느 날, 자기만의 때에 활짝 피어났어요. 읽고 쓰고 그림을 그려요. 깨끗하게 먹고 말도 해요. 그것도 한 단어가 아닌 통 문장으로 바로. 레오의 첫마디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내가 해냈어!"
- <늦게 피는 꽃 레오> 중, 로버트 크라우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동화이다. 나의 모습이 보여서이다. 뭐든 제대로 할 줄 몰랐던 아기 호랑이 레오는 무언(無言)에서 통문장을 발화하며 활짝 피어난다. 질서 정연하게 배열된 단계를 모두 뛰어넘는 비약적 도약이다. 주변의 관심이 걱정, 무시, 냉대로 변질되는 모든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 결과다.
무질서는 자연적 경향이다. 증가하는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주는 점점 더 카오스의 상태로 흘러간다. 혼란한 불확실성을 참아내지 못하고 질서를 잡는 것, 삶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끼워 맞추는 과정은 어쩌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불안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무엇이든 유형화하고 분류하여 틀을 만들어 그 상자 안에 나를, 그리고 상대를 위치시키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한국인들은 혈액형으로 사람들을 분석하고 정형화했다. 평생 자신의 혈액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기이하게 여겼던 한국만의 독특한 집단 문화였다.
혈액형을 묻던 시대는 지났다. 그 자리를 MBTI가 대체했다.고작 16가지 유형안에사람들을 집어넣고서로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투여한다. '난 이렇구나.', '넌 이렇구나.'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도구로써의 MBTI가 '난 이래서 이래', '넌 그럴 수밖에 없어.'의 한계를 설정하거나서로를 정의하는 불편한 압박의 틀이 되기도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70억의 사람들을 16개의 유형 안에 압축하여 통합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맞지 않는 특정 유형의 틈새를 메꾸기 위해 이제는 애니어그램이라는 새로운 툴까지 등장했다.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신선하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한 인공의 틀이 오류 없이 정확할까? 이해를 넘어서서 누군가를 고정된 틀에 가두려고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사람들이 짜놓은 인생의 시계라는 틀이 불편하기 시작했던 것은 내가 거기서 벗어나고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결혼을 해야 했으며,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를 낳고, 하나를 낳고 나면 왜 둘을 낳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끊임없는 관심 내지는 근심이 돌고 돌았다.
대학 졸업을 했지만 바로 입사하지 못했다. 뒤늦게 취업을 했지만 몇 년 뒤 결혼 대신 사직을 택했다. 결혼이 늦어지니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뒤늦게 결혼을 했지만 정해진 인생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찌 보면 난, 첫 단추부터 틀 안에서 벗어난 이탈자였다. 이야깃거리가 되기 충분한 소재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거슬러 가야 한다는 것은 늘 부담스럽고 지친다. 괜찮다가도 누군가가 별생각 없이 툭 던지는 한 마디에 넘어진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넘어지고 일어나는 시간들은 알게 모르게 축척이 되더라. 분명한 것은 더 단단해진 나를 마주하게 되는 점이다. 외부의 기이한 시선을 견뎌내고 나를 다독인 시간이 견고한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좀 늦더라도 괜찮아졌다. 어차피 늦은 거 여유를 부릴 수 있어 더 좋다. 좀 늦어도 피어나게 되니까. 만일 꽃이라면, 반드시 피어날 때가 온다고 했다. 각자의 때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지정한 '빨리'가 아닌 각자의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저마다 인생에 자명종이 울리는 시간은 다르다. 생이 지닌 개별성과 고유성이 바로 자연적인 흐름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