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혜정 Aug 25. 2023

단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띠링~’

출근하자마자 문자 한 통이 날아든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OOO 엄마입니다. 오늘 졸업식이라 바쁘시죠? 선생님 편한 시간에 연락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제 종업식을 끝으로 반 아이들과는 작별 인사까지 마쳤는데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실까? 순간, 불안하다. ‘내가 뭘 빠뜨린 걸까? 아이에게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면 고3 올라가는 자녀의 성적 상담일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하는 생각에 노트북을 켜서 부랴 부랴 성적 프로그램을 연다. 지금 통화 괜찮으시냐 여쭙고 걱정스레 전화기를 든다.     


"선생님..."     


첫마디부터 떨리는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어 있다.      


"선생님... 제가 문자만 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통화 부탁드렸어요. 목소리로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네,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선생님... 너무 감사드려요... 선생님께 1년 동안 너무 감사했어요..."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울컥한다. 한 해 동안 아이와 엄마가 힘들었던 시간들이 기억 저편을 훑고 지나가면서 마음이 먹먹해진다.     


"선생님, 제가 정말 선생님께 따뜻한 밥을 지어서 직접 대접하고 싶어요. 안 되겠죠? 아이가 어제 말하더라고요. ‘엄마 내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면서 밤새도록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찍은 동영상을 계속 돌려 봤어요.”     


유난히 여린 체구에 극심한 예민함으로 학업 스트레스와 불안증, 어려운 교우 관계를 이고 지고 힘든 한 해를 보냈던 아이였다. 사슴 같은 눈망울을 그렁 거리며 어제도 내 앞에서 울고 가더니, 오늘은 어머니까지 내 눈가를 흥건히 적신다. 그래도 이제, 아이 마음이 단단해져서 편하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말에 안도감이 든다.    

 

“선생님 제가 감사해서 케이크라도 하나 사서 보내드리고 싶은데 그러면 선생님 불편하실까요?"     

“네 어머니(웃음), 받은 것으로 생각할게요. 마음 너무 감사해요.”     


모녀에게 받은 눈물 세례가 한 해의 찡한 보상이 되어 돌아온다. 천금보다 더 귀한 마음을 얻다니. 느지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교직은 소중했다. 어렵게 발을 디딘 만큼 정성을 다했다. 그걸 알아주시다니 마음이 벅찼다.


교사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곱게 포장하여 학생들에게 보낸다. 사실, 정성스레 전송한 마음이 허공에 흩어지거나 밑바닥에 툭 떨어져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려니...’하고 애써 괜찮은 척하다가도 '내가 굳이 또 이래야 할까?' 하며 헛헛함의 수렁에서 질척거리기도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괜찮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오늘처럼 가끔, 아주 가끔이라도, 이렇게 따뜻한 피드백이 되어 돌아오면 '아, 계속하는 게 맞는구나..." 하며 힘을 낸다.   

   

모두에게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겐 흡수되는 나의 정성, 그것이 한 아이의 인생에 밑거름이 되어준다면 그 ‘하나’를 위해 내 마음의 허탈감쯤은 퇴비로 묵혀 둘 수 있다. 모두가 아닌, 단 한 사람의 변화가 공동체와 사회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위해서도 누군가는 그래 줄 것이라는 야심 찬 희망도 품는다. ‘하나’는 작다. 하지만 강하다. 오늘도 수신이 거부될 수 있는 사랑을 꿋꿋하게 포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 격하게 파이팅이다.

이전 08화 늦게 피어나는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