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고? 다른 거 아니야?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너 같은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넌 이상하지 않아. 조금 다르고 특별할 뿐이야.”
요즘 즐겨보는 디즈니 드라마 <무빙>이 건네는 따스한 메시지다. 평생 이상하다고 여기며 숨기고 싶었던 남들과의 '다름'이 자신만의 '특별함'이 되는 순간이다. 다른 것은 이상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것이다. 당연함과도 맞닿아 있다. 사람은 모두 같을 수 없으니다른 것은 당연히 옳다.
모두가 다르고 모두가 옳은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그래서 같아질 필요가 없다. 각자의 개별성과 독자성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기도하다.
"엄마 저 곤충 빨리 사진 찍어 주세요!"
"엄마, 저거 사진 찍어서 수채화로 그려봐요!"
아들은 자연을 볼 때마다 무엇이 그리도 신기한지 탄성을 지르며 멈춰 선다. 직선도 곡선도 아닌 현란한 곡률의 행보는 행선지를 역행할 때가 많다. 맘 바쁜 엄마에게 아들의 준엄한 탐험심은빈번히묵살된다. 자연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정성 역시 유별난 아들이다. 나중에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 뻔하지만 엄마는 그의 장단에 맞춰 계속 셔터를 누른다. 언젠가 찾을 때 뒤적일 수 있는 흔적이라도 남겨 놓으려는 배려다.
사진이 품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의 폭이 넓고 깊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들은그림으로 담아주기를 기대한다. 옆에서 붓 질을 몇 번 했더니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엄마의 수채화 실력을 맹신하고 있다. 뭐, 그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잡아 놓고 싶은 예쁜 아이의 마음이리라.
자연을 한 폭의 그림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가능성 타진을 위해 실물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조심스레 닿은 결론은...아, 불가능하구나! 가장 큰 걸림돌은 수채화 초보자로서의 주제 파악이다. 다른 강력한 이유는, 스쳐 지나칠 때는 몰랐던 자연이 품은 경이로움이다.
거리감을 빌려 화폭에 뭉쳐 담으려는 요소의 집합체가 면밀하게 시각을 타고 들어오는 순간, 종이장 위에 살려낼 수 없는 개별적 존재감이 보인다. 무성한 나뭇잎들은 같은 초록빛이라도 절대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다. 각각의 초록 이파리들은 저마다의 또렷한 톤으로 명료한 실루엣을 뽐낸다. 옆에 붙어있는 잎새의 빛깔에 조금도 뭉개지거나 흡수되지 않는다. 흐드러지게 함께 모였지만 결코 섞이지도 않는다. 초록이라고 다 같은 초록이 아니다. 캔버스 위에서는 고작 몇 종류의 수채 물감에 명암의 강약을 더하는 것이 다일텐데. 그 모두를 초록으로 퉁치기엔 아깝다. 낱낱의 개체가 가진 신성함을 묵살하는 것이기에. 진귀한 개별성이 눈에 밟혀 도저히 건드릴 수 없다. 그렇게 자연은 나에게 재현 불가침의 영역이 되었다. 그 도도함 앞에 비천한 실력을 변명 삼아 백기를 든다. 자연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길 간절히 바라면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말을 살짝 굴려 바꿔본다. 자연은 멀리서 보면 가능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불가능이라고.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그래서 비슷하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보이지 않던 생의 꾸러미들이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복잡 다단한 독자성을 띤다.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힘들다. 아니, 불가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