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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y 30. 2022

안개가 자욱하더라도



어제 남편은 아이와 함께 박물관에 다녀왔다. 오전 내내 거센 비바람이 쳤지만, 분명 출발할 때 돼서는 비도 바람도 잠잠했다. 그런데 서귀포시로 가는 길은 안개가 자욱했기 때문에 운전하는 길이 내내 힘들었다고 했다. 우리 동네는 분명 괜찮았는데, 서귀포시로 넘어가는 그 큰 도로에 얼마나 짙은 안개가 끼었던 걸까.



얼마 전에도 비가 온 오후에도 안개가 자욱했다. 큰 도로에는 안개가 덜했지만,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중간산에 있는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동네 전체가 안개로 자욱했다. 어디 영화에서 나올법한 그런 모습의 집을 걸어 들어가며, 태어나 처음 보는 날씨라고 생각했다.  몽환적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안개낀 우리 동네





오늘도 아침도  비가 올락 말락 흐리더니, 아이가 등원하자마자 온 동네에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섬이라서 그런지 안개가 꽤 자주 끼는 느낌이다.










내 생일, 그날도 비가 왔다. 우린 제주시에서 제일 높다는(겨우 38층) 호텔에 차를 마시러 올라갔는데, 그날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안개에 둘러싸여 저 멀리 바다는커녕 바로 옆의 집들도 간신히 볼 지경이었으니까.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렇게 안개가 자욱할게 뭐람, 속상했다. 매일 가는 호텔도 아니고 내 생일이라 마음먹고 왔는데...



며칠 전 조금 낙담할 일이 있었는데, 딱 그날의 우리 기분 같았다. 잘 되는 일은 없고, 잘 풀리는 일도 없고, 생일마저 안개 자욱한 곳에서 차를 마셔야 한다니 기분이 상했다.




안개 가득한 제주시 뷰








종종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안개가 자욱한 때가 있다. 앞도, 도 보이지 않고 저 멀리의 인생도 보이지 않고 그저 답답할 때가 있다.

 


나도 안다. 늘 햇살이 쨍쨍 내려질 수는 없다는 것, 바람도 불고, 소나기도 오고, 폭우도 오고, 장마도 오고

우박도 내리고, 눈 내리는 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날씨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좋고 맑은 날은 맑아서 좋다. 나는 그 자연스러운 변화에 감사하고 즐길 수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제주가 내게 알려준 가장 큰 교훈이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이 맑은 날의 반대가 아님을 안다. 매일 스쳐가는 감정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0p / 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 / 루씨쏜




 나도 이렇게 생각해볼까 하고 마음을 먹으니 조금 힘이 났다.










수년 전엔 깜깜한 터널을 걷고 있었다. 사방이 너무나 깜깜하고 답답하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안개가 낀 지금은 다르다. 어렴풋이 볼 수 있다. 조금씩 보이고는 있다. 자세히, 세세하게는 볼 수 없어도 그래도 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우린 천천히 걸어간다. 언젠가 그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며 차근차근 걸어간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언젠가 안개에서 벗어나는 날은 분명히 온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꾸준히 걸어간다.



점차 나아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안개가 걷힐 것을 이제는 안다.







메인사진 : https://pin.it/5qzBi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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