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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n 06. 2022

앵두가 익을 무렵

6월이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앵두나무에 앵두가 주렁주렁 열리는 줄 안다. 왜냐하면 십여 년 전 6월 6일, 큰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6월이 되면 앵두가 열려있겠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삼촌이 떠오른다.



그때는 내가 대학생 때다. 나는 명절이 아니더라도 엄마를 따라 종종 외할머니댁에 가곤 했다. 특히 앵두가 나오는 계절이 오면 우린 외할머니댁에 가서 앵두를 가득 따서 가져왔다. 삼촌이 돌아가시기 일주일인가 열흘인가 전에 나는 삼촌과 함께 앵두를 땄다. 앵두를 따고 또 따서 양동이 가득 채웠다. 삼촌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높은 곳에 있는 새빨간 앵두를 따주셨다. 위쪽에 햇빛을 잘 받은 앵두는 더 잘 익어 있었다. 당연히 잘 익은 앵두 더 달고 맛있었다. 그날 우린 한참을 함께 앵두를 땄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인가 열흘 후 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던 교통사고였다.








외갓집에는 큰삼촌이 첫째, 엄마가 장녀, 2남 2녀를 두었다. 그중에 외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은 큰삼촌이었다. 결혼 정말 늦게 해서 할머니 애를 태우던  큰삼촌은 기어이 이혼까지 하고 어린 아들과 외할머니 댁에서 살았다. 그때 아이는 고작 어린이집에 다닐 때였다. 큰삼촌은 일을 했고 외할머니는 아이를 돌봐주셨다. 큰삼촌은 외할머니의 잔소리를 못 견뎌했다. 그리고 조금 욱하는 성격이었던 것에 비해 순수했다. 



제법 커서 대학생이 된 나를 삼촌은 언제나 어린아이 대하듯 했다. 우리에게 늘 장난을 치던 친근했던  삼촌이었다. 그날은 삼촌이 치는 장난이 짜증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삼촌 눈에는 내가 늘 어리고 귀여운 조카였을텐데, 왜 그 앵두 따던 날 삼촌한테 짜증을 낸 것인지 모르겠다. 별것도 아닌데, 삼촌이 종일 나와 앵두도 따줬는데... 나는 그 일을 여태까지 기억하고 후회하고 있다. 삼촌과 마지막 인사가 고작 나의 짜증이었다니.



그러니까 나에겐 함께 앵두를 따던 날이 큰삼촌과의 마지막 날이다.










어릴 때부터 앵두를 정말 좋아했다. 아빠가 사업을 시작한 초반 아주아주 가난했을 때는 아주 작은 방에 (집이 아니라 방에) 우리가 다 같이 살았을 때도 있었는데, 어느덧 아빠 엄마가 열심히 돈을 모아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아파트로 가기 전에 우리에겐 잠시 주택에 살던 시절이 있다. 1년, 2년 정도 살았을까?

그 집엔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다. 학교에 가기 전에도 나무에 올라 앵두를 따먹었고, 돌아와서도 앵두를 따먹었다. 정말 내 인생 실컷 앵두를 먹었었다. 그때가 종종 기억난다.



그리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는 앵두는 외할머니 댁에 갔을 때나 종종 따먹었다. 그런데 삼촌이 돌아가신 후에는 앵두를 따러 가지 않았다. 앵두는 여전히 좋아해서 많이 먹고 싶었지만, 더 이상 앵두를 따러가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엄마가 그맘때 외할머니댁에 다녀오시면 엄마의 손에는 앵두가 들려있었다.





도심 속 오래된 아파트에서 찾아낸 앵두나무





도시에 살던 나는 이맘때가 되면 길을 걷다 노상에서 앵두를 사 먹고는 했다. 그것도 몇 번이지 앵두를 파는 노상은 아주 반짝있던 것이라 만나기가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시장에라도 가볼걸 그랬네?



그러던 작년 아주아주 오래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을 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산책을 하다 나무 사이로 빨갛고 작은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하고서 가까이 가보니 바로 '앵두'였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에서 앵두나무라니 정말 신기했다. 우린 오며 가며 앵두를 따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앵두를 따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사는 주민이 오더니 말을 걸었다. "여기 아파트에 약을 너무 많이 쳐서 앵두를 따서 드시면 위험해요~" 이미 오며 가며 몇 알씩 먹은 것 같은데 그 얘길 듣고 난 후로는 다시 앵두 맛을 볼 수 없었다. 정말 아쉬웠다. 그러나 농약을 친지 모르고 먹었을 때 이미  앵두의 맛은 꿀맛이었다. 후후










이번에 제주도의 주택으로 이사오며 앵두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내가 원했던 과실나무는 귤나무도 매실나무도 모과나무도 아니었고 오직 앵두나무였다. 아쉽게도 앵두나무는 이 집엔 없었다. 어쩌면 없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내가 주인인 주택을 가지게 된다면 앵두나무를 꼭 심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6월마다 맛볼 수 있는(정확히는 5월 말부터) 앵두를 한알 한 알 따먹으며 오래도록 삼촌을 기억해야겠다고.




6월이 되면 꼭 이맘때 돌아가신 삼촌 생각이 난다. 삼촌은 그곳에서 잘 쉬고 계실까? 하나밖에 없던 아들은 이제 다 커서 대학도 졸업하고 취직도 했는데... 삼촌도 알고 있겠지? 매년 6월, 앵두를 떠올리며 삼촌을 이렇게라도 추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삼촌 그곳에서 편하게 지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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