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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n 10. 2022

보약 한 사발

집에 들어가는데 문 앞에 택배가 도착해있다. '오늘 택배 오기로 한 것이 없었는데, 무슨 택배지?' 하고 보니 한의원에서 온 택배이다. '아. 맞다! 보약이 배달되기로 했었지.'



지난주 금요일, 평소 낮에는 바빠 절대 전화하지 않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필시 급한일이다. "응 엄마 무슨 일이야?" "엄마 한의원 왔는데 빨리 전화받아봐~" 갑자기 온 전화에, 한의사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하니 당황했지만 인사부터 드렸다. 내가 그간 다녔던 한의원이 두 군데라서 그중에 어디지? 하고 받았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우린 안부를 묻고 진료를 봤다. 오랜만에 들은 선생님 목소리에 그동안 한약을 지어먹었던 때가 떠올랐다.



몇 년 전 대학원에 다닐 때 논문을 쓰느라 잠깐 스트레스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배가 조금 불편했다. 생각해보니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 것일 텐데 큰 병인가 싶어서 병원을 다녔다. 그런데 별 문제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약을 몇 번 지어먹었다. 왠지 한약을 먹으면 건강해지는 기분이랄까? 생각해보니 아기도 낳기 전이라 아주 튼튼하고 멀쩡한 몸이었을 텐데 무슨 한약을 그렇게 챙겨 먹었는지 모르겠다.



마침내 논문을 제출하고 대학원을 졸업 다시 남편이 있는 미국 집으로 돌아가는 날짜가 다가왔다. 미국에 돌아가면 이제 아이를 가져야 했다. 결혼한지도 몇 년 차가 되었고, 공부도 끝내었으니 이제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미션이라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니 조금 웃기다.



암튼, 또 그렇게 한의원에 갔다. "선생님 이제 미국 가면 아이 가지려고 하니 약을 지어주세요~"라고 말하고 한약을 지어먹었다. 역시 아줌마가 되었더니 한의사 선생님께도 원하는 바를 거침없이 얘기했구나. 그 한약을 가지고 미국으로 갔다. 입국심사 때 이거 뭐냐고 물어보면 영어로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하면서 고민하면서 갔었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고 통과되었다.



그 한약을 가지고 미국으로 간 것이 7월 말이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며칠 정도 여행사를 끼고 캐나다 투어를 갔는데 그때도 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다. 심지어 여행 중에 호텔이 집 근처에 있는 날이 있었는데,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남편이 모자란 한약을 더 가져다주기도 했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열망에 열심히 먹었다. 한약 말고도 먹는 것엔 언제나 성실한 것 같지만...



한 달치의 한약을 다 먹은 후에 9월에는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 후 10월 말 정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본 투 비 몸이 예민한 탓에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11월 초 태어나 처음으로 해본 테스트기에서 임신을 확인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해본 테스트기에서 임신을 확인하고는 '이거 고장 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날이 11월 4일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내가 한약으로 임신하게 된 스토리이다. 후후... 사실 한약뿐만 아니라 건강한 내 몸, 남편의 몸, 환경 등등의 여러 요소가 모두 종합적으로 이뤄내 놓은 것이 임신 결과지만, 나는 그중에 한약의 효능도 일부 작용했으리라 믿는다.



한방에 임신이라니 알고 보니 꽤 용한 한의원이잖아?!










원래 진맥을 보시는 한의원인데, 뭐 내 몸이야, 아기 낳고, 몸에 좋지 않은 것 많이 먹고, 운동 안 하고, 너무 뻔한 몸 상태일 것이 뻔해서 그냥 상담을 통해서만 약을 지었다. 어차피 친정 근처라 당분간 갈 일이 없고, 무엇보다 겨울 내내 감기에 걸려있던 게 가장 신경 쓰인 터였다.



한의사 선생님은 내게 딱 두 가지만 강조하셨다. 차가운 것 먹지 말아라, 운동을 해라. 알고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핑계도 참 좋다. 이제 아이스의 계절이 왔고, 운동도 시작을 하긴 해야 하는데 마음만 먹는다. '네? 선생님 여름인데, 아이스커피를 마시지 말라고요?' 한약이 도착하고 깨달았다. 아.. 약을 봄이나 늦가을에 먹었어야 하는데, 어차피 그때는 추워서 아이스를 마시라고 공짜로 줘도 마시지를 못하는데, 아쉽다.




나의 보약







처음 보약을 먹은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할머니 눈에도 내가 마르고 작아서 불쌍해 보였겠지? (내가 보는 아이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래서 할머니가 한약을 지어주셨다. 그 약을 먹고 나는 다시 마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식욕이 왕성해진 건지, 나이가 들어가며 먹는 것을 더 욕심내서 먹었던 것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때는 진짜 마르고 작았는데, 그때 이후로는 평범하게 살집 있는 몸이 되었다(그렇다고 키가 큰 건 아니다). 그때는 한약은 나에게 마치 엄청나게 쓴 총 집합체 같아서 약을 먹자마자 사탕을 입에 털어 넣어야 했다. 그때 먹었던 사탕이 정말 작은 사탕이 꽤 많이 들어있었는데, 한 봉지에 50원이었던가 했는데 완전 불량 식품이었겠지?



암튼, 한약을 먹는 것이 너무 곤욕일 때가 있었는데 나이가 30대 후반이 되어가는 시점이 오니 다르다. 한약을 따뜻하게 데워서 옆에 놓고 한 모금씩, 한 모금씩 음미하며 마신다. 정말 너무 좋다. 가격만 아니면 매일 약을 달고 살고 싶을 정도로 맛이 좋다. 캬~ 건강해지는 이 맛. 한약을 마실 때만이라도 맥주를 끊고, 운동을 하고 건강에 집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약을 먹으려고 봉투를 꺼내보니 거기에 이런 말이 쓰여있다. '즐거운 마음이 가장 큰 마음의 보약입니다'

그렇다. 한약을 먹는 것은 몸이 튼튼해지려는 이유 있지만 지금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은 어쩌면 마음의 보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즐거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 몸과 마음을 위한 보약으로 더 효과 만점일 듯싶다.



이번에 배달되어온 보약을 열심히 잘 챙겨 먹어야겠다. 더불어 챙겨 먹을 때마다 즐거운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한약을 다 먹고 나면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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