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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n 14. 2022

매너 온도 48.5

제주로의 이사를 결정하며 당근 마켓을 많이 활용했다. 나눔은 물론 판매도 정말 많이 했다. 이게 은근 용돈벌이가 쏠쏠해서, 한번 이용하기 시작하면 끊을 수가 없는 것이 당근이다(그러나 그 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나도 가끔씩 당근을 구경하며 흔들렸지만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터라 2년간의 당근 생활에서 구매는 딱 2번이 전부다. 정말 이건 인간승리다.




당근의 처음 시작은 아이 칫솔이었다. 한 개에 8~9천 원 정도 하는 베이비 칫솔이 그 시작이었다. 그 베이비 칫솔은 360도 솔이 있는 것으로 아기들용으로 딱 안성맞춤이었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 돌까지 부모들은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좋을 것을 사서 사용하는 시기이다. 나도 우연히 그 칫솔을 알게 되었고 칫솔치고는 비싼 가격이지만 꾸준히 사서 사용했다. 보통은 3개씩 사서 쓰다가 7개씩 들은 것이 더 저렴한 것을 보고 그것으로 사봤다. 역시 많이 사는 것은 피해야 했다. 결국 그 칫솔을 사용하는 시기를 놓치고 남겨진 것이 3개다. 솔직히 개당 가격이 조금 비싸니(칫솔 개당 7~8천 원 꼴) 버리긴 너무 아까웠고, 주위에 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것을 당근에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그래서 칫솔 3개, 미사용 치약은 덤으로 해서 7000원에 올린 것이 최초의 시작이었다.



그다음은 내가 가진 주얼리를 파는 것이었다. 한창 J땡땡 주얼리에 눈이 멀어서 돈이 생기는 족족 그 제품들을 구매하던 시절이 있었다. 참고로 내가 대학생이 되어 편의점 알바로 처음 벌었던 40만 원을 40만 원짜리 반지를 사는 데 사용했다. 아주 철없는 싶은 시절이다. 그 이후로 귀걸이, 팔찌, 반지, 목걸이 정말 꾸준히 사들였다. 그러나 역시 모든 건 한때다. 시간이 지나니 그렇게 예뻤던 액세서리들이 빛을 잃게 되고 촌스러워지고, 더 고가의 주얼리 제품으로 눈을 돌리게 되며 그 제품들은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내 보석함 한편에 잠든 것이 몇 년은 되었나 보다. 그다음 당근 마켓 타깃은 그 주얼리들이었다.



주얼리의 모든 가격은 만원 가격 아래로 책정했다. 솔직히 조금 아까웠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 비싸게 주고 산 것을 저렴하게 팔려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중고마켓 특성상 저렴해야 빨리 팔렸기 때문에, 돈을 버는 것보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주고 물건이 선순환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올렸더니 불티나게 팔렸다. 역시 저렴한 가격이 핵심인 중고마켓이다. 키워드 알림을 해놓은 사람들에게 바로바로 채팅이 왔다.



암튼 렇게 당근을 시작했다. 그런데 당근이 은근 물건도 선별해야 하고, 사진도 잘 찍어야 하고, 물건 대비 가격도 좋아야 하고, 또 만나서 물건을 건네줘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때 반짝했다가 한참 쉬고 다시 물건이 모이면 반짝했다가 쉬 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제주에 오기로 이사하기 직 전! 어마어마한 물건을 나누고 팔며 나는 당근 마켓의 거상이 되었다. 하루에 3~4건을 기본으로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당근의 매너 온도는 48.5도까지 올라갔다.













제주에 와서는 당근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말 많은 물건을 나눠주고 당근하고 왔기 때문에, 설마 더 있겠어?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집이 제주에서도 외딴곳에 있어서 거래하는 곳이 불편했다. 당근 거래를 하려다 휘발유 값이 더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겐 많은 물건이 있었다.



제주에 와서도 물건을 샀다. 물건을 최대한 사지 않도록 노력하긴 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물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주 서울에서 택배가 왔다. 이제는 매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아이가 생각날 때마다 시부모님께서는 장난감을 사들이셨다. 그리고 그 장난감이 담긴 택배는 꽤 자주 집으로 도착했다. 솔직히 내 눈에는 '이걸 왜?'라는 생각이 드는 장난감이 너무 많았다. 집에 쓸모없는 물건이 많아지는 것도 참을 수 없이 싫은데, 택배로 오는 장난감 중에 절반 이상이 아이의 수준에 맞지 않거나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어느 날 6번째 줄넘기가 도착했다. 그 몇 년 동안 5개의 줄넘기를 사주셨는데 이번에 또 줄넘기를 택배로 보내주셨다. '아... 진짜 이건 뭐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던 나는 얼마 전 시부모님이 제주로 오셨을 때 '다시 서울로 이사 가야 하니 이제 제발 택배 보내주지 마세요' 하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연유로 제주에서도 당근의 시작은 아이 물건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에 가진 물건 중에 아이 물건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이 산 것이 아마 아이 장난감일 것이다. 서울에 살 때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려고 그때는 이사가 코 앞이었기 때문에 "제주도 가면 사줄게~ 거기도 장난감 가게 얼마나 많다고~"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그래도 아이는 착하게도 잘 참았다.



그래서 제주에 와서 아이 장난감을 좀 샀다. 무턱대고 막 사주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간헐적으로 잊지 않게끔 꾸준히 장난감을 사들였다. 그래서 더 비워내야 했다. 지난 당근 품목은 아이가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과 택배로 온 수준에 맞지 않는 장난감, 그리고 작아진 아이 옷, 신발 등이었다. 그것은 운 좋게도 수월하게 당근으로 거래되었다.










중고거래로 소나무를 3그루나 심었다.








특히 지난 어린이날 즈음 아이용품을 정리하고 딱 아이가 갖고 싶은 장난감 가격만큼이 모였다. 당근은 저렴해서 그런지 진짜 많은 장난감을 보내야 한 개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린이날 선물을 사줬다. 요즘 아이들 장난감은 왜 이렇게 비싼 걸까 생각이 저절로 든다.



어린이날이 지난 지 겨우 한 달 넘었는데, 6월에는 아이의 생일이 있다. 이번 생일선물을 사려면 물건을 더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원하는 포켓몬 인형, 포켓몬 스티커, 포켓몬 카드, 포켓몬 도감 등을 사줄 수 있다.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캐치티니핑은 한 달도 안 돼서 흥미가 떨어지고(사실 내가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완전히 포켓몬에 푹 빠져버렸다. 하아...



그래서 이번에 정리할 품목은 아이 수영복, 작아진 여름옷, 여름 신발, 사용하지 않는 맥주컵과 그리고 나의 옷이다. 역시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엄마들에 의해, 운 좋게도 아이의 수영복과 여름옷은 금방 당근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의 옷과 맥주 컵이 잘 팔리지 않는다. 여름 밤엔 역시 맥주인데! 그러나 다들 맥주컵 집에 있겠지? 그래도 종류가 5종류가 넘는데,,, 꽤 괜찮다고! 소문내고 싶다. 아아...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맥주컵을 모으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남편이 그랬다) 아무래도 드림으로 넘겨야 할 듯싶다.




중고거래의 장점은 환경에 이득이다. 얼마 전 당근에서 한 캠페인을 보니 내가 한 일이 '지구에 좋은 거래'라고 한다. 그게 맞다. 정말이다. 그런데 지구에 진짜 좋은 것은 뭔지 알까? 아이 장난감도, 내 옷도, 그릇, 컵도 절대 사지 않는 것이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 경우 말고는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진짜 지구를 위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나? 그러나 현실은 힘들겠지, 절대 안 사고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아주 조금은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무소유의 날이 오겠지?



그나저나 이 글을 처음 쓸 때만 해도 48.5도였던 당근의 매너 온도가 어느새 45.9도로 내려가 있다. 내가 뭘 잘못했지?ㅠㅠ









본문 사진 : 당근마켓 블로그

메인 사진 : https://pin.it/IN77x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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