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Oct 05. 2022

아무것도 사 오지 말 것

사라지는 선물

하늘이 파랗고 화창한 가을이다. 이번 주, 지난주 공휴일이 있어 황금연휴 느낌도 난다. 그래서 제주로 여행을 많이 온다. 지금 제주어딜 가나 여행객들로 가득이다.



우리 집에도 친구가 일 년 만에 방문했다. 정확히는 제주도 가족여행에 하루 시간을 내어 우리 집에 놀러 오기로 했다. 내가 이 친구를 작년 이사 오기 직전에 만났고, 제주살이 하는 동안 육지에 거의 가지도 않아 만날 수 없었으니 꼭 일 년 만의 만남이다.


 

친구가 집에 뭐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본다. 아마도 집에 놀러 오며 선물을 사들고 오려던 것 같아서 "제발 아무것도 사 오지 마. 그냥 친구 집에서 밥 한 끼 먹고 간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나의 말에 친구는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분명 빈 손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뻔했다.







친구지난 집에 놀러 왔을 때 우드 캔들을 선물해 줬었다. 우드 캔들, 요즘 감성을 위해 집마다 다 구비하고 있다던 그 캔들. 나도 갖고 싶었던 캔들이었고, 거기에 센스 있게 캔들 워머까지 세트로 선물해줬다. 게다가 캔들 향마저 취향이 저격이라 정말 마음에 들었었다. 집에 캔들을 켜놓은 날이면 집안 가득 좋은 향이 솔솔, 그리고 따뜻한 분위기까지 연출되는 완벽한 선물이었다. 과연 나는 이런 센스 넘치는 선물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선물 센스는 영 꽝이라, 보통 선물의 기준이 있는데 바로 '필요한 것'을 사주는 것이다. 무엇이 되었던, 얼마가 되었건 필요한 것으로 선물해주는 것이 좋아서 꼭 물어보는 편이다. "뭐 필요한 거 없어? 뭐 사줄까?" 너무 현실적이긴 하지만, 때론 선물에는 서프라이즈가 필요하긴 하지만, 나는 선물 센스도 없는 데다가 그냥 필요한 것 사주는 것이 최고 실용적인 것 같다. 물론 필요한 것이 없을 때는 상품권으로 주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는 생각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난번 친구가 새 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 나도 집들이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 집의 입주였으니 친구가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래서 더욱 친구가 '갖고 싶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내가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마침 친구는 화분이 하나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말 기뻤다. 나는 친구가 갖고 싶어 하는 종류의 화분으로, 원하는 사이즈로 주문해줬다. 친구도 참 기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친구를 초대하게 되었다. 친구가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요즘 와인 전동 오프너가 조금 필요하긴 했지만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와인을 잘 마시곤 했으니 꼭 필요하진 않았으니까 말하지 않았다. 집에 물건이 늘어나는 것은 싫었으니까. 그리고 친구가 오랜만에 제주로 여행 오며 우리 집에 방문하는 것인데 오는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오길 바랬다. 진심으로.



그런데 친구는 그냥 오지 않았다. 바리바리 양손 무겁게 방문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아이는 오랜만에 집에 손님이 오시는 것도 기쁜데 선물까지 받자 얼굴에 웃음꽃이 함박이다. 그리고 곧바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꺼내온다. 안 그래도 집에 오기 직전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게에 들렀다는 얘기를 해서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아이들 간식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트렁크를 열어 과일을 꺼냈다. 알알이 통통한 샤인 머스캣 포도이다. 그리고 크리넥스 티슈 박스까지 들고 온다. 안 그래도 집에 필요했던 것인데... 내심 반가웠다. 늘 필요한 것이긴 한데 마트에 갔을 때 챙겨 사지 않아 두루마리 휴지로 대충 지내고 있었는데 마침 사다 줘서 참 고마웠다. 이제 더 이상 없겠지. 설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차로 가더니 와인을 들고 나왔다. "너 와인 좋아하잖아~" 하면서 건네주는 와인까지... 와인이 진짜 마지막 선물이었다.



친구가 가져온 선물 너무 많았다. 많이 과했다. 차에서 줄줄이 꺼내는 선물에 정말 깜짝 놀랐다. 내가 분명 그냥 오라고 했는데, 정 그러면 애들 먹을 아이스크림 하나면 됐지 너무 많이 사 온 거 아냐? 이럴 거면 그냥 차라리 내가 요즘 필요했던 "와인 오프너"라고 말해줄걸 그랬다. 그러면 친구 마음이 편했을까? 하지만 대답을 안 했다고 이렇게 다양한 종류로 많이 사 올 줄은 몰랐다. 사랑이 넘치는구나?
















단언컨대, 이렇게 많은 선물은 기대하지 않았고 필요 없었지만... 친구가 가져온 선물은 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번 친구가 가져온 선물이 왜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결국 모두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친구가 사 온 아이스크림, 과일, 휴지, 와인 모두 먹거나 써서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아이스크림과 과일 와인은 먹어버리면 되고 휴지는 쓰다 보면 결국 사라지는 소모품이다.



누군가에겐 캔들, 캔들워머같이 오랫동안 두고 보고 간직할 만한 것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날만한 선물이 좋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아니었다. 서로의 마음을 조금 확인할 만한 그런 가벼운 선물 그리고 이렇게 쓰다 보면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그런 것들이 나에겐 최적의 선물이었다. 이번에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하여 늘 센스 있는 선물을 고민하던 나는 이번에 정답을 찾았다. 앞으로 선물을 살 때는 써서 없어지거나, 먹어서 사라지는 선물을 사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렇게 과한 선물보다적당한 선에서의 선물이 나은 것 같다. 친구 집에 방문하면서 이렇게나 많은 선물을 사 온 친구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우선이긴 하지만, 부담스러운 마음도 든다. '뭘 이렇게나 많이!' 꼭 선물을 사 와야 했다면 아이스크림 케이크, 휴지 한통이 충분했을 텐데 나에겐 조금 과한 선물인 것 같다. 차라리 다음번엔 아주 가벼운 것이라도 먼저 말해줄까 한다. 나는 실용적인 선물을 해주려고 먼저 물어보면서, 정작 똑같이 묻는 친구의 말에 대답도 안 해주다니 되려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즐거운 연휴를 보냈다. 제주살이의 또 다른 즐거움, 여행 온 친구와 시간 내어 만나기. 그 시간 참 행복했다.








이전 14화 매너 온도 48.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