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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l 31. 2022

쇼핑 제로 일기

소비단식, 7월

드디어 7월이 돼서야 쇼핑 욕구가 사라졌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실 제주에 와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살아보는 것이 나의 챌린지였다. 그러나 매달 갖고 싶은 것이 어찌나 많은지 실천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달은 그릇이 깨져도 그릇을 사지 않았고, 컵도 사지 않았으며, 옷 마저 더 이상 사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그 결과 이번 달 가계부를 확인해보니 7월에는 쇼핑으로 인한 지출이 0이었다. 엄청난 일이다.



오늘은 7월의 마지막 날이니 오늘만 잘 견디면 된다. 제주도에 온 지 9개월 만에 나는 드디어 소비를 멈추었다. 소비를 멈추려고 한건 이미 몇 달 전부터 계획한 것인데 이제야 실천이라니, 그러나 이제라도 조금 진행 있어서 뿌듯하다.



그래도 욕구는 아직 멈춰지지 않았나 보다(너무도 당연하지). 어제 마트에 갔는데 시간이 좀 넉넉했다. 몸은 자연스럽게 쇼핑하는 곳으로 향했다. 신발매장에 들어갔다. 쇼핑을 쉴 새라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기운이 역력했다. 역시 시간이 많거나, 쇼핑센터에 가는 행동은 소비 절제에 치명적이다.








요즘 내가 자주 신고 다니는 신발은 크록스인데, 검은색의 그것은 좀 아줌마스럽다. 아줌마가 아줌마스러운 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는데 원래 아줌마일수록 아줌마 아이템을 장착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신발은 벌써 산지 4년이 넘었다. 고무가 조금씩 닳고 있긴 한데 아마 다 사라지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은 걸릴 것 같고 당연하게 그때까지 거뜬하게 신을 듯싶다. 역시 물건을 살 때 신중해야 한다, 이렇게 오래 신발을 신어야 한다니. 그러나 문제는 비 오는 날 너무 미끄럽다. 미끄러워서 뇌진탕에 걸릴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뭐 다행히 아직 살아있다.




아무튼 신발매장에 갔더니 나의 까만 크록스와 다르게 세련된 신발이 고작 만원이었다. 무려 반값보다 더 세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진짜 싸다' 저렴한 가격에 혹해 당장 신어봤다. 그런데 굽이 많이 높았다. 저런 류의 신발을 몇 번 사봤는데, 굽이 있는 것은 좋은데 너무 높으면 절대 안 신게 되더라. 이제 예쁜 쓰레기를 살 필요는 없다. 내 발은 소중하니까. 신발 쇼핑 대략 20년 차에 깨달음을 얻었다.



휴, 다행이다! 특히 저렴하다고 신지도 못할 신발을 사지 않는 것은 최고로 잘한 일이다.









그 와중에 점원이 혼자 바쁘다. 분명 내가 들어올 때만 해도 멍하니 서 있던 거 같은데 내가 들어오자마자 신발을 다 꺼내서 정리하고 난리다. 점원이 신발을 꺼내서 정리하는데 그때 그 점원의 손에 있던 신발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어머 저건 사야 해!




너무도 유명한 쇼핑 짤





점원에게 다가갔다. 점원 손에 들린 신발을 가리키며 "베이지 컬러, 230 사이즈가 있나요?" 하고 물어봤다. 점원은 손에 있던 신발의 치수를 확인하더니. 이것이 그 사이즈라고 말했다. 와! 마치 신데렐라의 구두 같지 않는가? 



그 신발은 사실, 일전에 칠성통에 있는 신발 매장에 가서 직원에게 물어가며 찾았던 신발이다. 그때 그곳의 점원이 그 신발은 분명 단종이라고 그랬다. 근데 여기서는 왜 팔고 있지?



 

신발을 신어보았다. 착 감기는 그 느낌. 아줌마 신발 같지 않는 자태, 역시 새 신발답게 찰떡같이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하지? 살까... 말까? 고민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집의 신발장에 들어있는 다른 여름 신발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소비를 줄이며 생긴 현상이다. 옷을 사려면 옷장에 걸린 옷이 쫙 생각나고, 액세서리를 사려면 내가 가진 액세서리가 다 생각나고, 정말 이것을 사도 괜찮아? 꼭 사야겠어?라는 마음이 떠오르는 것이다. 다시 고민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갖고 싶었던 신발이고, 마침 사이즈도 찰떡이고, 나에게도 너무 잘 어울리지만, 나는 충분히 고려해 봐야 했다.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신발 매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봤던 '마스노 순묘' 책 '일상을 심플하게' 책에 그런 말이 쓰여있었다. 물건을 사기 전에 3번 재고하라. 그래서 살 수가 없었다. 오늘은 이 신발을 본 첫날이다.



내가 책을 열심히 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따르고 실천을 하기 위해서다. 더 나은 삶을 만들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 내가 되기 위해 서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따라야만 했다.




여전히 나의 쇼핑 충동 욕구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그것을 그냥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며 내가 가진 물건을 다시 떠올려보게 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미니멀 라이프 책에서 배운 대로 '3번 재고하기'를 실천했다.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겨우 7월 쇼핑을 멈추었지만 8월, 9월... 남은 올해 기간 동안 조금 더 많이 변화되길 기대해 본다.




 


메인 사진 : https://pin.it/19LENRZ 

본문 사진 : https://pin.it/5ySbT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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