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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ug 29. 2022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소비 단식, 8월


요즘 즐겨봤던 드라마가 있는데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라는 일본 드라마다. 극단적인 미니멀 리스트의 6회 분량의 드라마인데, 텅 빈 거실과 찬장, 아무것도 올려지지 않은 부엌, 게다가 옷과 가방이 몇 가지 없는 옷장, 침대와 화장대뿐인 안방... 모든 게 다 워너비다.



주인공 집도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일본 지역 특성상 일어났던 대지진으로 인해 본래 집에 문제가 생기면서, 물건으로 가득 찼던 원래 집에서 새로운 집을 지어나가면서 변화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주인공은 그 복잡했던 이전 집부터 버리기 마스터이기는 하다.



종종 아니 늘 저렇게 텅 빈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놀러 가면 딱 필요한 것만 준비된 그런 깨끗한 펜션이나 호텔 같은 느낌이랄까. 드라마 속 텅 빈 집을 보다가 눈을 들어 우리 집을 둘러보면 숨이 막힌다. 어쩜 뭐가 이렇게 많은 거지?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집안 곳곳을 다니며 버릴 것 들을 집어넣는다. 아이 물건이 많아서 쉽게 버릴 것은 없지만 눈을 크게 뜨고 찾으면 또 찾아낼 수 있기도 하다. 그동안 버리고 싶었는데 고민되었던 물건을 버릴 수 있는 좋은 때이기도 하다. 쓰레기봉투에  간신히 찾아낸 버릴 물건을 넣으며 생각한다. '절대 더 이상 사지 말아야지'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드라마 거실 풍경


가진 물건 대부분을 버리는, 버리기 마스터 주인공






7월부터 소비를 끊었다. 원래 제주 오면 시작하려던 소비 단식을 9개월이나 지나서야 드디어 시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딱히 뭘 많이 산 것은 아니었는데 거의 매달 옷을 한벌씩 샀고(충격) 그리고 나의 마지막 가방이라 절대 믿고 싶은 그 문제 많은 가방(불량으로 2번이나 교환)으로 마지막 소비가 끝났다. 역시 나에겐 가방과 옷이 문제다. 아, 액세서리도 있구나!  



어쨌든 오늘은 8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이제 이틀만 참으면 된다.










와... 근데 소비 단식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진짜 어려웠다. 시작이 이렇게나 오래 걸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나 어렵게 지켜내야 하는 것도 깨달았다. 거의 나에겐 인간승리 단계이다. 소비 단식을 위해 지금은 아이쇼핑도 끊은 상태다. 일단 새로운 것을 구경하다 보면 갖고 싶고 그러면 사게 되는 수순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금 극단적이긴 한데 쇼핑할 수 있는 곳을 가지 않으면 저절로 쇼핑은 끊어질 수밖에 없다.  



원래 요가 시작 초반에 옷을 조금 더 사고 싶어서 들썩거렸으나 또 그때 참아냈더니 가진 옷 두 벌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일주일 두 번 밖에 수업을 듣지 않아 두 벌이면 충분하다. 평소 집에서 요가 수련을 할 때는 요가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2년 전에 사놓았던 운동용 레깅스를 이제야 입게 되었다. 그때 그 레깅스를 입고 한강에서 자전거를 탄다고, 아니면 달리기를 하겠다고 샀던 것인데 결국  한 두 번 입고는 방치되어 있었다. 또 버리지는 못하고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잘 사용하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게다가 원 플러스 원 레깅스라 그중에 하나를 엄마에게 주었는데, 엄마도 그 레깅스도 입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받아와서 입는 중이다. 과거의 소비를 후회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이렇게나 사용했기에 망정이지, 사실 필요 없었던 소비였던 것은 확실다.



문제는 아직 8월인데 벌써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게 가을이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계절이 바뀌면 꼭, 꼭 새로운 옷에 눈길이 간다. 작년 그 계절엔 뭐를 입었나 전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다. 이 정도면 심각한 건망증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인스타에 올려놓은 작년 사진을 확인한다. 그리고 2층 가득 찬 옷장을 열어 가진 옷을 모조리 훑어보며 올해 가을에 입을 옷을 체크한다. 그렇게 옷 쇼핑을 막아본다.  



분명 내 수중에 필요한 것이 전혀 없는데 여전히 뭐가 이렇게 갖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제발 이대로 12월까지라도 소비 단식을 잘 지켜낸다면 좋겠다.









이제 생활 살림도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더 이상 사들이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 쌀 씻는 볼이 부서졌다. 쌀을 씻어서 담가놓고 싱크대 쪽에 놨는데 자꾸만 그곳에 물이 흥건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보니 쌀 씻는 볼의 바닥 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대체 이게 왜 부서졌는지 모르겠다. 당장 마트에 가서 살 수 있는 것인데 아직 사지 않고 있다. 사실 쌀 씻는 볼은 딱 한 가지 쌀이 버려지지 않게 물을 버려주는 그 부분이 있어서 편했는데, 어느 순간 그 부분에 쌀이 껴서 안 빠지는 것이다. 대체 이 쌀 그릇은 뭐야?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갑자기 부서져 버려서, 버릴 수밖에 없으니 잘 된 노릇이다. 그래서 현재는 집에 있는 볼로 대체해서 쌀을 씻고 있는데, 전혀 문제없다. 앞으로도 사지 않을 생각이다. 실은 이 그릇도 내가 산 것은 아니고 어머님께서 사다준 것이다.



반면에 집에 아주 잘 쓰던 볶음 주걱이 부서졌다. 어느 날 밖에서 들리는 동물? 곤충? 소리에, 겁을 주려고 그 주걱으로 싱크대를 쿵쿵 쳤는데, 곧바로 부서져 버렸다. 나무 주걱이 이렇게 쉽게 부서질 일일까? 어찌 됐든 볶음 요리에 늘 사용하던 주걱이라 없으니 불편하긴 하다. 곧바로 새로운 주걱을 하나 사서 사용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일단 지금은 원래 있던 나무 뒤집개를 사용해서 볶음 요리를 하는 중이다. 그런데 뒤집개로 요리를 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 의미는 볶음 주걱을 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잘됐다.











쇼핑 단식에 이어 이제는 사람도 만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제주에서 만난 유일한 인연을 끊어냈다. 애초에 누굴 만날 생각도 없이 온 곳이고, 노력하지 않았던 관계였기 때문에 그게 쉬웠을지 모른다. 만날 때마다 편하지 않고,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것, 만나고 나서 돌아왔을 때 개운하지 않고 불편했던 점이 이유였다. 아무리 내가 이곳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남아있는 사람마저 끊어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러나 나에게 물건보다 더 스트레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괜찮다. 사람 단식. 어차피 친한 친구들은 다 카톡에 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들이 한 번씩 이곳에 들렀다 간다. 어차피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는 오래된 친구 외에 가볍게 스치듯 아는 사람은 나에겐 필요하지 않다. 지금은 요가센터에 다니며 선생님을 만나며 수업을 듣는 것으로 그리고 그 요가 수업 내에 함께 운동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으로(교감, 교류 없음)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 늘 내게는 아이와 남편이 존재한다. 종종 음식을 나눠먹는 앞집 이웃들로 더욱 충분하다 느낀다.  











소비 단식을 하며 지내다 보니 살아가는데 꼭, 반드시 필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물건이 조금 사라진다고 해도 이미 집에는 대체할만한 물건으로 가득하다. 성장하고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몇 가지와 매일 건강하게 섭취해야 할 식재료만 소비한다면 앞으로도 잘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으로도 이미 우린 충분히 넘치도록 소비 중이다.



물론 다시 쇼핑이 하고 싶어서 밤이면 물욕이 여전히 샘솟아서 자제하느라, 힘들고 피곤하긴 하지만 분명 어느 날이 오면 이것조차 사라지고 끊어질 테니 조금 더 자연스럽게 지내고 싶다. 소비 단식, 이번 달도 잘 지켜냈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드라마 속 찬장 풍경 - 나의 워너비






메인, 본문 사진 : <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드라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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