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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02. 2021

컵을 좋아하나요?

mug & cup 

밤 열두 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이미 저녁에 설거지를 한번 끝냈는데 방금 다시 설거지를 해야 했다. 낮에 책을 보며, 컴퓨터를 하며 사용했던 컵, 저녁 먹을 때 사용했던 컵, 그리고 아이를 재우고 난 후 사용했던 컵, 그리고 아이가 쓴 컵까지 모두 모으니 10개가 훌쩍 넘는 컵이 싱크대에 모아졌다. 



원래 우리 집 설거지는 남편 담당인데, 컵을 제일 먼저 세척해야 하는 룰을 모른다. 왜 컵을 먼저 닦아야 하냐면 다른 것들을 먼저 세척하고 컵을 닦으면 컵에서 개구리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물 비린내 같은 것이 그 컵에 절대 물을 못 마시게 하는 매직 같은 냄새라서, 나는 꼭 설거지 시작에 컵부터 세척하는데 남편은 그것까진 신경 쓰지는 못한다. 설거지 담당을 하던 초반에 말해봤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아서 그냥 내버려 두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컵을 사용하기 전에 한번 더 헹궈서 사용하는 편이다. (웬 물 낭비래)



컵을 좋아한다. 카페에 가서 마음에 드는 컵을 보면 음료를 다 마시고 무슨 컵인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고, 왜인지 카페에서 사용했던 예쁜 찻잔은 늘 맘에 들어서 자꾸만 검색을 해서 하나씩 들여놓게 된다. 아, 언젠가는 티팟과 찻잔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어서 아주 여리여리한 것들을 사모으기도 하고, tea for one이라고 찻잔과 티팟이 함께 있는 것들을 사기도 했다. 나의 주방용품 중에 절반은 아직 미국에 놓고 온 것들이 있는데, 그곳에도 컵이 참 많다. 언젠간 영국을 여행하고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는데 찻잔을 두 개나 사서 가방에 안전하게 모시고 비행기를 타고 가느라, 그 과정이 너무도 불편해서 눈물 지은 일이 있는데 여전히 여행에서 컵이 갖고 싶고, 사고 싶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어쩔 수가 없다. 



작년 생일, 동생이 무슨 생일선물이 갖고 싶냐는 말에 나는 또 커다란 라테용 컵을 2개를 선물 받았다. 거기서 끝냈어야 하는데 이번에 이사 오기 직전 나는 커트러리 몇 개를 사러 주방용품 매장에 갔었다. 그런데 거기서 또 컵을 보고 1층과 2층을 오가며 안절부절,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음 주가 이사인데!!! 하며 엄청나게 고민을 하다 결국엔 사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정말 오랫동안 참았다 산 것이었다.(그래 봤자 10개월) 이사를 앞두고 엄청난 물건을 정리하던 내가 컵을 하나 산 것에 대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나란 녀석은 쇼핑에 지지 않는구나. 



결과적으로 그 컵은 매일 오전에 사용 중이다. 사용하던 다른 컵들은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이 컵은 신상답게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다. 역시나 사용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다른 컵보다 조금 비싼 가격에 샀지만 이렇게 자주 사용하니 오히려 더 저렴한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컵을 1개만 샀다. 어차피 나만 사용하는 컵일 테니 짝이 있는 것이 큰 소용이 없다. 누가 사용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같은 물건을 2개씩 사는 것도 낭비다.  이렇게 자기 위로 중이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것이 컵이다. 찻잔, 머그 가릴 것이 없다. 그래서 매번 때에 맞춰 신상품이 나오는 스타벅스에 가면 그렇게 고민을 한다. 새롭게 나온 예쁜 컵들을 보면 너무나 갖고 싶어 진다. 또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사 오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새롭게 론칭하는 날 스타벅스에 가지 않게 되었다. 보지 않으면 갖고 싶지 않은 진리를 나는 안다. 이번에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컵 구매도 그렇게 참아냈다. (나의 엄청난 인내심, 눈물이 나는구나.)



그런데 그렇게 많은 컵을 뒤로하고 나의 데일리 컵은 커피회사에서 나온 사은품 컵이다. 원래 맥심에서 받은 노란 컵 2개를 데일리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 개가 깨지며 갈 곳을 잃었고 작은 사이즈라 종종 물컵으로 애용하고 있었다. 그 후에 카누에서 받은 컵은 베이지, 모카, 카키색의 3가지인데, 내가 이것을 사려고 카누 박스를 3개나 샀다. 집에서 달달한 커피는 잘 안 마시는데 또 이 컵이 왜 이렇게 갖고 싶은 건지 그것을 다 마시다가 살이 찔 뻔했다. 결과적으로 너무도 내 스타일의 컬러와 사이즈의 컵이라, 물컵으로도 특히 믹스커피 1개에서 2개 타서 마시기 딱인 사이즈라 제일 많이 이용한다.  



사은품으로 받은 컵 3종 세트 



우리는 또 맥주에 같이 껴주는 유리컵도 너무 좋아해서 늘 모은다. 시중에 파는 맥주회사에서 컵들은 거의 하나씩 다 있는 것 같다. 이사할 때 마지막에 당근 마켓에 올려 처분하려고 했으나.. 결국 안 팔려서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보통 모으기만 하고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맥주컵인데 그중에도 자주 이용하는 컵이 있긴 하다. 자주 사용하는 컵은 tiger 맥주회사에서 나온 미니 사이즈용 투명 컵인데, 맥주를 조금씨 따라서 한잔씩 마시기도 딱이고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커다란 맥주를 하나 꺼내서 사이좋게 나눠마시기도 딱이라 자주 이용한다. 왠지 모르게 아이는 여기에 딸기주스를 따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컵을 좋아해서 그런지, 아이도 예쁜 컵을 좋아한다. 아이가 매일 사용하는 컵이 4가지나 되는데, 그중에 2가지는 스테인리스 컵이라 따뜻한 우유를 따르고, 하나는 투명한데 안에 액체가 있는 공주 그림의 컵이라 물을 따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컵받침도 좋아한다. 상대적으로 깨지기 쉬운 컵에 비해 여행 갔을 때 사 오기 좋은 것은 컵받침이었다. 그것을 티코스터라고 부르는데 나는 한참을 모으고 또 모았다. 하지만 결국 제일 자주 사용하는 것은 라탄으로 짜인 티 코스터이다. 컵을 이용할 때마다 그 위에 올려놓는다. 이 티 코스터도 한 개만 구매했는데 친구가 한 개만 있는 티 코스터를 보더니 자기도 사은품으로 받은 라탄 코스터가 1개 있다며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라탄 코스터는 2개가 되었다. 이 티 코스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쩌면 물건은 제대로 된, 취향에 맞는 한 가지를 사서 아주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이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12월이다. 그 첫날 나는 빨간 머그컵을 꺼냈다. 크리스마스에 주로 사용하는 스타벅스 빨간 컵과, 눈사람 컵, 산타할아버지 컵을 꺼내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이다. 때에 맞는 컵을 사용하면 그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마도 컵을 좋아하는 이유는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이렇게 추워지는 계절이면 차를 마시기 때문이다. 날이 추워지며 배도라지 생강차와 자몽차까지 구매해 놓았더니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차를 더 열심히 마신다. 그 덕분에 컵을 더 애용하게 된다. 역시 나는 컵이 좋다.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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