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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ug 24. 2023

원래 방학은 할머니댁에서 보내는 거야.

서울에서 제주로 돌아오는 길에 친정에 들렀다. 아이 낳고는 꼬박꼬박 한 달에 한 번씩 들러서 쉬고 올라오던 친정이었는데... 제주에 살게 된 이후로는 육지에 다니러 왔다가 쫓기듯 하루, 이틀 겨우 들렀다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에는  며칠을 여유 두고 다니러 갔다. 그래봤자 고작 나흘... 그런데 그렇게 친정에서 알찬 나흘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태풍이 들이닥쳤다. 결국 태풍이 오는 바람에 제주 가는 비행기가 결항되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하필 떠나는 날 태풍이 불어 닥칠 건 뭐람... 처음에는 한참을 비워둔 제주 집이 걱정되긴 했는데, 그래도 친정에 며칠 더 머무를 수 있어서 좋긴 했다. 학교에 보낸 이후로 친정에 와서 마음 놓고 며칠 쉬어본 게 얼마만인지.... 태풍 덕분에 나는 좋았다. 특히나 밤늦도록 자지 않고 부모님과 놀고 있는 아이 모습을 보니 며칠 더 지내고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이라 아이는 학교 다닐 때와 달리 잠자는 시간이 엄청 늦어졌는데 대신 친정에 머무는 동안에는 할머니가 동화책을 읽어주시고 아이를 재워주셨다.



오늘도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셨는데, 점점 밤은 깊어가는데... 할머니와 대화소리가 끊이질 않는 것이 잘 생각이 없나 보다. '그래 방학이니까' 방에서 작게 들리는 아이랑 할머니의 대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주 오래전 내가 아이만 하던 시절에 조부모님 댁에서 방학을 보내던 시절 떠올랐다.





주위에 온통 논밭이던 할머니댁







방학이 되면 일하시는 아빠는 그곳에 남아계시고 엄마와 오빠와 함께 기차를 타고 조부모님 댁에 가곤 했다. 그러다 아빠와 엄마의 고향 가까이로 이사를 오게 되며 버스를 타고 다닐 때도 있었고, 나중에는 엄마가 운전을 하게 되며 그때부터는 자동차로 그곳을 방문했다.



친가와 외가는 차로 20분 정도 거리였다. 두 집이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그곳에 가면 꼭 두 군데를 모두 들렀다 와야 했다. 어느 한 곳에 편중되지 않은 공평한 방문이었다.



할머니는 큰 아버지네가 모시고 함께 사셨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친척 오빠들이 있었다. 우리와 꼭 한 살씩 차이나는 오빠들과 우리는 늘 함께 어울렸다. 그런데 우리 오빠와 친척 오빠 두 명, 그러니까 오빠 세명은 나와 노는 것을 몹시도 귀찮아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따라다녔다.



방학에 오빠들을 만나면 시골 동네 곳곳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할머니집 앞에는 작은 천이 흘렀는데 그 위를 아주 부실한 철제로 간이로 만든 다리를 그 옆은 커다란 돌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었다. 오빠들은 성큼성큼 그곳을 잘 건너가는데 나는 가는 것이 너무도 어렵고 무서웠다. 그래도 오빠들은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건너갔고, 나는 매번 느릿느릿 어떻게든 함께 놀고자 하는 마음에 꾹 참고 조심히 걸었던 기억이 있다.



둑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기찻길이 있었는데 기차를 구경하러도 자주 갔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를 보고 있노라면 바람이 일어 주위에 있던 흙먼지가 날렸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종종 기찻길을 건너 반대쪽으로 넘어갈 때도 있었는데 그 짧은 거리를 걷는데도 가끔 무서웠다. '기차가 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



할머니댁에 가면 오빠들과 모험을 떠났는데 우리가 밖에 나가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어른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밥을 먹고 나가서 밥 먹기 전에는 꼬박꼬박 들어갔으니까. 그러나 아직도 건강히 살아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할머니네 집에는 평상이 있었다. 나의 다섯 고모 중에 첫째 고모의 딸이 그때 벌써 대학생이었는데(우리는 초등학생) 언니는 멀리 살고 있어 아주 가끔 할머니 댁에 왔다. 언니가 오면 평상에 모두 둘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하필 그 무서운 얘기를 들은 후에는 잠을 자는 시간이라, 자기 전 그 이야기를 듣고는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워 매번 곤욕스러웠다.







외할머니댁에는 우리와 6살 어린 동생뿐이었다. 그러니까 동생이 우리와 놀 수 있기 전까지는 외할머니댁에 가도 나와 오빠뿐이었다. 그래서 삼촌과 이모에게 엄청 예쁨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주로 삼촌들을 따라다니며 놀았다. 특히 우리가 열 살이 되도록 장가를 안 간 큰삼촌이 있어서 우리랑 친구처럼 놀아주셨다.



가장 기억나는 것이 개구리를 구워 뒷다리를 먹었던 일이다. 아마도 이렇게 기억이 선명한 것은 어린 나이에도 조금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그때 삼촌이 개구리를 잡아 구워주셨던 것 같은데 사랑방 아래 불타는 아궁이에 개구리를 통째로 구웠다(진짜 무섭군) 새카맣게 변한 개구리에서 다리를 하나 찢어주길래 먹어봤는데 쫄깃거리며 맛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아마도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개구리 뒷다리를 먹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 내 아이에게 같은 일을 한다면  날 어딘가로 신고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훗날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남편에게도 그 얘길 해주었더니 지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도 물론 개구리를 먹어봤다는 엄마에게 깜짝 놀랄 테지!



방학답게 아침이 되건 말건 곯아떨어져 자다가 밥 짓다가 청소하러 온 할머니의 큰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데 할머니는 우리가 늦잠 자는 꼴을 못 보셨다. 그때의 할머니는 조금 무서웠다.



늦은 오후가 되면 할머니는 밭에 가셨다. 그러면 우리끼리 집에 있다가 할머니를 찾아 나섰다. 할머니밭에는 다양한 야채들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할머니가 한참 밭일을 할 때면 우리는 너무 심심했다. 저녁이면 그것들로 저녁을 지어주셨다. 호박잎, 된장국, 오이, 가지...  야채를 끔찍이도 싫어하던 시절인데 맛이 있었을까? 그래도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맛은 늘 한결같았다.








할머니 집 근처에는 마트라고는커녕 온밭 논밭만 있었다. 유일하게 마을 들어오는 입구에 초등학교가 있었고(엄마, 삼촌들이 모두 졸업한) 그 옆에 문구점 겸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때때로 우린 그 길을 걷고 또 걸어서(정말 멀었다) 가게로 갔다. 어렸던 우리는 그곳이 너무 멀어서 매번 갈까 말까 고민했었다.



나는 이제 기억이 안 나는데 외할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우리를 자전거에 태워 그 구멍가게에 데려다주셨다고 했다. 나에겐 외할아버지의 기억은 거의 없다. 8살 때인가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병원에 다니던 시절, 할아버지가 운동 겸 산책을 하실 때 늘 따라다녔다. 굳어버린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함께 산책하던 것이 나의 유일한 기억이다.



방학이면  갔던 할머니댁도 이제 추억이다. 현재 살아계신 조부모님은 외할머니 한분뿐이다. 할아버지들은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재작년에 내가 제주에 오자마자 돌아가셨다. 그래서 남아계신 분은 이제 외할머니 한 분뿐이다. 올여름 아이의 방학에 친정에 갔다가 외할머니 댁에 다녀왔다. 할머니께서 추어탕이 드시고 싶다길래 (나는 잘 못 먹지만) 함께 추어탕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외할머니는 이제 나이가 아주 많으시다. 그래서 난 걱정이다. 더 이상 내게는 방학에 갈 할머니 댁이 없어질까 봐... 부모님이 여행을 가실 때면, 명절이면 , 방학이면, 주말이면 방문했던 그곳을 이제 더 이상 못 가게 될까 봐 무섭다.








내가 어릴 적 할머니댁은 모두 시골이었다. 그래서 정말 시골에서 할 법한 일들은 모두 다 해볼 수 었다. 그러나 요즘 내 아이의 조부모님 댁은 모두 도시이다. 서울의 한가운데, 지방 도시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집 앞엔 대형 마트와 빌딩이 가까이에는 백화점도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댁에서 마트만 가려도 천리는 걸어야 했는데(체감상 그 정도로 멀었다) 아이는 문 앞을 나서면 편의점, 마트, 백화점이 즐비하다.



분명 엄마와 아이가 방학에 지냈던 시골과 도시의 환경은 다르지만, 아이가 조부모님 댁에 방문해서 즐겁게 노는 일은 같다. 내가 방학이면 신나게 놀았던 것을 아이도 똑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할머니 댁에 자주 가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것처럼, 앞으로 아이도 방학마다 조부모님 댁에서 많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해야겠다. 지나고 보니 어린 시절은 잠깐이다.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어 풍요로운 기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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