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아빠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엄마가 무슨 과일을 좋아하는지 관심이 없었는데, 점점 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부러라도 하나둘씩 관심 갖고 알아가고 있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돼지 머리 고기라고 했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복숭아라고 했다.
복숭아...
사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엄마가 무슨 과일을 좋아하는지... 여름만 되면 엄마는 복숭아 노래를 부르셨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던 일. 사실 나에겐 복숭아가 특별하지 않았는데 엄마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복숭아가 좋아진 사람이다.
이번 여름에도 친정집에 들렀더니 당연히 복숭아를 먹게 되었다. 그렇게 복숭아를 먹고 있다 보니 진짜 달고 맛있는 복숭아가 먹고 싶어졌다. "고모네 복숭아 먹고 싶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에겐 고모가 다섯이다. 그중에 두 분의 고모가 농사를 지으신다. 두 분 중에 막내고모네는 복숭아 농사를 지으신다. 그런데 복숭아가 얼마나 달고 맛있냐면 평생을 먹은 복숭아보다 고모네 복숭아 한 알이 더 달고 맛있을 정도이다.
사실 내 입은 그리 고급이 아니라 아무 복숭아를 먹어도 괜찮았는데 계속 고모네 복숭아를 먹다 보니 이제 다른 복숭아는 사 먹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실제로 올여름에 제주의 농협 마트에서 복숭아를 사다 먹었는데, 분명 복숭아 향이 솔솔 나길래 맛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샀는데... 먹어보니 복숭아 맛이 살짝 가미된 모양만 복숭아였다. 충격이었다. 평소에도 의심스러운 마음에 다른 복숭아를 잘 사 먹지 못하는데 또 당했다. 이러니 내가 다른 복숭아를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
여름이면 늘 먹었던 복숭아가 내 기억 속 존재로 자리 잡은 것은 나의 첫 직장에서이다. 부모님은 딸을 잘 부탁한다고 여름이 되자 나의 직장에 고모네 복숭아를 보내주셨다. 나는 그것을 잘 닦아, 골고루 나눠먹었는데 세상에나 다들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는 처음 먹어봤다며 그곳의 동료와 상사 모두가 고모네 복숭아를 주문했다. 내가 그 직장에 있는 3년 여름동안 늘 복숭아 주문 담당이었다. 워낙 유명하고 맛있는 복숭아라 나의 직장동료들이 아니었어도 늘 끊임없는 주문으로 바빴을 텐데, 고모는 내 것도 한 상자씩 꼭 챙겨 넣어 보내주셨다. 타지생활에 그 복숭아를 참 맛있게 먹었었는데...
그 이후로 이직, 해외이사, 출산 등등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여름에 부모님 집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 작년에는 육지에 못 가서 엄마가 고모네 복숭아를 주문해 제주로 보내주셨었다. 그 복숭아 두 상자를 여름 내내 아끼고 아끼며 먹었다.
올해 여름엔 육지에 갈 수 있었다. 친정에 갔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고모네 복숭아 농장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필 태풍을 앞두고 다녀왔다. 고모는 내일 태풍 북상으로 오늘 제일 많은 복숭아를 수확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복숭아 포장과 주문, 밀려드는 주문으로 택배배송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고모의 일손이 부족한 듯하여 잠시 일을 도와드렸다. 종이 포장되어 수확된 복숭아가 한쪽에 가득했다. 아마도 복숭아 알알히 감쌌던 종이 포장을 벗기는 간단한 일이었다. 엄마는 손이 빨라 휙휙 종이 포장을 벗기는데 나는 복숭아가 다칠까 봐 조심조심 벗겼다.
종이 껍질을 벗겨야 하는 복숭아 상자
종이포장을 벗길 때마다 두근거렸다. 그러나 그 두근거림은 설렘이 아니라 걱정이 될 때가 더 많았다. 복숭아 종이 포장 안에는 모두 깨끗하고 예쁘게 잘 익은 복숭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처 나고 썩은 복숭아가 더 자주 나왔기 때문이었다. 우린 그것들을 파치라고 불렀다. 차라리 많이 썩거나 상한 거라면 어쩔 수 없을 텐데 아주 작은 상처도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까웠다.
고모네 복숭아 가게에 잠깐 머물며 지켜본 결과, 온전한 복숭아보다 파치가 정말 많이 나왔다. 분명 종이 포장으로 보호해 놨음에도 불구하고 부분 부분 썩어있거나 상한 것들이 꽤 많았다.
복숭아를 사 먹는 소비자 입장에서 상품성이 없는 복숭아는 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만 상처나 있어도 그 복숭아는 팔지 못하고 그냥 나눠줘야 하는 것이 돼버렸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거의 절반이니 너무 아까웠다. 만약 내가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면 난 매일 울고만 있었을 것 같았다. 팔 수 있는 복숭아보다 다치고 썩은 것들이 너무도 많아 안타까워서...
판매하는 것보다 파치가 더 많아 ㅠㅠ
게다가 종이 포장을 갓 벗긴 복숭아에는 털이 많았다. 마치 작고 투명한 가시 같았다. 나는 태어난 이후로 많은 복숭아를 먹어보았지만 복숭아의 털에 찔려보긴 처음이었다. 복숭아를 감싸고 있던 몇십 개의 종이 포장을 벗기는 동안 내 손에 하나씩 콕콕 박혀버렸다. 그날 하루 종일 박힌 가시로 손이 불편했다. 나는 겨우 이번에 처음 한번, 하루 경험한 것인데 고모네는 이것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니(물론 장갑은 끼셨겠지만) 그 후로는 고모네서 가져온 복숭아를 먹으며 맘이 편하지 않았다.
내 평생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 도시에 사는 거의 모든 친구들이 그렇지 않을까? 벌써 고모는 몇 해를 아니 인생의 절반이 넘게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런데 복숭아가 출하되는 여름의 날씨는 기후 변화로 나날이 더 더워지는 듯하니 분명 점점 더 고될 것이다. 여름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 그때뿐이다. 낮엔 농사를 짓고 싶어도 찌는 태양에 어찌할 수가 없다. 원래는 나도 농사라느니, 재배라던지, 그런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요새 주택에 살면서 길게 자란 잔디를 관리하고, 잡초를 뽑다 보니 농사짓는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그러나 내가 알다 하더라도 백분의 일 정도는 알까 싶지만 말이다.
"고모네 뭐 사갈까?" 오랜만에 고모를 뵈러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돌아가신 할머니가 예전에 엄마에게 그랬다고 했다. '복숭아 철에는 바빠서 음식을 먹을 시간도 없다고, 그러니 그곳에 갈 때 금방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좀 사다 주라고...'
할머니는 아셨을까. 딸이 종일 복숭아 밭에 일하는 고단함을... 아마 할머니는 그 복숭아 파치마저 아까워 못 드시지 않았을까.
앞으로 두고두고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고모의 피와 땀이 생각날 것 같다. 언젠가 여름이 되면 고모네로 가서 오랫동안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꼭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