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자수 놓기

나의 취향 1

by Blair

제주에 와서 다시 취미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 자수'이다. 원래는 이곳에서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볼까 했는데, 코로나 현시점에 무엇을 새롭게 배우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에 배웠던 '프랑스 자수'를 다시 시작했다. 밤마다 한 땀 한 땀 자수 놓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7년 전쯤인가, 미국에 있을 때 지금처럼 아주 고요했던 밤들이 있었다. 지금은 아이가 있어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늘었지만 그때는 카페에 가고, 책을 읽고, 요리만 하면 되던 한량 같은 시절이었다. 지금으로 상상도 안 되는 날들이었다. 아무튼 그때 프랑스 자수 유행의 시작이었던 때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그것에 필이 꽂혀버렸다.



그래서 미국에서 프랑스 자수를 시작해 보려고 다양한 미술재료를 파는 'michales' 매장에 가봤다. 그곳엔 실이 색색깔로 가득 팔길래, 실도 가득 사 오고(십자수 실), 바늘도, 자수 틀도 샀는데, 막상 인터넷으로 프랑스 자수 강의를 봐도 도통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었다. 그래서 아주 원초적인 자수를 놓았다. 앞서 나가는 마음은 달리 배운 적이 없으니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잠시 한국에 왔는데 그때 마침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자수 선생님 수업이 있길래 과감하게 등록했다. 꽤 비싼 수업료였는데, 거기에 대학원에 다니던 때라 한창 공부 중이었는데... 무엇보다 프랑스 자수를 속성으로, 한국에 있을 때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이것을 배워 미국에 다시 가면 나는 프랑스 자수 전문가가 되어야지! 하는 굳은 결의가 있었다고나 할까. 이미 마음은 프랑스 자수 고급반이었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 자수에 빠져들었다. 일주일에 하루, 몇 시간 정도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대학원 공부 외에는 일주일 동안 바느질을 했다. 초급, 중급, 고급반까지 마쳤다. 그때 그 열정을 생각하면 지금 프랑스 자수 선생님이 되었어야 하는데... 아무튼 그 정도로 열의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



비싼 수업료와 학기 중에 공부도 제쳐두고(?) 했던 그 프랑스 자수. 아쉽게도 취미 부자인 나에게 그저 취미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다음 해인가 아이를 낳았고 프랑스 자수와 멀어졌다. 좀처럼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영원히 멀어질뻔했다.








제주에 왔는데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 시간에 비해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를 재우고 난 이후의 시간이 점점 무용지물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취미활동을 하나 추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원래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악기가 있었다. 그런데 배우려니 먼저 악기를 사야 하고, 악기 샵에 갔더니 마음에 드는 악기는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리고 악기를 배우려면 개인 선생님을 찾던지, 학원을 가야 하는데 코로나는 심해지고... 이렇게 악기수업을 시작하려니 여러 가지 제약이 생겼고, 무엇인가가 가볍게 시작하고 싶은데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으니 귀찮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럴 때일수록 원래 갖고 있던 취미를 다시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프랑스 자수'이다.



그런데 프랑스 자수도 다시 그 많은 실을 사려니 사실 조금 버거울 것 같아서 역시 취미 따위는 포기할까? 그냥 스마트폰이나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지내볼까 생각하던 어느 날! 인터넷에 '프랑스 자수'를 검색했다. 그런데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냐면!! 프랑스 자수 키트가 팔고 있었다. 무려 천에 도안을 직접 그려서 판다. 실도 도안에 맞춰 딱 들어있고, 바늘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우와! 이제는 마음에 드는 도안만 고르면 끝이다. 거기에 프랑스 자수로 만드는 액자, 가방 , 파우치, 쿠션, 등등 얼마나 선택의 폭도 많은지 모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문을 했다.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마음은 한 번에 여러 개 주문하고 싶었지만 일단 욕심을 줄여서 딱 두 개만 주문했다. 다행히도 제주까지 별도 택배비는 들지 않았다. (제주에선 무엇을 주문하고 싶어도 택배비가 드는 통에 참 아깝다.) 일단 액자용 키트 한 개와 작은 가방을 주문했다. 액자용으로 하려는 자수는 요즘 감성에 맞춘 스타일이고, 작은 가방은 만들어 아이에게 주면 딱일 정도로 귀엽다. 작은 가방 위엔 곰, 오리, 도토리가 귀엽게 수 놓으면 된다.



보통 아이가 잠든 이후에 수를 놓고는 하는데, 오랜만에 하는 프랑스 자수에 설레여서 아이 옆에서 수를 놓은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내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엄마 왜 프랑스 자수 안 해요?" 하고 묻는 날이 많아졌다. 자수를 놓는 내 모습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나는 네가 뱃속에 있을 때 인형도 만들고, 옷도 만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는 역시 엄마가 최고라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프랑스 자수 현 시점




프랑스 자수 키트를 산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이 정도밖에 완성하지 못했다. 보통 하루에 2시간 내외로 하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배워봤다고 기억 안 나는 것은 영상 잠깐 다시 보고 시작하면 금세 따라 한다. 몇 년 전 열심히 배워둔 보람을 느꼈다. 7년 전의 나 칭찬해.



요즘 밤마다 자수 놓는 재미에 푹 빠졌다. 자수 놓으며 앞에 넷ㅍㄹㅅ를 켜놓고 보면서 하면 재미가 2배다! 종종 외로워지곤 하는 제주도의 밤을 이렇게 프랑스 자수로 채운다. 덕분에 책을 보는 시간도 술 마시는 날도 줄었지만, 설렘 가득하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역시 제주의 삶은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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