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한 취미

by Blair


핸드폰을 뒤적거리는데 2015년 10월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진은 다름 아닌 색색깔 고운 15가지의 물감이었다. 그 물감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미국에서 지낼 때였는데, michales라는 미술용품 판매점에 쿠폰을 들고 가 할인을 많이 받아 물감, 붓 그리고 도화지를 사 와서 기뻤던 날이었다. 그렇게 샀던 미술재료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러 다녔다.



자주 가던 동네 도서관에서는 미술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참여해 보기로 했다. 그 시간은 어느덧 익숙해져 지루해졌던 미국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늘 다니던 도서관이라 가면 늘 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이 미술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라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술 선생님께서 그린 그림이 도서관증에 인쇄되어 있기도 했다. 미술 수업을 듣는 인원은 10명 내외였는데 어떤 날에 가면 7명, 어떤 날은 4명 올 때도 있었고 비교적 출결이 자유로운 수업이었다. 그림은 본인이 원하는 것으로 선택해서 그리기 시작하면 선생님이 중간중간 오셔서 도와주셨다. 첫 그림으로 인터넷을 서치 하다 눈이 쌓인 오두막 집을 골랐었는데 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혼자 그릴때와 달리 선생님 붓칠 한 번이면 그림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하나씩 완성해 나갈 수 있었다.



그때도 오랜만에 물감으로 색칠하는 것이 재밌어서 매일 밤마다 붓을 꺼내 들고 그림을 그렸다. 대신 밤에 그림을 그릴 때면 어두운 조명 탓에 색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는 낮에 꺼내서 그림을 그리고는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는 정신없는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한참 동안을 그 물감과 붓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전혀 붓을 잡아 본 적이 없던 것처럼 살게 되었다.




처음 샀던 색색깔 물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그림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은 어리니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새 아이의 그림을 보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미술학원에 진작 보냈어야 했나, 또래보다 못 그리진 않을까, 고민이 되는 시점이 왔다.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얼마 전 그림을 그려 상을 받아왔다. 아이가 하교하며 본인이 상을 받았다 자랑하길래, 의례 때가 되면 학교에서 주는 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려 과학경시 그림 대회에서 금상을 받아온 것이다. 방송실에서 교장선생님께 학년대표로 상을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르다. 물론 아직 1학년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괜히 부모인 내가 뿌듯해졌다. "혹시 나의 피가 흐르고 있나?"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릴 때 그림으로 상 좀 받아봤지... 하면서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다시 그림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그때 소질 좀 있었잖아? 하면서 말이다.



이제 아이도 많이 커서 살만한 시기이다. 둘째를 낳았더라면 또 다른 이야기였겠지만, 아이가 하나인 덕분에 다시 배움에 기웃거릴 수 있는 시기가 남들보다 더 빨리 찾아올 수 있었다. 작년에 새롭게 시작했던 요가도 익숙해지도 해서, 제주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참이었다.



마침 동네에 있는 문화센터에 드로잉과 수채화 강좌가 오픈하였다. 새 학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는 문화센터에 가서 그림을 그리면 되면 되는 것이었다. 타이밍이 완벽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수업이니 부담도 되지 않았고 운동과도 병행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미술 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선생님은 제주에서 활동하시는 화가셨다. 연세는 꽤 많아 보이시는데, 가르침에 열정적이신 분이었다. 선생님께서 첫 시간에 물어보셨다. "미술 배워본 적 있는 사람 있나요?" 잠시 내가 언제 미술을 배워 본 적 있었나? 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언제 미술을 배웠어~그랬는데 나중에 번뜩 생각이 났다. 분명 몇 년 전에도 미국에서 배웠었고, 어릴 적에는 몇 년을 꾸준히 미술학원을 다닌 덕분에 그림을 그러 상도 받았었다. 정말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배우는 미술 수업에 설레었다. 2주 정도 기초수업을 듣고 바로 소묘 작품 수업을 시작했다. 연필로 구도를 잡고 명암을 넣고 했다. 오랜만에 배우는 미술 수업이라 그럴까? 게다가 소묘 작품은 처음이라 굉장히 낯설었다. 이게 맞나?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맞긴 할까? 싶을 정도로 모르겠더라.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 고를 수십 번 반복한 끝에 5주 만에 소묘작품을 하나 완성할 수 있었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서툴지만 굉장히 뿌듯, 소묘작품




소묘작품을 끝낸 그 후에야 수채화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채화를 그리기 전에 수채화 기초연습을 하는데 오랜만에 붓을 들고, 물감을 쓰니 절로 신이 났다. 처음은 물감으로 명암 넣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동안은 물감색을 어둡게 만들 때는 검정을 섞으면 되는지 알고, 밝게 만들면 흰색을 섞으면 알았는데, 갈색, 보라, 남색으로 어둡게 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다.



이번 수채화 수업은 풍경화를 그리는 것인데,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그리기를 소망하셨다. 그래서 무엇을 그릴까 고민한 끝에 지난번 용머리해안에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을 골라보았다. 그때는 아름다운 용머리 해안에 사로잡혀 골랐는데, 역시 미술 초보가 그리기엔 너무나 어려운 풍경이다. 무엇보다 색을 입히기 전 스케치 작업이 쉽지가 않다. 또다시 이게 맞는 걸까? 이렇게 하면 될까? 하면서 스케치를 하고 있다. 그림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니 배웠다 한들 과연 이 작업이 쉬워지는 날이 올까? 아무튼 첫술에 배부르랴 뭐든 금방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조금씩 노력하며 그리다 보면 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것이니 앞으로가 기대된다.



이제 다음 주면 스케치가 마무리가 되고 곧 그 위에 색색깔 색을 입히게 될 것이다. 선생님이 빌려주는 수채화 물감이 있긴 한데, 붓은 개인별로 사야 했다. 붓만 가지면 다음부터는 어쩌나 싶어 수채화 물감도 팔레트도 욕심이 났다. 앞으로도 쭈욱 오래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붓을 사는 김에 다른 재료들도 구입했다. 덕분에 요즘 밤마다 작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도화지에 간단하게 스케치를 하고 색칠을 할 때마다 십 년 전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도 밤마다 이렇게 즐거웠었다. 이게 뭐라고 요즘 사는 게 참 즐겁다.





재보다 잿밥, 고민 끝에 미술재료 구입 완료!





앞으로는 원래부터 그림을 그렸던 사람처럼, 꾸준히 그림을 그려가봐야겠다. 새로운 취미 생활이 늘어날수록 그리고 새롭게 배운 것을 꾸준히 지속할수록 나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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