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슬슬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곧 산타할아버지가 오시겠어!, 산타할아버지에게 뭐 사달라고 할 거야?" 눈치 없는 내 입이, 내 머릿속의 생각을 거치기 전에 아이에게 물어봤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아직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다. 믿어서 다행인 걸까 대체 언제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얼마 전에 앞집 언니들과 이야기를 했는데(2학년, 4학년) 언니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없다고 하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심 그럼 이제 아이도 산타를 믿지 않는다고 할까 기대했다. "그럼 너는 산타할아버지가 있는 것 같아, 없는 것 같아?" 물었다.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있는 것 같아"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그.. 그래?"
12월이 된 지 열흘이 넘도록 올해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낼까 말까도 고민하는 의욕 없는 상황인 와중에, 아이가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하고 그것을 몰래 포장해서, 게다가 왼손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작성해서(산타가 쓴 척) 준비해 둬야 한다. 이번엔 대체 어떻게 선물을 전해줘야 하나 고민하는 이 마음은 즐거움 반 귀찮은 마음 반이다.
겨우 1년에 한 번뿐인 날인데 매년 크리스마스가 너무 자주 돌아오는 것 같다(사실 그전에 어린이날, 생일, 핼러윈 등등을 다 챙겨서 지친 것일 수도). 5년 정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고 있으려니 아이가 하나라도 뭐든 다 해주는 것도,오직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앞으로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한 아이러니가 공존하고 있다.
"흔한 남매에서 봤던 그 레고! 그 워터파크 레고 사달라고 해야지~" "그거 뭔데?" 하고 함께 검색을 했더니 세상에 10만 원이 넘어가는 제품이다. 심지어 오프라인은 품절되어 온라인에서 그것도 제한된 곳에서 구매된다.
"야~ 너 산타할아버지한테 너무 비싼 거 사달라고 하는 거 아냐? 할아버지는 너 말고 이 세상 모든 친구들에게 다 선물을 사줘야 하는데 이렇게 비싼 거 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여행에서 커다란 레고를 사서 이미 집에 새로운 레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고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근데 너 왜 이렇게 비싼걸 산타할아버지에게 사달라고 하는 거야?" 아이가 말했다."엄마는 비싼 거 안 사주니까 비싼 건 산타할아버지에게 사달라고 해야지! "
빙고. 평소의 엄마는 비싼 것은 웬만한 날이 아니면 (생일, 어린이날 정도만 허용) 사주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아이의 한이 쌓였으리라. 그래도 억울하다. 가끔 아빠에게 말해 사달라고 하라고 허락해 준 적도 있는데 아이는 아빠 돈과 엄마 돈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얘야, 그 돈이 그 돈이란다.'
"그런데 너 올해 일 년 동안 잘 지냈어? 이제 산타 할아버지 오실 날이 며칠 안 남았어! 잘 행동해야 해! "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바뀐다. 그렇다면 자기는 오늘은 혼자 자겠다고 한다(평소엔 절대 혼자 자려고 하지 않는다).
왼) 이미 품절된 선물. 오) 힘겹게 고른 대체 선물
내 기억 속에 산타할아버지는 우리가 유치원생 때나 존재했다. 그때도 유치원에서 산타할아버지를 집으로 보내주는 이벤트를 했었던 것 같다. 그마저도 우리가 학교에 입학하자끝이 났다. 그래서 그제야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알았던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앞집에는 나보다 어린 유치원 다니는 동생이 살았다. 동생은 아직 어려서 아직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있길래 내가 자신 있게 산타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굉장히 놀라며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후에 그 동생의 오빠가 와서는 "아직 동생은 산타할아버지를 믿으니까 비밀로 해줘"라고 말하고는 돌아갔다. 나에게도 분명 친오빠가 있었는데 저렇게 동생을 챙기는 다정한 마음이 있는 오빠를 가진 그 동생이 조금 부러웠다. 그리고 여전히 산타의 존재를 믿을 수 있던 그 집에 살고 있던 동생도 많이 부러웠던 것 같다.
그때는 분명 부모님께서 먹고살기가 힘든 것은 아니었을 텐데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것도, 크리스마스 선물도, 어린이날도... 원래 그런 특별한 날들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어른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조금 화가 나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런 날들에 대한 로망은 자꾸 커진 것 같다. 그래서 덕분에 나의 20대와 30대 중반까지도 되려 그런 것에 환장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결국 특별한 날들에 시니컬했던 어른들의 피가 나에게도 흐르는지 요즘엔 크리스마스도, 선물도, 산타도 별로 관심이 없어진다. 물론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무뎌지는 느낌이 들고 있다. 사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 조금씩 슬퍼지기도 한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제주 집에는 도저히 우리가 가진 트리가 어울리지 않아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엔틱 한 제주 집과 나의 세련된 반짝이는 트리는 전혀 안 어울리는데, 솔직히 이 집에 어울리자고 그 큰 트리를 또 사서 가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포기상태이기도 한 것 같다.
휴 다행이다... 벌써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버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은 크리스마스가 2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트리를 꺼낼까 말까 고민하는(다시 그것을 어떻게 정리해 넣을까 귀찮은) 그리고 아이의 선물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꽤 비싸서 고민하는 나의 변명일 뿐이다. 일단 아이 선물부터 빨리 주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