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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14. 2023

일 년에 한 번 입는 옷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요

매년 12월만 되면 돌아오는 병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입을 빨간 코트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빨간색이라는 색이 참 오묘하다. 분명 빨간색인데 미묘하게 다 다르다. 진한빨강, 연한 빨강, 어두운 빨강, 핑크빛 도는 빨강, 코랄레드 등등 하긴 빨간색 립스틱도 종류가 얼마나 많다고...



무엇보다 그 빨간색의 코트가 나와 어울려야 했고, 또한 빨간색 코트가 남들 눈에도 돋보여야 했다. 그러나 레드컬러와 소재는 은근 가격을 탔다. 저렴한 브랜드는 컬러가 촌스러웠고, 고급브랜드는 컬러가 참 예뻤는데 정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쌌다. 적당한 브랜드에서 적절한 것을 발견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여태껏 코트를 사지 못했다. 사실은 일 년에 한 번, 두 번을 입을 빨간색 옷을 코트로 사기는 조금 오버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래도 코트는 옷장에 걸어놓아야 하는데 일 년 내내 그 자리를 차지하고 하고 있을 테니 그건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레드컬러가 존재한다.








겨우 3년 전 크리스마스는 코로나로 아주 제한된 삶을 살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때이지만, 참 답답했다. 이미 1년을 숨 막히게 보냈고 또다시 그런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니 점점  우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기분 전환을 해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조금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빨간 코트가 아니라 빨간 원피스를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2월의 어느 날 kf94 마스크를 쓰고 자라매장에 들렀다. 저 멀리 세일코너에 눈에 띄는 빨간색 원피스가 보였다. 롱한 기장에 몸에 딱 붙는 원피스였는데, 역시 이런 옷이 크리스마스 옷으로 제격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일가격이라 아주 착한 가격에 득템 할 수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입는 옷을 제값 주고 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충동적으로 샀다는 생각을 했었다. 크리스마스, 코로나가 합쳐진 보복소비가 바로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후 매년 겨울마다 그 옷을 입으며 크리스마스 기분을 한껏 내고 있다. 그래봤자 겨우 3년을 입긴 했다. 그러니까 일 년에 한 번, 3번을 입었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이브, 그 원피스를 입었다.









지난번 비슷한 글을 썼었다. 그때는 일 년에 몇 번도 입지 않는 옷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싫어서 제값 주고 산 옷을 정리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옷은 일 년에 겨우 번을 입지만 제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 굳이 변명하자면 다들 저마다 집에 꼭 필요하지 않지만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한두 개 정도는 있지 않나?(왠지 부끄러워지는군)


내가 나중에 만약 최강의 미니멀 리스트가 된다고 해도 크리스마스트리는 가지고 살 것 같다. 그러나 트리 말고는 자질구레한 크리스마스 소품들은 지금 있는 것을 잘 쓰고 더 이상 늘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자잘한 것들은 처분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극단의 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위해 내가 느끼는 인생의 모든 재미를 없애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나는 어쩌면 유연한 인생을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TPO에 맞는 옷도 사고, 때가 되면 트리도 장식하면서 어쩌면 지극히도 평범한.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선을 넘지 않은... 이게 과연 가능한 걸까?








여전히 누군가는 특별한 날 입을 옷이 꼭 필요해?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그 옷이 없었더라면 나는 매년 12월엔 또다시 빨간색 코트나 원피스를 찾아 헤맬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매년 똑같은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니...  적어도 지난 3년 동안은 고민이 없었다.



언젠가는 이 옷이 낡아 새로운 빨간 원피스를 찾는 때가 다시 올 것 같기도 하다. 예상컨대 20년 후에 가능할까?



20년 아니 10년 동안이라도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옷의 값어치는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저렴할 수도!



이제 더 이상 크리스마스에 입을 옷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저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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